스타우스 장영훈 대표
최근 아시아권에서 탄탄히 자리잡고 있는 배우 이민호. SNS 팬 팔로워 4,000만명을 넘어선 그는 지난해 SBS ‘상속자들’로 아시아권의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스타우스 장영훈 대표는 이민호를 발굴, 데뷔시키고 오늘날 차세대 한류스타로 키워냈다.장 대표는 이민호에 대해 이원화 전략을 취했다. 과거의 한류스타들과 달리 팬들과 자주 소통하는 친근한 스타로 만들어냈다. 배우로서는 서두르지 않고 완성도 있게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며 이미지가 지나치게 소비되지 않도록 만들어나갔다. 정공법을 택해 이민호를 차세대 스타로 만들어낸 그의 비밀 레시피를 물었다.
Q. 지난해 이민호도 ‘상속자들’로 남자스타로 우뚝 섰고, 박솔미도 임신하는 등 소속배우들의 활약이 컸다.
장영훈 : 농사를 잘 지은 것 같다. 회사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도 2세를 기다리고 있고. 겹경사인 것 같다. ‘상속자들’ 시작할 무렵에 생겨서 끝날 때쯤 알렸다.
Q.스타우스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었는가.
장영훈 : 이름을 고민하다가 독어로 ‘집’이라는 뜻의 haus를 붙여서 이름을 지었다. 2005년 9월9일에 직원 셋, 연기자 셋으로 단촐하게 시작했다. 2006년 3월에 법인으로 전환했다. 저도 큰 회사에도 있어 보기도 했지만, ‘우리는 가족 느낌으로 가자’는 생각으로 지은 이름이다. 생각보다 우여곡절 많았었다.
Q. 2009년 전에 이민호가 교통사고가 나고 수술한 사건 말인가?
장영훈 : 민호 고2 겨울방학에 만나서 입시준비 시키고 대학 들어간 다음 봄에 데뷔했다. 두 작품 하고 나서 다치고 병원에만 6개월 있을 정도로 오래 쉬었다. 요즘 ‘따뜻한 말 한 마디’연출하신 최영훈 감독님께서 ‘달려라 고등어’를 제안해주셨다. 문채원이랑 주인공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다리가 아픈 상태였다. 요 녀석 근성을 본 게, 진통제를 먹어가며, 축구선수로 하루 종일 뛰며 찍는데…아픈데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 차는 거 찍었다. ‘아, 자기가 목표 정해지면 몸을 안 사리는구나’ 했죠. 너무 안 사려서 걱정이예요,하하.
Q. 이민호와 첫 만남은 어땠나.
장영훈 : 고2 겨울방학 때 아는 분이 소개해줬다. 그 때 보고, 괜찮게 생각이 들어서, 그 다음해부터 시작했다. 학교 진학부분을 먼저 이야길 하고 들어갔으니까… 그때는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Q. 설마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장영훈 : 고등학생이니까 여드름도 나 있었고. 선 굵은 얼굴을 선호하지 않기도 했고. 잘못하면 느끼해 보인다는 의견도 있었고,하하.
Q. 그럼에도 눈에 들어왔던 장점은 무엇이었나.
장영훈 : 눈과 웃는 것을 타고났다. 그때도 붙임성이 무척 좋았다. 누가 봐도 눈은…‘좋은 배우가 될 거다!’ 싶었다. 무조건 웃는 게 예뻐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인 때도 그래서인지 괜찮은 광고도 많이 했다.
Q. 눈의 모양보다도 눈빛을 의미하는 것인지?
장영훈 : 그렇다. 마음이 달라지면 눈빛이 달라진다. 생활이 문란하거나 사리사욕이 생기면 눈빛이 바뀐다. 다른 생각이 많으면 바뀐다. 인상도 바뀌고.
Q. 이민호급이면 바뀔만도 한데?
장영훈 : 안 바뀐다. 지금도 욕심없이 가고 있으니까. 재계약할 때도 계약금을 준 적도 없고… 그러니까 칭찬해야 한다.
