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킥애스’ 스틸 이미지

힛걸이 돌아왔다. 한 뼘 더 자란 클로이는 ‘그레이스’라는 미들 네임을 부각시키기엔 아직 어리지만, 떡잎부터 우아한 것은 사실이다. 그녀에게 어떤 미래가 기다릴까?

영화 ‘킥애스’ 스틸 이미지

여성 아이돌을 응원하는 삼촌팬이 아닌지라, 뭔가에 환호하거나 춤을 출 일은 없다. 하지만 2010년 4월은 좀 달랐다. 지금은 사라진 중앙극장에서 시사회 도중에 벌떡 일어나고 싶었다. 쌍권총을 뽑은 그녀가 복도를 날렵하게 질주하면서, 갱스터들에게 총알을 선사하는 순간이었다. 이 때 그녀를 위한 BGM으로 조안 제트 앤 블랙허츠의 ‘배드 리퓨테이션(Bad Reputation)’이 울려 퍼졌다. 나도 그녀의 돌격에 잔뜩 놀란 찌질이 악당처럼 정신줄을 놓은 채, 조금은 소심하게 환호했다. 괜히 누가 보지 않을까 염려하는 동안, 그녀는 스크린에서 다람쥐처럼 종횡무진 미끄러졌다. 그리고 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마존에 들어가서 힛걸의 피규어를 구입하고 흐뭇함에 빠지기도 했다. ‘힛걸’ 민디를 연기한 것은 바로 클로이 그레이스 모레츠였다.

1997년 애틀란타에서 태어난 그녀는 네 살 때부터 TV에 출연한 아역 스타다. 그녀가 스크린에서 제대로 된 연기를 선보인 것은 ‘아미티빌 호러’(2005)였다. 막내딸 첼시로 등장한 클로이는 “조디는 진짜 있어요!”라고 외치거나 크게 비명을 지른다. 즉 유령이 보인다고 고백하는 어린 딸로 등장했다. 아역 연기의 정석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귀여움과 연기력을 모두 장착한 연기 신동이었다. 아직 인형처럼 귀여운 일곱 살 소녀이다 보니, 극장에서 자신이 출연한 호러 영화를 보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영화 ‘렛미인’ 스틸 이미지

보이지 않는 유령을 따라 지붕에 올라갔던 이 소녀는 한 뼘 자라서 ’500일의 썸머’(2009)에서 오빠 톰(조셉 고든 레빗)에게 훈수를 두는 깍쟁이 여동생 레이첼로 등장했다. 118일째 장면에서 톰은 어린 여동생에게 연애 상담을 한다. 이때 그녀는 “아름다운 환상 뒤에 숨지 말고, 썸머에게 직접 물어봐!”라고 직언을 한다. “쉽게 생각해. 겁내지 마”라고 오빠에게 충고하는 그녀가 노란 축구 유니폼(백넘버 3)을 입은 클로이였다. 열여섯 살이나 많은 조셉을 무척 한심하게 바라보는 클로이의 표정 연기는 압권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떡잎부터 참 독특했다. 그리고 ‘킥 애스’(2010)에서 민디로 등장하면서 트윈 세대(8-14세)를 대표하는 할리우드 여배우로 우뚝 섰다. 클로이의 자연스런 육두문자 남용보다는 그녀의 입술 모양에 놀랐다. 분노에 찬 그녀가 입술을 강렬하게 움직이는 모습에 감탄했다. 소녀에게서 어쩌면 저렇게 배짱 두둑한 연기가 나올 수 있을까!

민디 캐릭터의 시니컬함 덕분에 ‘렛 미 인’에 대한 기대감도 한층 높아졌다. 금빛 머리카락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린 ‘렛 미 인’(2010)에서 클로이는 뱀파이어 소녀로 등장했다. 원작 스웨덴 영화에서 뱀파이어 소녀(리나 레안데르손)가 검은 머리를 지닌 것과는 느낌이 무척 달랐다. 그녀가 살육을 벌이는 장면은 아쉽게도 특수효과에 너무 의존한 탓에, 외톨이 소년 앞에 피를 묻히고 나타나는 모습만 좋았다.

영화 ‘캐리’ 스틸 이미지

어쨌든 팀 버튼 역시 그녀의 삐딱한 정서를 알아본 것이 분명하다. ‘다크 섀도우’(2012)는 전적으로 마녀 안젤리크(에바 그린)의 독무대였지만, 그 와중에도 캐롤린 역의 클로이에게 늑대소녀로 변하는 깜찍한 선물을 잊지 않았다. 3년 만에 돌아온 ‘킥 애스 2: 겁 없는 녀석들’에서는 슈퍼히어로 힛걸과 평범한 여학생 민디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킥애스(애런 존슨)를 돕다가 도망자 신세로 쫓기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뉴욕을 떠나기 전에 킥애스와 짧은 키스도 나눈다. 영화는 명성뿐인 속편에 불과했지만, 클로이의 성장속도를 확인한 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 어느새 한 뼘 더 자라서 숙녀가 된 그녀는 긴 다리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사실 최근 미국에서 개봉한 호러 영화 ‘캐리’의 연기가 더욱 기대된다. 물론 씨씨 스페이식이 20대 중반에 연기했던 초능력자 캐리를 클로이가 어떻게 소화했는지가 관건이다. 어찌 보면 클로이가 캐스팅되면서 캐리 캐릭터가 본인의 나이를 찾은 셈이다. 아마도 10대에 이렇게 줄줄이 피비린내를 즐긴 여배우는 유례가 없다. 이것이 클로이에게 득이 될지, 독이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의 오싹한 행보를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내년 개봉 예정인 ‘래기스’에서 놀랍게도 키라 나이틀리 언니와 레즈비언 러브신을 촬영한 걸 보면, 그녀는 쑥쑥 자라고 있다. 으레 B급 영화의 여배우란 크리스티나 리치처럼 다소 음침한 구석이 있어야 제 맛인데, 클로이는 꾸준히 여신급 미모로 성장하고 있다. 앗, 이러다간 너무 예뻐서 로맨틱 코미디밖에 못하지!

글. 전종혁 대중문화평론가 hubul2@naver.com
편집. 이은아 domino@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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