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집 〈하강의 미학〉 이후 근 13년 만에 나온 김창기의 2집 〈내 머리 속의 가시〉가 참 반가웠다. 많은 사람이 그랬을 것이다. 동물원보다 김창기 개인의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이들도 적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새 앨범 타이틀곡 제목이 ‘광석이에게’여서 그랬을까? 앨범이 나온 후 김창기의 음악보다는 김광석에 대한 이야기들이 더 많이 흘러나왔다. 과거 김창기는 언젠가 김광석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말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광석이에게’는 김광석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김창기 자신이 돌아가고 싶은, 아름다웠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처럼 들렸다. 앨범을 가만히 들으면서 김광석보다는 오히려 김창기의 이야기가 더 궁금했다.

지난 3일 김창기가 운영하는 소아정신과 병원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를 마친 김창기는 19~21일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열리는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신사동 푸른곰팡이 사무실 옆 스튜디오 ‘사운드 솔루션’으로 이동했다. 컵라면에 소주 한잔으로 요기를 한 그는 연습실로 곧장 들어갔다. ‘강릉으로 가는 차표 한 장을 살께’를 노래하다 베이스 연주자 김정렬과 편곡에 대한 이런저런 의견을 주고받더니 해맑게 웃었다. 연습실 안 훈훈한 분위기가 바깥 컨트롤 룸까지 전해졌다. 동물원으로 한창 활동할 때도 김창기는 공연 전 긴장감을 덜기 위해 술을 한잔씩 하곤 했다고 한다. 쉰 살이 된 지금의 김창기는 그때처럼 행복할까? 자신이 ‘제일 좋은 동아리’였다고 말하는 동물원 시절처럼 말이다.



Q. 어제 마리아 칼라스 홀에서 앨범 발매 후 첫 공연을 했다.
김창기: 많이 떨었다. 무섭기도 하고.(웃음) 거의 12년 만의 단독공연이었다. 그간 동물원 공연 때 게스트로 잠깐 노래한 적은 있었는데 나 혼자 공연을 꾸리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서투르다보니 관객에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랬다.

Q. 셋 리스트를 보니 동물원 곡, 본인 곡을 골고루 하더라. 예전에 만든 곡을 지금 노래하면 어색하지 않나?
김창기: 절절한 노래는 빼고 편안한 노래 위주로 선곡해서 그런지 노래할 때 괜찮았다. 사랑을 고백하고, 옛사랑을 그리워하는 노래를 한다면 조금 어색할 수도 있겠지. ‘너의 자유로움으로 가’와 같은 곡은 감정이 안 살 것 같더라.

Q. 최근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리스트를 올리는 것을 봤다. 폴 사이먼의 가사를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더라.
김창기: 사변적이고, 자기 독백이면서 지적이고 고급스러운 면이 좋다. 중학교 2학년 때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 ‘So Long, Frank Lloyd Wright’를 듣고 너무 좋아서 건축가가 되려고 마음먹었다.

Q. 어린 나이에 진로를 결정할 정도로 그 노래가 좋았나? (‘So Long, Frank Lloyd Wright’는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게 헌정하는 곡)
김창기: 정말 좋았다. 메이저 세븐 코드에 보사노바 리듬으로 가는 그런 노래를 당시에는 들어보기 힘들었다. 내게는 참 센세이셔널한 곡이었다.

Q. 노래가 좋으면 음악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맞는 거 아닌가?
김창기: 내가 음악을 하지 못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노래도 잘 못했으니까. 하지만 내가 존경하는 폴 사이먼과 같은 노래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Q. 박기영 등 옛 동물원 동료들처럼 전업 뮤지션을 보면 어떤가?
김창기: 부럽다. 어제도 공연을 하려고 병원 일찍 문을 닫고 나서서 낮술을 마시는데, 순간 뮤지션으로 사는 것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데 가수들은 인정을 받고 살아가야 하는데, 인정하는 사람이 없으면 난처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Q. 작년 말에 동물원으로 함께 활동했던 박기영이 피아노 연주 앨범 〈La Strada〉를 발표했다. 들어봤나?
김창기: 물론 들어봤다. 좋았다. 기영이 연주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참 예쁘다. 반면에 내 음악은 예전과 달라서 듣는 사람들이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Q. 〈내 머리 속의 가시〉의 앨범재킷의 사진 속 모습이 무척 괴로워 보여서 의아했다. 무엇이 그렇게 괴롭던가? 음악도 어둡다.
김창기: 좀 연출이 됐나?(웃음) 어두운 부분들을 건드려보고 싶었다. 요새 말하는 ‘힐링’ 때문에 내 노래를 찾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것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어두운 감정으로 다가가 보려 했다. 지금의 난 비교적 안정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지만, 내 안에도 그런 어두움들이 있으니까.