Q. 팬들 사이에 이민호가 재활할 때 연기 활동을 안 시키고 쉬게 해 줬다고 ‘개념있는 소속사’라는 평도 있더라.
장영훈 : ‘달려라 고등어’ 할 때도 고민이었다. 하지만 주연인데… 그렇게 진통제를 많이 먹어가면서 찍더라.
선한 눈빛의 이민호
Q. 사실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건, 팬들의 눈 앞에서 멀어진다는 의미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장영훈 : 팬들도 결속을 시켜줘야 팬덤이 오래간다. 이탈하지 않고 먼저 페이스북으로 시작했다. 그 뒤에 중국에서 반응이 있어서 웨이보에, 영어권은 페이스북, 일본은 라인, 한국은 트위터 카페 등 다 해야 하고… 그렇게 하면서 좀 많은 호응도가 있었던 것 같다. 꾸준히 지속이 되면서… 1년에 한 작품씩 했다. 국가별로 1년에 한 번 정도 활동한 셈이다.
Q. 요즘 호흡으로는 느린 편 아닌가?
장영훈 : 어떤 스타가 방송에서 ‘숨으면 찾을 줄 알았는데 잊혀지더라’라는 이야기도 했지만 소통이 안 되면 잊혀진다. 안 보이면 멀어지니까. 너무 신비주의로 가기에는, 요즘 환경이 다르니까. 하루에도 엄청나게 바뀌는데… ‘소통이 계속 유지할 원동력이 되겠다’ 싶었다. 직원의 아이템도 좋았고.
Q. 그런 배경으로 발빠르게 SNS 관리를 시작한 것이었나. 현재 중국 2,000만명을 포함해 총 4,000만명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는데.
장영훈 : 나라나 플랫폼별로 약간 중복은 되겠지만 많이 중복 안 된다고 본다. 그 숫자들이 잠재력이 있는 팬이라고 보고, 정보도 보내고, 묶어놓고 찾아서 공유도 한다. 미국 에이전시 도 깜짝 놀라더라.
Q. 소속사 안에 SNS 전담팀이 있는가?
장영훈 : 팀까지는 아니고 관리자가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꾸준히 업데이트를 한다. (Q. ‘상속자들’ 마지막 촬영 현장을 영상으로 찍은 소식은 생생하면서도 감동적이었는데 무엇으로 찍었나?) 매니저가 핸드폰으로 찍은 것이다. 작품을 하지 않을 때는 몸은 하나고, 이쪽 저쪽 보이려면, 바쁘다. 투어를 할 때 카메라를 한 대 붙여서, 일본은 주 1회 20회로 방송을 하는 식으로 활동하지 않는 기간에 팬들에게 보여진다. 일본에서 방송이 되면서 일본에 안 가도 팬 유입을 더 시키게 되었다. 중국은 실시간인데, 일본은 시간이 걸린다는 차이도 인식해야 한다.
CCTV와 인터뷰를 하는 이민호
Q. 중국에서 반응이 뜨거운데.장영훈 : ‘상속자들’을 소후닷컴에서 정식으로 권리를 사 가서 틀었다. 유료는 아니지만 그 전에 비하면 달라졌다. ‘시티헌터’는 무료 사이트에서 보고 그랬는데도 반응이 컸다. ‘꽃보다 남자’(이하 꽃남)에서 인지도를 쌓았고, ‘시티헌터’로 인기를 얻었고, ‘상속자들’로 세게 터진 듯 하다.
Q. 지난해 노래를 부르며 해외 공연도 했는데, 한류스타로 장기적인 포석이라고 봐도 될까.
장영훈 : ‘꽃남’ 끝나고 지속적으로 팬미팅을 했지만, 언어가 안 통하는 상태에서 소통할 수 있는 게 노래더라. 팬미팅 때 부를 노래를 한 곡 한 곡 하다가 작년에 ‘때가 되었다’ 싶어서 모으고, 노래를 추가해서 투어를 큰 규모로 했다. 올해는 올해의 공연 수익의 세 배 규모로 벌어질 것 같다. 배우들 수익으로는 엄청난 셈이다. 민호가 모험을 한 건데 성과가 좋았다. 투어 막바지에 자신감을 얻었다. 한국이 첫 스타트였는데, 모든 게 부족한 느낌이었지만, 마지막 한국 공연은 괜찮았던 것 같다. 마지막엔 즐기게 되었고, 자신감도 생겼다. 잘 도전을 해 준 듯 하다.
