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트레일러 연출은 어떻게 이뤄진 건가.
류현경. 대부분이 알다시피 그녀는 여배우다. 아역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연기 활동을 이어왔다. 장르는 물론, 상업 영화와 저예산(독립) 영화 가리지 않고 연기에 임했고, ‘방자전’에서의 파격 노출 연기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 정도는 누구나 알만한 것들이다. 하지만 류현경의 팬이라면, 그녀가 연출을 전공했다는 사실과 직접 연출한 단편 영화가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됐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또 가수 정인의 뮤직비디오 역시 류현경의 연출로 탄생하기도 했다. 본인 스스로는 “학교 다니면서 숙제로 한 것”이라며 쑥스러워하지만 단편 ‘날강도’ 등이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공식 상영될 정도면 결코 허투루 만들었거나 허접하지 않다는 걸 입증해 준다. 이번엔 더욱 깊숙이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와 인연을 맺었다. 영화제의 트레일러를,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서 직접 매만졌다. “40초 분량이라 쉽게 생각하고 덤벼들었다”고 밝힌 류현경과 연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류현경 : 영화 ‘더 테러 라이브’ VIP 시사회 때 제안을 받았다. 그전부터 연락했다고 하는데 나한테 미처 전달이 안 됐다. 그러다가 시사회 때 영화제 관계자분을 만났는데 ‘트레일러 제안했는데 들으셨나’고 물어보는 거다. 그때만 해도 40초 분량이라 만만하게만 생각했다. (웃음).
Q. 국제영화제, 그것도 11회째 되는 영화제에서 전문 감독이 아닌 배우에게 왜 제안을 했을까 궁금하다.
류현경 : 가수 정인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영상이 좋았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전에 단편도 좋았지만 ‘그 뻔한 말’ 뮤직비디오를 보고 (트레일러 연출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 나 역시 짧은 분량이라 괜찮다고 생각했다.
Q.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트레일러 연출 기획과 구상은 어떻게 했나.
류현경 : 현장에서 카메라가 돌아가기 직전, 그 순간 모든 스태프가 집중하는 거에 큰 감동을 느낀다. 그래서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정성이 한 곳에 모이고, 현장에서 느꼈던 감동과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랬는데 스케일이 너무 커지는 거다. 촬영 현장을 직접 보여줄 수도 없고. 그래서 남자, 여자를 일상적인 공간으로 끌어오면 좋을 것 같아서 영화를 찍고 싶어 하는 아이와 찍어주고 싶어 하는 여자, 그 순간을 포착하려 했다. 물론 그걸 영상으로, 그것도 짧은 영상으로 표현하는 게 어려웠다. 기자회견 당시 ‘순간의 감동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고 말은 거창하게 했는데 그 정도로 안 나온 것 같아 걱정이다.
Q. 연출 전공이다. 그리고 학교 다닐 때 만든 단편이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류현경 : 학교에서 찍은 건 많다. 공개를 안 했을 뿐이지 (웃음). 학교 제출용인데 이걸 외부에 공개하는 게 처음엔 민망스러웠다. ‘광태의 기초’도 낼 생각이 없었는데 같이 작업한 스태프가 내보라고 해서 내게 됐다. 고맙다는 뜻으로 술이나 밥 사주는 걸 좋아할지 알았는데 큰 화면에서 상영되는 걸 더 좋아하더라.
Q. 장편 연출에 도전할 생각은 없는 건가. 하정우, 박중훈 등 상업 영화에 도전하는 배우들도 있지 않나.
류현경 : 아직은 전혀. 학교 다닐 때 연출 전공했지만 사실 어려서부터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만들면 재밌겠다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호기심이 많았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래서 연출 전공을 했는데 알고 나니까 (연출이)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것을 느끼게 됐다. 연기는 어렵긴 하지만 굉장히 즐겁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다. 그리고 평생 해야겠다는 믿음이 있다. 반면 연출은 짧게 찍는데도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원형탈모까지 생겼다. 편집할 때도 너무 괴로웠고. 단편도 그렇게 힘든데 장편 하면 어떨까 싶다. 물론 만들어놓고 화면에서 보면 희열이 느껴지긴 한다. 하지만 아직 연출을 욕심내서 해봐야겠다는 것보다 연기 욕심이 더 크다.
Q. 지금이야 당장 그렇지만 나중에는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류현경 : 연출에 대한 갈망은 딱 거기까지다. 연기를 잘하고, 잘 아우를 수 있는 정도까지 간다면 모를까. 뭐 그렇게 돼도 (연출) 생각은 못 할 것 같지만. (웃음). 영화는 나에게 우주를 만드는 일과 같은 느낌인데 아직은 우주의 일원이 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정인 언니 뮤직비디오를 하고 나서도 뮤직비디오 연출 제안이 많이 들어왔는데 못하겠는 거다. 정인 언니는 나를 믿어주고, 어떻게 음악을 잘 살릴 수 있을지 서로 이야기를 많이 해서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중요한 건 연기 욕심을 가진지가 5년쯤 됐다. 어렸을 때는 ‘잘하네, 계속 해봐’라고 해주고, 촬영장에 있는 게 재밌었다. 그런 마음이었는데 ‘신기전’(2008) 때 ‘아, 연기를 이렇게 하는구나’란 것을 느꼈다. 그때 새로 데뷔한 느낌이다. 그래서 이제 데뷔 5년 차라고 생각하고, 연기에 맛 들린 상황이다. 며칠 전에도 친한 피디 언니가 시나리오 가지고 와서, 연출 한 번 해보라고 하는데 주인공 시켜주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 (웃음).
