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화면" />채널A <쾌도난마> 방송화면

곧 시즌2 방영을 앞두고 있는 미국드라마 <뉴스룸(Newsroom)>은 ACN(Atlanta Cable News)이라는 거대 뉴스네트워크 방송사의 메인 뉴스를 담당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메인 뉴스의 앵커로 많은 인기와 유명세를 누리고 있는 윌 맥코보이와 책임 프로듀서인 맥켄지 맥헤일이 <뉴스룸>의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주요 인물이다. ‘제대로 된 뉴스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일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던 윌을 각성하게 하고 팀을 이끌어 나가던 맥켄지 맥헤일은 경영진으로부터 시청률을 이유로 ‘어린 딸을 살해한 젊은 백인 미혼모 케이시 앤서니의 재판’을 뉴스로 올리라는 압박을 받는다. 시청률에 떠밀린 윌이 ‘이것도 뉴스’라는 말에 맥켄지는 이렇게 말한다.

방송화면" />HBO <뉴스룸> 방송화면

“이건 오락거리(Entertainment)야. 스너프 필름이랑 똑같은 거라고”

그리고 그 말을 하기에 앞서 “애가 죽었어. 아주 문제 많은 젊은 엄마가 딸을 죽인건지 아닌지 (재판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녀 부모는 자기 딸이 사형을 당할지 말지 기다리고 있어”라고 덧붙였다. 맞다. 생각해 보면, 이건 공중의 전파를 탈만한 가치가 있는 뉴스는 아니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회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이긴 하지만 이 사실을 안다고 해서 이 사회가 변하는 것도,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나 선택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대중들이 관심을 갖기에, 그리고 그 관심이 곧 시청률로 반영되기에 이 사건은 ‘뉴스’로 다뤄진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채널A <쾌도난마>의 ‘장윤정 가족’에 대한 보도는 자연스럽게 <뉴스룸>의 이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장윤정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이고, 그녀의 삶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일정부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녀의 결혼이나, 불행했던 가정사가 곧잘 연예 뉴스에 오르내리는 것은 그것이 합당하다 아니다를 떠나서 분명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장윤정의 비극적인 가정사는 의도치 않게 비공식적으로 ‘알려졌다’. 자연스럽게 대중들의 관심을 받았고, 이에 따른 후속 보도들이 이어졌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내용에 매체가 관심을 갖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쾌도난마>가 도발적으로, 혹은 자극적으로 장윤정의 가족들을 등장시켜 인터뷰를 한 것과 그 의도에는 이 사건을 ‘뉴스’가 아니라 ‘오락거리’에 가깝게 다루고자 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방송화면" />HBO <뉴스룸> 방송화면

지금 상황에서 장윤정을 둘러싼 사건에 진실은 큰 의미가 없다. 켜켜이 오해와 잘못이 쌓인 상황에서 가족 당사자들 또한 그 진실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 상황에서 굳이 <쾌도난마>는 장윤정의 해명과 대척된 지점의 주장을 하고 있는 가족들을 불러 자극적인 내용들을 공개했다. 개인적으로 주고 받은 메시지 공개하는 일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게다가 장윤정에게 ‘해명할 일이 있으면 나오라’는 도발적인 메시지까지 던졌다. 비난이 쏟아지자, <쾌도난마>측은 미리 장윤정 측에게 질문지를 보냈으며, 다양한 입장을 들어봐야 한다는 논지의 해명을 했다. 상황이 벌어졌고, 그 상황에 얽혀 든 이해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들어 봐야지 일방적으로 가해자로 몰린 장윤정의 동생과 엄마에 대한 ‘마녀 사냥’은 온당치 않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물론 이들이 주장하는 의미에 있어 틀린 부분은 없다. 장윤정은 매체에서 발언권과 영향력을 가진 유명인이고, 상대적으로 이에 힘이 없는 장윤정의 동생과 엄마는 자칫 ‘마녀 사냥’으로 몰릴 수 있는 상황임도 맞다.

하지만 문제는 <쾌도난마>가 이 사건을 다루는 태도에 있어 조금의 ‘진정성’이라도 있는가 하는 점이며, 과연 ‘신개념 시사토크’를 표방한다는 <쾌도난마>에 이 내용이 적합한 아이템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쾌도난마>는 ‘인상 쓰게 만드는 사회적인 모순과 행태들에 대해 ‘풋’하고 웃어버릴 수 있는 그런 솔직한 대담, 신개념 시사토크’를 표방한다고 말하고 있다. 설령 ‘시사’의 영역을 폭 넓게 잡아 ‘연예계 사건’까지 포함시킨다 하더라도 이것이 과연 ‘사회적인 모순’과 ‘행태’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한 연예인의 어그러져버린 가정 문제를 굳이 끌고 나와 다시금 난도질 하고, 확실히 끝이 난 것인지 재확인하는 과정은 추한 미디어의 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듯 보였다. 장윤정의 이야기는 사회적으로 어떠한 함의도 갖지 못하는 사건이다. 그저 한 개인의 가정사일 뿐이고,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조금 더 주목 받을 뿐이다. 사회적 문제로 일반화 할 수 조차 없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난도질해 확인하고, 심지어 그런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일방적인 주장만 실었을 뿐 팩트 조차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 결국 <쾌도난마>는 이번 방송으로 ‘뉴스’가 아니라 ‘오락거리’를 다룰 뿐인 스스로의 방송 정체성을 드러낸 것과 다름 없었다.

방송화면" />HBO <뉴스룸> 방송화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뉴스룸> 속 책임프로듀서 맥켄지 맥헤일도 결국 시청률의 압박에 떠밀려 ‘케이시 앤소니 사건’을 보도한다. 시청률에 울고 웃는 방송의 특성상, 보도나 시사 방송이라 하더라도 결국 대중들이 보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을 쫓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는 <쾌도난마>가 불필요하게 ‘오락거리’에 집중하며 모두에게 타격과 상처를 입히며 주목을 받게 되었지만, 사실 ‘진정성’보다는 ‘오락성’에 우선할 수 밖에 없는 보도 및 시사 방송은 여전하다. 이러한 보도 행태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시청자들은 어쩔 수 없이 본능적으로 ‘오락성’에 끌린다. 재미와 자극을 찾는 인간의 본능이라면, 사실 인간 모두가 가해자인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오랜 세월 동안 우리의 이성을 배신해 온 호기삼과 본능에 등을 돌리자고 할 수도 없다.

결국 기대야 할 것은 보도 및 방송을 하는 이들이 사건과 사람을 다루는 데 대한 최소한의 ‘품격과 예의’다. 그 ‘품격’과 ‘예의’를 위해 그들에게는 대중들에게 주어지지 않는 수 많은 접근 권한과 정보가 주어지는 것이다. 매체가 다양해지고, 충분한 자격증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매체와 언론인(을 자처하는 이)들이 늘어나며 뉴스 환경은 상당히 혼탁해졌다. <쾌도난마>는 단 하나의 사건일 뿐이지만, 이를 통해 모두가 한 번쯤은 자신이 보고 있는 내용이 ‘진정성’을 담고 있는지 ‘오락성’만을 담고 있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글. 민경진(TV리뷰어)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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