Q. 오래 전 인터뷰에서 “거친 노래를 만들 수 있지만, 부를 줄은 모른다”고 말했다. 이제 거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때가 된 것인가?
김창기: 이번에 도전해본 것인데… 에이, 안 되겠더라. 기본적으로 〈내 머리 속의 가시〉는 〈하강의 미학〉을 반면교사로 만든 앨범이다. 〈하강의 미학〉은 나의 일상과 비슷한 쪽으로 가다보니 이야기가 늘어지고, 격정적인 것도 없었다. 1집에서 했던 화자의 감정을 새 앨범에서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기존 음악과 차이가 크다고 서운해 하시는 분들도 있더라.

Q. 타이틀곡이 ‘광석이에게’다. 과거 1998년에 한 인터뷰를 보니 언젠가 김광석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했더라. 지금이 그 때가 된 것인가?
김창기: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은 까먹고 있었다.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매일 노래를 하나씩 만들다보니 끄집어낼 이야기가 떨어졌다. 그러지 않아도 난 단조로운 삶을 살고 있는데 말이다. 머릿속을 뒤지다보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광석이의 이야기였다. 마음이 복잡해서 별로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 번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Q. ‘광석이에게’는 김광석을 위한 노래라기보다는 음악을 시작할 당시 김창기 본인의 추억담에 가깝지 않나? 그 때 이야기가 궁금하다. 동물원 1집은 김창완이 제작을 했다.
김창기: 김광석을 통해 임지훈 형과 알게 됐다. 1984년 대학교 3학년 때 지훈이 형이 곡을 달라고 해서 줬다. 소식이 없다가 1987년에 라디오에서 내가 만든 곡이 나오고 있더라. 그게 ‘사랑의 썰물’이다. 그 노래가 히트를 한 후 창완이 형이 날 찾아서 친해지게 됐다. 이후 다른 노래들도 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데모를 만들어 창완이 형에게 드렸더니, “그냥 너희가 불러라”라고 하시더라. 그렇게 녹음한 것이 동물원 1집이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 스튜디오에 가서 자장면, 탕수육 먹으면서 8트랙으로 한 곡 씩 녹음했다.

Q. 그 때가 노래 ‘광석이에게’의 배경이 되는 시절 아닌가?
김창기: 맞다. 정말 재미있었고, 모든 게 신기하던 시절이다. 갑자기 인기가 생겨서 부담스러웠지만 놓치기는 싫었다.



Q. 동물원의 음악들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창기: 당시 사회적 흐름에 맞게 음악이 변화하는 시기에 동물원이 독특한 사운드가 있었던 것 같다. 덜 세련되고, 동료 의식을 느낄 수 있는 가사, 그런 것들이 일부 사람들에게 시대의 배경음악이 되어 준 것 같다. 사실 노래가 그렇게 좋았던 것은 아닌데.(웃음)

Q. 과거의 김창기는 음악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노래들이 될까봐 두렵다고 했다. 찬사보다는 사랑이 간절했나?
김창기: 그렇다. 결국은 사람들이 좋아해줘야 노래를 발표하고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 아니면 나 혼자 기타 치면서 놀고, 몇몇 친구들에게 녹음해주면 그만이다. 이런 대규모 작업을 할 필요가 없지.

Q. 새 앨범에는 김형석이 총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김창기: 형석이는 동물원 시절부터 건반을 연주해준 친한 후배라서 자연스럽게 같이 하게 됐다.

Q. 〈하강의 미학〉은 조동익 밴드와 작업했다. 최근 조동익이 작업을 재개하고 있는데, 그와 같이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김창기: 동익이 형이 다시 활동한다는 것을 녹음을 다 끝나고 알았다. 그 전에는 푸른곰팡이의 존재도 몰랐다. 동익이 형만 좋다면 같이 하고 싶다.