Q. ‘이제 때가 되었다’라는 판단이 어쩌면 ‘신의 한수’ 아니었을까?
장영훈 : 모험이었다. 매니저들도 고생한 게,작년 3월에 드라마가 확정이 되었는데, 방송 전에 아시아 10개 공연의 스케줄을 짜야 했다. 각 나라 프로모터들 조율하면서 말이다. 올해는 수익보다 공을 많이 들이고자 한 게 무대 인원부타 테크니컬 라인까지 다 짜서 30명 이상이 함께 다녔다. 투자를 많이 해서 올해는 키우자는 생각이다.
Q. 올해는 월드 투어까지 할 예정인가.
장영훈 : 호주 남미까지 요청이 오는데, 사실 공연 전문은 아니어서 생각 중이다. 작품을 정해놓고, 그 틈에 들어가야 하니까 대관 문제 등을 맞추기가 어렵다. 가수랑 달라서, 연기하는 친구들한테는 그게 맞는 듯 하다.
Q. 드라마가 아닌 영화에 출연할 때에도 마찬가지 전략인가.
장영훈 : 영화는 드라마보다 호흡이 기니까, 때로는 주말을 이용해서 잠시 나갔다 올 수는 있지 않을까 한다. 올해는 계획을 몰아서 가지 않는 걸로 잡았다. 하기 싫으면 못 한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무대에 스스로 적응하고 익숙해지니까 가능한 일이다. 아레나에서 자신감도 생기고.
Q. 도쿄돔도 도전해 볼 만할 듯 한데?
장영훈 : 그거는 한 쪽 시장을 전념해야 한다. 2,000석부터 돔까지 가려면… 매번 이야기하는데 어쨌든 베이스는 한국이다. 한국 콘텐츠가 계속 퍼져나가고, 한국 콘텐츠가 효과가 있으니까. 그렇게 하다 보니까 한국 일본 중국 동남아를 같이 그리면서 가느라,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다. ‘꽃남’ 후 바로 일본에만 들어갔으면 매출은 컸을 텐데 아시아 전체를 가져가는 그림을 생각하느라 그러지 않았다.
Q. 아시아 전체를 그리는 것이나, 연기와 공연와 조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균형을 중요하게 대표라는 생각이 든다.
장영훈 : 좀 더 크게 본 것이다. 지금도 헐리우드 제안이 오긴 오는데… 아직 영어는 쉽지 않다. 나중에 군복무 기간에 쉴 때 영어를 열심히 해서 배우로서 꿈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결국은 미국의 할리우드 시장에서도 결국 보고 있는 게 중국이다. ‘꽃남’ 때도 싱가포르 다음엔 말레이시아, 그 다음엔 인도네시아 이런 식으로 섹터를 분리해서 유지해가는 방향으로 선택했다. 돈만 생각하면 중국 일본 뿐이었겠지.
Q. 씨를 많이 뿌리는 전략인가.
장영훈 : 목표가 할리우드 아니지만, 요즘은 벽이 무너지고 있다. 중국으로, 미국으로 넘어가는데 사실 요즘은 한국과 거의 차이가 없어졌다. 스마트폰이나 온라인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
Q. 미국에서 메이저가 된다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아 보이기도 한다.
장영훈 : 이병헌이 거기까지 뚫어놓은 것,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싸이도 마찬가지고. 한국 아티스트에 관심을 갖고, 한국 문화나 한국 말을 알고 음식을 찾고… 이러면서 엄청나게 위상이 높아진거다. 정부에서도 문화 쪽에 더 투자를 해야한다.
