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린지 오 고베 공연 모습

텐아시아에서 지난 5월 인터뷰를 했던 싱어송라이터 드린지 오가 80일간의 일본을 돌며 공연을 펼친 투어기를 보내왔습니다. *기사참조(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133888) 앞으로 총 6회 간의 연재를 통해 드린지 오가 오사카, 도쿄, 카나자와 등지를 돌며 겪었던 생생한 체험기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

2013년 4월 4일. 2집 ‘Drooled and Slobbered’가 발매됐다. 올해 초부터 바빠진 회사업무와 개인적인 부업, 횟수가 늘어난 일본 투어를 포함한 여러 공연까지, 바쁜 와중에 한 달간 빠듯하게 진행된 녹음 일정이었다. 그래서 2집은 지난 음반들보다 더 욕심을 가지게 되었고, 거기다 쉬고 싶은 생각에 회사까지 무작정 그만두어 버렸다. 이제 30대 중반을 넘어가고 있는데 뒷일은 생각지 않고 질러버린 꼴이었다.

2집 발매와 함께, 서울, 부산, 제주의 쇼케이스 투어 계획이 나왔고, 퇴사와 맞물려 이전에 짧게 다녀왔던 국지적인 일본 투어를 장기간 다녀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지금 아니면 나중엔 못할 것’ 같다는 마음이었다. 사실 다른 목적이나 이유는 없었다. 그럼 왜 일본이었을 까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비행기 값이 저렴하다”였다. 새로운 음반이 나왔으니 공연을 하면서 음반을 팔고, 공연 개런티까지 합치면 비자가 허락하는 90일까지는 어떻게든 버틸 것 같다는 낙관적인 계획이었다. 그리고 퇴직금으로 마련한 적은 액수의 비상금도 있었다. 그렇게 83일간의 일본 투어 계획의 거친 윤곽이 나왔다.

LCC 저가형 비행기의 도착지는 오사카의 칸사이 공항. 그리고 돌아올 때도 칸사이 공항에서 출발, 인천으로 귀국하는 여정을 짰다. 사실 여정이라기보다는 그저 출발하는 날짜와 돌아올 날짜를 요금이 가장 저렴한 날로 맞춰 예매했을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오사카에서 혼자 사는 일본 뮤지션 친구 카이츠부(貝つぶ)씨에게 홈스테이를 부탁하는 메일을 보내고 허락을 받은 것으로 준비는 끝났다. 최소한의 옷, 최대한의 음반, 그리고 어쿠스틱 기타 하나와 투어를 기록할 기기들. 이것으로 준비는 완료되었다. 그리고 비행기는 나와 짐을 싣고 칸사이 공항으로 날았다.

5월부터 7월까지 83일간의 투어. 5월은 시간이 많았지만 공연이 적어 배가 고팠고, 6월은 배도 고팠지만 이동도 잦아 몸까지 힘들었고, 7월은 공연 일정이 정말 빠듯했던 달이었다. 노하우도 없었고, 계획도 세부적이지 않았고 의욕만으로 시작한 투어였다. 하지만 점차 적응이 되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투어를 다녔던 도시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아오츠키쇼보의 2층. 1층은 서점이고, 2층은 카페와 공연장을 겸하고 있다

#02 오사카
오사카는 칸사이 투어의 주요 도시인 고베, 교토, 나라, 나고야의 가운데 있어서 잠 잘 곳만 있다면 머물기 좋은 도시였다. 거기다 친구인 카이츠부씨가 혼자 살고 있어 홈스테이를 제공해주었고, 칸사이 공항과도 가까워서 투어 계획을 짤 때부터 염두에 둔 곳이었다. 실제로 6월까지 캐리어와 음반을 카이츠부씨의 집에 보관하고 다니곤 했다.

이번 투어에서 오사카에서는 한 번 밖에 공연을 하지 못했는데, 클럽이 많기도 하거니와 공연을 기획할 오거나이저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위치상 고베, 교토, 나라 심지어 나고야까지 마치 한 동네처럼 활동을 하다 보니 관객도 뮤지션을 따라 쉽게 도시를 옮기면서 공연을 즐기는 식이었다. 오사카 공연은 5월 25일, 토요일 늦은 점심 즈음 서점 겸 카페 아오츠키쇼보(蒼月書房)라는 곳에서 가졌다. 카이츠부의 프로젝트 밴드인 그라탕 카니발즈(グラタンカ?ニバル)와 도쿄에서 투어중인 아다치 레이사부로(あだち麗三?)씨와 함께 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 예전 인사만 나눈 오사카의 한 오거나이저가 내가 카이츠부씨 집에서 공연도 없이 빈둥거린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기획한 공연이었다는데, 다행히 이날 많은 관객들이 2층 다다미 공간을 가득 채웠다.

