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초겨울 기운을 즐기기 위해서 북촌 지역을 돌아다녔다. 홍상수 감독의 ‘북촌방향’처럼 낮술을 즐길 목적은 아니었다. 이리저리 북촌의 갤러리들을 지나다니면서 좋아하는 카페에 슬쩍 들려 커피를 마셨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아트선재센터, 공근혜 갤러리를 줄줄이 방문했다.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은 개관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이게 정말 최선입니까?”라고 반문하고 싶을 정도로 실망스러웠다. 미술관 내 영화관에서 상영 중인 ‘영화적 발산’ 프로그램을 보는 것에 만족했다. 공근혜 갤러리의 그레고리 스캇전(12월 8일까지)은 미술과 영상의 경계(프레임)를 질문하는 작업의 방식이 흥미로웠고, 아트선재에서 전시 중인 이주요의 ‘나이트 스튜디오’(2004년 1월 12일까지)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다만 이태원의 집이 아니라 갤러리에 설치되는 바람에 공감각적 작업이 효과적으로 느껴지지 않아 아쉬웠다. 그렇게 미술관에서 걷고 또 걸었다.
불행히도 한국에선 젊은이들에게 ‘청춘’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가가 부재하다. 한국의 사회적 혹은 예술적 상황에, 항상 한계를 느껴 온 사람들에게는 단비처럼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사진임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그에게 젊음이 불안과 좌절의 동의어가 아니라는 점은 감동적이다. 젊음이 추구하는 도전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아름다운 사진을 통해 전달한다는 차원에서, 큰 위로가 될 수도 있다. 맥긴리의 색채는 래리 클락의 무정부주의 혹은 반달리즘적인 탈선과는 확실히 다르다. 래리 클락의 사진이 하모니 코린의 영화와 연결된다면, 맥긴리의 사진은 오히려 프랑소와 오종의 해변 영화와 닮았다. 대표 사진에서 바로 청춘의 몽환이 느껴지는 것처럼, 20, 30대 여성 관객들의 취향에 딱 부합하는 전시다. 내년 2월 23일까지 대림미술관에서 청춘을 노래하니, 여유 있게 들려도 좋다.
음반의 소개글에서, 자렛은 “어쿠스틱 연주로 명성을 얻었지만, 언제나 일레트릭 기타를 사랑해왔다”고 밝히고 있다. 그가 펑키한 퓨전 재즈를 선택했다면, 아니 기타나 베이스 연주자가 됐다면 어떤 음악세계가 펼쳐졌을지 엿볼 수 있는 기회다. 1980년대 자렛과 조우한다는 것은, 실로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마저 준다. 불혹의 자렛이 꿈꾸었던 음악의 이상(자유로움)과 만날 수 있다. 그는 힐링의 경험이었다고 말하지만, 키스 자렛 마니아들에게는 그 이상의 에너지가 전해진다. 진정, 위대한 여정이다.
이런 놀라운 내용을 어떤 동작으로 표현했는지 궁금하다면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시대 최고의 프리마돈나(소프라노)와도 만나야 한다. 개인적으로 또래의 예술가 중에 가장 흠모하는 인물을 말하라고 한다면, 0.5초도 생각하지 않고 ‘안나 네트렙코!’라고 외치겠다. 2007년 벨리니의 ‘청교도’에서 보여준 그녀의 광기에 완전 마음을 빼앗겼다. 철 지난 베를린 콘서트 실황을 계속 반복해 보다가, 드디어 올해 6월에 있었던 붉은 광장 콘서트를 틀어 놓았다.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맞이해, 베르디 위주로 꾸며진 프로그램이라서 오페라 초심자들에게도 꽤 익숙한 곡들이 흐른다.