스타우스 장영훈 대표
Q. 이민호가 천천히 걸어온 길을 보면, 소속사에서 이민호와 오래 일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장영훈 : 장기플랜을 짤 수 있는게 이 녀석 덕분이다. ‘한정된 시간 내에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어려운 결정들이었다. 다른 믿음이 있으니까, 조금 늦게 가더라도, 그렇게 갔던 게 효과가 있었던 듯 하다.
Q.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쉬운 결정은 아닐텐데?
장영훈 : 아니다. 조금 더 큰 걸 바라는 거다. 공이 하나 더 붙은 게 올거니까. 비즈니스상은 저축이고,하하.
Q. 기본적인 수익구조가 갖춰져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인가?
장영훈 : 배우들이 벌어들일 수입은 한계가 있다. 출연료나 광고다. 그래서 다각화하려고 한 게 공연이다. 가수 친구들이 닦아놨고. 이것으로 수익모델로 추가시켜보자 싶었던 것이다.
Q. 매니지먼트를 확장할 구체적인 계획은 없는가.
장영훈 : 그런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닌데, 사실은 확장할 기회나 그런 제안도 있었다. 그런데, 일본에서 만난 분 생각이 났다. 일본에서 바닥부터 시작해 연세가 든, 큰 회사의 매니저였는데, ‘이런 슈퍼스타가 하나 있으면 정말 할 게 많은데 더 확장하는 게 맞겠나’라는 질문을 하더라. 사실 지금도 11명이 이민호 하나 중심으로 돌아가기 빡빡하다. 한명에 집중해서 목표는 그렇게 가져간 거고, 나머지 꿈나무들은 육성을 해야지.
Q. 많은 매니지먼트사들이 콘텐츠제작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진출하고 있는데, 관심이 있는가.
장영훈 : 관심은 있지만, 제 자존심에, 이 친구를 활용하면서 가면 안 될 것 같다. 어느 정도 쌓였을 때, 같이 하고 싶은 것이다. 많이 두드리는 편인데, 실행은 빠르다.
Q. 매니저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장영훈 : 옛날 이야기인데, 우연히 시작했다. 지방대에 들어갔다 그만두고, 군대 다녀와서 장사를 했다. 작은 가게를 사서 운영을 맡겨서 하나가 잘 되니 또 하나를 사서 하고… 그러다 동업자가 돈을 갖고 도망을 갔다. 스물다섯이었다. 실의에 빠져서 한달 동안 혼자 여행이나 갈까 그러던 중에, 아는 형이 SOS를 쳤다. 광고 에이전시에 있는데, 매니지먼트, 작품 캐스팅까지 다 하는데, 두 달만 아르바이트를 하라고 해서, ‘방송국에 가면 연예인이 있다’고 하고 하니 가벼운 마음이었다.
Q. 항상 시작은 그렇게 된다,하하.
장영훈 : 당시만 해도 매니저가 활성화된 직업도 아니고, 소문이나 부모님 인식도 좋지는 않았다. 나도 술자리에 가서 모르는 사람을 만날 성격도 못 되는데, 3개월이 지나다 보니, 그동안 생각한 경제 관념을 깨더라. 하나가 터졌을 때, 일반 산업에는 없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업이더라. 1년 정도 돌아보니 돈이 내 수중에는 없는데 이게 보여서… 성격은 안 맞는데 어떡하나. 한 번은 진짜 회의가 있어서 누나가 사는 미국으로 유학가자고 수속까지 마쳤는데, 9.11이 터져 비자가 거부되는 바람에 다시 일을 하게 되었다. 크게 셋팅된 회사에서 많이 배웠지만, 부도도 나고… 다시 시작하고 그 뒤는 더하다, 하하.
Q. 어쨌든 어려서부터 사업 수완이 있는 편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장영훈 : 아버지께서 농장을 하시는데, 중학교 때 서울로 유학을 보내셨다. 아버지가 사업도 하셨지만, 돈을 주시면 언제부터 언제까지 써야 하고, 신중하게 써야 하고… 내 용돈을 갖고 버텨야 하고, 어떤 결정도 내가 책임져야 했다.