전자상가와 메이드카페가 즐비한 거리에 누가 라이브가 있다고 상상이나 할까?

사실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다. 니혼바시(日本酒)의 덴덴타운(용산과 같은 전자상가)에 어울리지 않는 조그만 2층 건물의 카페였는데, 라이브 시간도 토요일 늦은 점심이고 2층의 카페 공간이 너무 작아서 10명 정도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공연 시간이 다 되가는데 관객들이 한두 명씩 들어왔다. 카페 주인이 15분 딜레이를 하자고 해서 초조한 마음에 앉아서 기다리니 10분 동안 거짓말 같이 2층 공간을 가득 매워서 뒤늦게 온 관객은 계단에 앉아 공연을 즐겼다. 그러고 보니 아오츠키쇼보, 어쿠스틱 사운드랑 잘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오사카를 떠나는 6월 마지막 날, 카이츠부씨와 뮤지션 친구들이 준비한 성찬

#03 고베
고베의 첫 인상은 매번 가도 변하지 않는 곳이었다. 부산역에서 내려 광장을 내려다 볼 때 그 느낌이었다. 산노미야(三宮)역에서 내려 바다를 보고 있으면, 뒷편에는 높은 산이 가로막고 있다. 그리고 산노미야에서 모토마치(元町)까지 걸어갈 때 아케이드의 시장과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타국인데도 꽤 친근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스페이스 오(Space eauuu)의 공연 알림판. 눈을 부릅뜨고 허리를 숙여야 내용을 볼 수 있는 도도함이 살아있다

코베는 투어 때 마다 모토마치에 있는 ‘스페이스 오(Space eauuu)’라는 곳에서 공연을 해왔다. 작년 첫 투어 때부터 인연이 되었고, 주인 커플이 인심 좋은 사람들이라 매번 공연을 흔쾌히 잡아줬다. 공간은 베이지색으로 색칠한 벽과 텅 비어 있는 듯한 인테리어가 사람을 차분하게 만드는 느낌을 주었다. 나무 의자와 나무 탁자, 심지어 같은 원목의 질감인 스피커까지. 역시 칸사이 답게 공연하는 팀들은 고베보다는 옆 동네 히메지(?路)부터 오사카, 교토까지 다양한 뮤지션이 공연을 함께 했다.

스페이스 오 전경. 텅 비어있지만 전혀 휑하지 않다

관객들은 그래도 고베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음악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스페이스 오를 좋아하기도 했었다. 처음으로 내 앨범의 컴플리트 세트(EP와 1집, 2집)를 구매한 첫 관객이 골든벨을 울린 곳도 고베였다. 그러다 보니, 공연 때 마다 얼굴을 익히게 된 관객들이 늘어나고, 나중에 이들과 친구가 되기도 했다.

7월 단독 공연 때 관객들이 가져온 음식들

5월 12일 투어의 첫머리에서 공연을 했었고, 나중에 7월 5일, 6월의 지친 일정을 끝내고 도쿄에서 다시 돌아왔을 때 ‘3개월간 일본 투어 수고많아요!’라는 타이틀로 단독공연을 기획해주기도 했다. 스페이스 오의 주인인 노무라 스미토모(野村統友)씨 역시 뮤지션이라 공연의 부담감 보다는 관객이나 뮤지션이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기획 공연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오사카나 교토와는 달리 뮤지션이 직접 공연을 기획하고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기 때문에 재미있는 공연이 많았다. 7월의 단독 공연이 그랬었는데, 마치 깜짝쇼처럼, 공연 당일 날 진행에 대해 들었었다. 1부와 2부로 나눠서 하되, 2부는 좀 더 재미있게 Q&A 시간도 가지고 즉석 세션을 할 것이라고. 그래서 2부 때는 게스트 뮤지션뿐만 아니라 주인 커플까지 뒤에 앉아 코러스를 함께 해주었다. 또한 입장료 대신 음식을 가져오라고 해서 카페 중앙 테이블 위에 먹거리가 넘쳐났다. 물론 공연이 끝나고 관객 모두 기부도 해줬다.

‘드린지씨, 3개월간 일본 투어 수고많아요!’ 단독 공연 홍보 전단지

글, 사진. 드린지 오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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