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 작가

뻔했지만 또 통했다. 12일 종영하는 SBS 수목드라마 ‘상속자들’을 집필한 김은숙 작가 얘기다. 극 초반 KBS2 ‘꽃보다 남자’의 아류작이 되지 않을까란 우려감을 딛고 종반부인 16회에서 20%대를 돌파한 ‘상속자들’은 여전한 ‘신데렐라 스토리’라는 비판 속에서도 시청률 면에서는 순항했다.

어떤 점이 과연 시청자들과의 성공적인 소통을 이뤄냈을까?

당초 김 작가는 ‘상속자들’이 ‘변형된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직접 밝혔다. ‘상속자들’ 제작발표회에서 그는 “온갖 클리셰(Cliche)가 들어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제가 잘 하는 걸 더 잘해보자’는 생각이었다”며 “새로운 소재가 아니기 때문에 상상치 못한 이야기를 위한 에피소드나 대사에 최대한 신경을 쓰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또 “무대를 고등학교로 옮겼을 뿐 사실상 어른들을 위한 하이틴 로맨스” 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가난한 여자주인공과 재벌 남자주인공의 사랑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신데렐라 스토리는 김 작가가 가장 강점을 발휘하는 장르다. 그리고 2013년 ‘상속자들’은 신데렐라 스토리 속 부와 가난으로 상징되는 ‘신분의 차이’를 지금까지의 어떤 작품보다 강조한 드라마이기도 하다. 학교 안에서 부모의 부와 직업을 잣대로 신분의 차이가 정해지는 비상식적인 설정 속에서도 작품이 힘을 발휘한 데는 작가 자신의 말처럼 캐릭터와 대사의 힘이 센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방송 초반 미국드라마 ‘가십걸’을 벤치마킹한 듯한 구성이라는 지적이 일기도 했지만 각각의 캐릭터가 설득력을 갖추면서도 맛깔스러운 느낌을 내는 데는 성공했다는 평가다.

일단 남녀주인공을 비롯한 캐릭터가 입체감 있게 움직였다. 재벌가의 서자로 반듯하고 여리지만 어느 순간 강한 남자의 분위기를 풍기는 김탄(이민호)이나 반대로 껄렁하고 반항아적 기질이 다분하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외로움을 표현하는 최영도(김우빈)를 비롯해 현실에 낙담하지만 꿋꿋한 성격과 사랑스러움을 동시에 지닌 차은상(박신혜) 모든 것을 갖췄지만 사랑을 얻지 못해 엇나가는 유라헬(김지원) 등 복합적인 사연을 구축한 캐릭터들이 돋보였다.

유쾌한 분위기로 드라마의 소소한 재미를 이끌어 낸 것은 남녀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이다.

고교생 커플의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여 준 이보나(정수정)-윤찬영(강민혁)이나 결코 공손하지 않은 가사 도우미 박희남(김미경)과 재벌그룹 회장의 내연녀 한기애(김성령)가 빚어내는 코믹 요소는 시청자들의 눈길을 붙잡는 요소로 자리하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균형감있는 캐릭터 구성은 작품이 비극과 희극을 오가며 다양한 시청층을 끌어안는 데 기여했다.

“애기야 가자” “이 안에 너 있다”(SBS ‘파리의 연인’) “이게 최선입니까”(SBS ‘시크릿 가든’) 등 매 드라마마다 유행어를 만들어냈던 김 작가의 감각적인 대사를 이끌어내는 능력은 이번에도 빛났다.

은상을 향한 탄의 첫 사랑고백인 “나 너 좋아하냐?”가 방송 초반부터 회자된 데 이어 최영도의 “처음부터 여자였고 지금부턴 첫사랑이다” 등 감칠맛 나는 대사가 이어지며 로맨틱한 분위기를 최대한 살렸다.

결과적으로 ‘잘하는 데 집중’하고자 한 김 작가의 의도는 대중과 소통하는 데 성공했다. 하반기 히트 드라마로 떠오른 ‘상속자들’이 깊이있는 주제의식이나 참신성을 드러낸 작품은 아니었지만 트렌디한 감성으로 로맨스를 풀어낸 작품으로 기억되기에는 충분하다.

글. 장서윤 ciel@tenasia.co.kr
사진제공.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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