Q. 그런데 연출에 두려움을 느끼면서 트레일러 연출 제안을 선뜻 받아들인 건 앞뒤 말이 조금 안 맞는 것 아닌가.
류현경 : 40초니까. (웃음). 분량 자체를 쉽게 생각했다. 듣는 순간, ‘찰나를 찍어보고 싶다’란 생각이 들었다. 아까 이야기했던, 카메라가 돌아가기 직전에 모이는 정성을 담고 싶었고, 40초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소리(대사 등)가 없으니까 괜찮을 거로 생각했다. 뮤직비디오 3~4분에 비하면 짧으니까. 그런데 막상 찍어보니 더 어려웠다. 찍을 내용을 글로 썼는데 촬영 전에는 길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찍으니까 길지 않은 거다. 편집할 때 고생 좀 했다.
Q. 그렇다면 학교 다닐 때 찍은 단편 말고, 졸업 후에 찍은 건 없는 건가.
류현경 : 졸업 작품으로 ‘날강도’를 찍은 후 엄두를 못 내고 있다. 20분 분량에 불과한데 그걸 하면서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였다. 그 후유증이 꽤 오래갔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고, 배우로서도 더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았다. 중간중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할 순 있겠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상태 좋을 때 해야지 하고 미뤄두고 있다. (웃음).
Q. 단편을 찍어보면서 느낀 단편 영화만의 매력이 뭐라 생각하나. 사실 일반 대중이 단편을 접하기는 쉽지 않다. 극장 개봉을 하는 게 아니니까. 영화제나 가야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류현경 : 단편영화를 쉽게 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려울 거란 인식이 있는 것 같다. 친언니도 ‘어렵지 않느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그런데 전혀 어렵지 않다. 재밌는 코미디 영화도 많고, 짠하게 남는 멜로도 있다. 다양한 장르를 경험할 수 있다. 어렵게 느껴지는 영화들도 있는데 그런 것도 간혹 보면 좋을 때가 있다. 어려운 영화가 단편 영화의 태반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절대 그렇지 않다.
Q. 궁금한 건 뮤직비디오는 어떻게 하게 된 건가.
류현경 : 정인 전용이다. 정인 결혼식 영상도 내 차지다 (웃음). 원래 길 오빠와 친했는데 길 오빠가 정인 언니의 두 번째 앨범 프로듀서였다. 그때 길 오빠가 나보고 뮤직비디오를 찍으라고 해서 찍게 됐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서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산을 좋아하는 거다. 그래서 언니랑 일주일에 1~2번씩 산을 같이 다니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코드가 딱 맞아 떨어졌다.
Q. 길은 왜 류현경에게 뮤직비디오를 맡긴 건가.
류현경 : 길 오빠가 콜라보레이션을 좋아한다. 리쌍 뮤직비디오도 류승완 감독님이 찍기도 했다. 정인 역시 여자 감독하고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맡긴 것 같다. 내 단편을 보지 않았음에도 그냥 믿어준 거다. 성격상 잘하겠거니 생각하고. 뭐가 됐던 믿어주니까 그 힘으로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인연이 됐다.
Q. 그러고 보면 트레일러도 뮤직비디오의 느낌도 있다.
류현경 : 트레일러에 들어간 음악도 조정치 오빠한테 부탁한 거다. 영상도 보여주지 않고, 잔잔한 거 아무거나 보내라고 해서 보내준 건데 딱 어울리는 거다 (웃음). 그래서 나중에 영상 보내주고, 수정해 달라고 하고.
Q. 연출할 때와 연기할 때, 현장의 느낌은 어떻게 다른가.
류현경 : 연기할 때는 굉장히 신이 난다.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 고민은 있겠지만, 연기를 한다는 자체가 좋고, 흥이 난다. 결과물보다는 현장에 있을 때가 매우 즐겁다. 반면 연출하면 일단 잠을 못 잔다. 그리고 뭐가 안 됐을 때 설명을 해줘야 하는데 잘 안 된다. 어렸을 때 현장에서 감독님들이 직접 시범을 보여줄 때 왜 보여줄까 생각했는데 내가 초반에 그랬다. 말로 잘 설명을 못 하니까 ‘이렇게 해봐’라면서 연기를 하는 거다. 안 좋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답답하니까. 찍을 때는 모두 적인 것 같다가 만들어 놓으면 ‘아, 이렇게 하려고 그때 그랬구나’라고 말해주면 그때 고마워진다. 하지만 연기할 땐 모두가 내 편인 것 같다. (웃음).
Q. 앞서 연출 관련된 계획은 들었으니 배우로서의 계획이 듣고 싶다. 임상수 감독 영화에 캐스팅됐다는 소식도 있었고, 단막극 촬영에 들어간다고 하던데.
류현경 : 임상수 감독님 작품에서는 작은 역할이다. 당장 단막극 촬영이 있고, 드라마 ‘기황후’에도 특별출연한다. 최근에 연기하면서 생각한 건데 배우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예전에는 읽고, 고민하면 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더 많았다. 훈련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 했다. 훈련이라는 게 대사를 더 해보는 게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신체훈련부터 많은 걸 의미한다. 그래서 나 자신을 다지는 시간을 당분간 가지려고 한다. 감으로 하는 건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이제까지는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한 걸 토대로 해왔다면 앞으로는 거기에 더해 배우로서 가질 수 있는 단단함 같은 걸 길러야겠다는 생각이다.
Q. 어떤 배우를 꿈꾸는 건가.
류현경 : 평생 연기한다고 마음먹었고, 계속 해나가고 있다. 80세까지 연기한다고 치면 이제 30살이니까 50년 남았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그 안에 내가 해야 할 역할은 무수히 많을 거로 생각하다. 항상 뭐가 부족할까를 생각하고, 어떤 역할이든 주어졌을 때 다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잘 가꾸고, 다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ninephoto@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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