Q. 대표로서 어떤 결정을 할 때의 기준은 무엇인가.
장영훈 : 어떤거냐에 따라 다르긴 할텐데, 돈이 관련된 건 무조건 내 판단과 감을 믿는다. 내 지식 안에서. 작품은 다음 것만 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것, 그 다음 것까지 세 가지 정도를 정한다. 구체적인 작품이 들어오기 전이라도, 이 정도의 캐릭터로 가겠다는 생각을 한다. 계속 그 계획대로 되고 있다. 유하 감독님까지.
팬사인회 중인 이민호
Q. 흔히 ‘배우는 선택을 당하는 직업’이라는 생각과 어울리지 않는 방법인 것 같다.장영훈 : ‘꽃남’이 학원물이었고, 그 다음은 성인으로 가고 싶지만 ‘꽃남’에서는 아주 큰 변화는 안 줘야 하는데, 그래서 택한 게, ‘개인의 취향’이었다. (손)예진씨까지 붙어주니까… 민호가 남자다움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유하 감독님 작품에서도 나오는 모습이다. 드라마만 보신 분들은 이것(부드러운 이미지)만 상상하고, 잘 안 나올거라고 생각하곤 한다. 이재동 감독님, 고은님 작가님이 한 80분짜리 ‘나도 잘 모르지만’(2008)에서 민호가 그런 걸 보여준다. 이 친구한테서 남자를 뽑아내고 싶어서 한 게 ‘시티헌터’고, 남자다운 걸 더 뽑아낼까 싶은 게 ‘신의’였다. 어쩌면 비슷한데 장르적으로 다르니까. 다시 로맨틱코미디로 말랑말랑한 거로 갔을 때, 밑의 나이로 가면 즐기면서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상속자들’로 가게 되었다. 대학생이 중학교 3학년 때 배우러 가는 느낌이니까.
Q. 꼼꼼하게 승부수를 띄우는 스타일인가보다.
장영훈 : 로코가 되어야 하는데, 로코는 김은숙 작가가 확률(시청률)이 높아서 먼저 붙었다. 제작사 대표님과 작가님이 좋아해 주셨다. ‘상속자들’ 아니고 다른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었는데, 민호를 보더니 ‘상속자들’로 바꿔주셨다. 제작사 대표님은 민호가 교복을 입지 않을까봐 걱정하셨다는데, 저랑 민호는 ‘생에 마지막 하이틴물’을 해 보고 싶었다,하하.
Q. 사실 없는 작품을 만들어서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만든다는게 대단한 거다.
장영훈 : 고마우신 두 분, 김은숙 작가님 윤하림 대표님 덕분이다. 김 작가가 대단한 게 뭐냐면, 이 친구의 잘하는 면을 스캔해서 그때부터 작업이 들어가서 엄청 빨리 써주셨다.
Q. 이민호에 대해서 ‘믿고 보는 배우’라는 평도 괜히 나온 게 아닌 듯 하다.
장영훈 : 다섯 개 작품을 했는데 한자리 시청률이 나온 거는 없다. 영화에서는 조금 거칠게 드라마에서 아직 못 보여준 것, 의외의 모습을 보여즈랴고 한다. 그동안 간질간질하고 답답했던 것을 던질 것 같다. 다행히 가고자 하는 방향 중에 선택해왔고, 그렇게 변화를 주니까 대중도 질려하지 않는 것 같다. 본인도 단계별로 성숙해보자,는 마음이고.
Q. 올해 목표는 무엇인가.
장영훈 : 세계 정복? 거창하다. 경제 흐름을 고려해서 해외 콘서트를 통해 해외 수익을 내고 싶다. 사실 ‘상속자들’ 할 때도 민호는 영화를 하고 싶어 했지만, 드라마를 통해 해외팬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을 때 잘 따라줬다. 스트레스를 풀 데도 없는데 잘 지켜줘서 고맙다.
글. 이재원 jjstar@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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