글. 전종혁 대중문화 평론가 hubul2@naver.com
편집. 이은아 domino@tenasia.co.kr
All images courtesy of the artist and Team Gallery, New York" />라이언 맥긴리의 ‘Dakota(Hair)’(왼쪽), ‘Somewhere Place’
All images courtesy of the artist and Team Gallery, New York
북촌의 미술관 산책이 좀 부족하다면, 경복궁을 넘어서 라이언 맥긴리 사진전으로 이어져도 좋다. 개인적으로 낸 골딘의 작업을 선호하지만, 래리 클락이나 라이언 맥긴리의 스타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오랫동안 패션 잡지로 생계를 유지했던 지라, 미국의 대표 사진작가들이 청춘을 과시하는 전략은 다소 식상하다. 하지만 맥긴리의 ‘청춘, 그 찬란한 기록’은 오늘날 이 땅에서, 꼭 필요한 전시다. 맥긴리는 20대의 젊은이나 사진을 시작하는 초심자들에게 가장 많은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작가이기 때문이다.All images courtesy of the artist and Team Gallery, New York
불행히도 한국에선 젊은이들에게 ‘청춘’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가가 부재하다. 한국의 사회적 혹은 예술적 상황에, 항상 한계를 느껴 온 사람들에게는 단비처럼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사진임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그에게 젊음이 불안과 좌절의 동의어가 아니라는 점은 감동적이다. 젊음이 추구하는 도전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아름다운 사진을 통해 전달한다는 차원에서, 큰 위로가 될 수도 있다. 맥긴리의 색채는 래리 클락의 무정부주의 혹은 반달리즘적인 탈선과는 확실히 다르다. 래리 클락의 사진이 하모니 코린의 영화와 연결된다면, 맥긴리의 사진은 오히려 프랑소와 오종의 해변 영화와 닮았다. 대표 사진에서 바로 청춘의 몽환이 느껴지는 것처럼, 20, 30대 여성 관객들의 취향에 딱 부합하는 전시다. 내년 2월 23일까지 대림미술관에서 청춘을 노래하니, 여유 있게 들려도 좋다.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
최근 가장 즐거운 사건은 키스 자렛의 음반이 동시에 2개나 나온 일이다. 키스 자렛 트리오는 지난 5월 19일 내한 공연 전에 새 앨범 ‘썸웨어’를 내놓았기에, 더 이상 특별한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추운 11월에 따뜻한 햇살을 선사하듯 ECM의 마술은 ‘콘서트 브레겐츠 뮌헨’과 ‘노 엔드’로 다시 피어났다. 전자는 1981년 브레겐츠와 뮌헨의 솔로 연주를 담은 라이브 앨범으로, 자렛만이 할 수 있는 솔로 임프로바이제이션의 향연이 펼쳐진다. 세 번째 앨범의 ‘Munich Part IV’에서 피아노와 하나가 된 자렛의 신음소리가 입을 딱 벌어지게 만들지만, 후자 ‘노 엔드’ 앨범은 이보다 더 기괴한 감동을 몰고 온다. 1986년 자신의 홈 스튜디오(뉴저지 케이브라이트)에서 녹음한 이 앨범에서 놀랍게도 자렛은 원맨 밴드를 시도한다. 즉 피아노는 물론이고 일렉트릭 기타, 펜더 베이스, 드럼을 직접 연주한다.음반의 소개글에서, 자렛은 “어쿠스틱 연주로 명성을 얻었지만, 언제나 일레트릭 기타를 사랑해왔다”고 밝히고 있다. 그가 펑키한 퓨전 재즈를 선택했다면, 아니 기타나 베이스 연주자가 됐다면 어떤 음악세계가 펼쳐졌을지 엿볼 수 있는 기회다. 1980년대 자렛과 조우한다는 것은, 실로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마저 준다. 불혹의 자렛이 꿈꾸었던 음악의 이상(자유로움)과 만날 수 있다. 그는 힐링의 경험이었다고 말하지만, 키스 자렛 마니아들에게는 그 이상의 에너지가 전해진다. 진정, 위대한 여정이다.
매튜 본의 ‘잠자는 숲 속의 공주’(왼쪽), 네트렙코와 흐보로스토프스키의 ‘붉은 광장 콘서트 실황’
끝으로 공연 소개다. 이번에는 방콕(집안)에서 즐겨보자. 꼭 비싼 티켓을 구입하고 공연장에 가야만, 최고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이번 주말에는 아늑하고 편안한 집에서 DVD로 두 개의 공연을 즐길 것을 권한다. 매튜 본의 ‘잠자는 숲 속의 공주’와 네트렙코와 흐보로스토프스키의 ‘붉은 광장 콘서트 실황’이다. 남성 군무로 화제가 된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를 본 댄스 마니아라면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호두까지 인형’에 이은 차이코프스키 발레 3부작의 완결판이다. 디즈니의 만화로 충분히 봤다고, 쉽게 상상하면 곤란하다. 매튜 본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변화와 상상력이 계속 펼쳐진다. 라일락 요정이 아니라 라일락 백작(역시 남자!)이 등장하고, 공주를 잠에서 깨어나게 할 왕자는 오직 고결한 첫사랑으로 100년의 시간을 넘어선다. 마치 ‘트와일라잇’처럼 공주의 ‘그’는 뱀파이어가 된다.이런 놀라운 내용을 어떤 동작으로 표현했는지 궁금하다면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시대 최고의 프리마돈나(소프라노)와도 만나야 한다. 개인적으로 또래의 예술가 중에 가장 흠모하는 인물을 말하라고 한다면, 0.5초도 생각하지 않고 ‘안나 네트렙코!’라고 외치겠다. 2007년 벨리니의 ‘청교도’에서 보여준 그녀의 광기에 완전 마음을 빼앗겼다. 철 지난 베를린 콘서트 실황을 계속 반복해 보다가, 드디어 올해 6월에 있었던 붉은 광장 콘서트를 틀어 놓았다.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맞이해, 베르디 위주로 꾸며진 프로그램이라서 오페라 초심자들에게도 꽤 익숙한 곡들이 흐른다.
글. 전종혁 대중문화 평론가 hubul2@naver.com
편집. 이은아 domino@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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