Q. 이번 앨범은 가사도 전과 다르지만 사운드적인 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이전에 비해 세련되고 깔끔하게 다듬어진 느낌이랄까?
김창기: 그럴 것이다. 동익이 형 편곡은 치밀하다. 절제하고 통제하고 누르는 쪽이다. 이번 앨범은 젊은 연주자들의 느낌이 들어갔다.

Q. ‘원해’와 ‘난 그냥 이대로 있겠어’는 피아노와 함께 한 버전이 따로 수록됐더라.
김창기: 녹음이 다 끝나고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어서 형석이를 불러다가 라이브 형식으로 녹음을 했다. 두 곡을 한 시간 만에 녹음했다.

Q. ‘난 그냥 이대로 있겠어’가 딱 지금의 김창기 스타일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김창기: 그 노래는 우울증에 빠진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방에 처박혀서 담배만 피우는 남자의 이야기를 만들어보려 했다. 내가 보지도 않는 신문이 집에 쌓여가는 것을 보면서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세상과 단절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변화를 거부하고 정지 상태로 있는 사람들은 삶에 어떻게 적응하는지를 그려보려 했다.

Q. 혹시 본인의 이야기가 아닌가?
김창기: 내 이야기는 아니다. 물론 일부는 내 것이겠지만. 청년기 때는 정지 상태로 있어본 적이 있지만, 지금은 그렇게 살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

Q. ‘지혜와 용기’의 가사를 보면 ‘지혜와 용기 내가 했던 모든 말들을 먹어버리고 싶어’라고 이야기한다. 무슨 의미인가?
김창기: 말 그대로 식언(食言)을 뜻한다. 지금까지 자신임을 표방하며 산 것을 부정하고 싶다는 말이다. 이 노래 역시 화자가 내가 아니다. 물론 내가 100점짜리 인생을 산 것은 아니다. 60~70점은 되는 것 같은데(웃음), 20~30점 정도의 삶을 살았을 때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Q. 본인이 생각하기에 이번 앨범에서 가장 밝은 노래는 뭔가?
김창기: 밝은 노래는 하나도 없다. 마지막 곡인 ‘내 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해야 해’도 만족스러운 문제 해결이 아니라, 불만족스럽지만 안고서 살아가야 한다는 내용이다. 긍정적인 내용은 아니다.

Q. 앨범 속지에서 노래 만드는 것이 정신을 갉아먹는 미친 짓이라고 했는데, 그 정도로 힘든가?
김창기: 잘 하고 싶으니까 힘든 것이다. 잘 하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내가 20대에 만든 노래는 멋진 구석이 있다. 그때는 독했고, 진행형의 삶에서 노래를 만든 것이니까. 대부분의 작곡가들이 20대 때 대표곡을 만들지 않나? 이제 내가 50대인데 그렇게 독하게, 절절하게 살 수는 없다. 이제 그런 상황이 없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영화를 만드는 것처럼 대본을 쓰는 느낌이다.

Q. 멜로디보다 가사 쓰는 것이 힘든가?
김창기: 멜로디는 자신이 없다. 편안하게 나오는 데로 흥얼거리는 정도다. 가사는 조금 더 비중을 둔다. 잘 쓰고 싶으니까. 가사를 통해 현상의 뒷면들, 지나가는 생각들을 가져다가 보여주는 것에 치중하는 편이다.



Q. 동물원의 팬들은 동물원의 음악을 꾸준히 듣는다. 본인이 꾸준히 듣게 되는 음악은 무엇인가?
김창기: 여행 갈 때 나만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만들곤 하는데 그 음악들을 보면 앰브로시아, 보즈 스캑스, 사이먼 앤 가펑클, 닐 영, 홀 앤 오츠, 비지스, 아메리카와 같은 곡들이다. 난 여전히 70년대에 살고 있더라.

Q. 동물원으로 다시 활동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
김창기: 난 병원을 운영하다보니 다른 친구들과 함께 스케줄을 잡기가 힘들다. 책임지지 못할 일을 벌이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음악을 한다면 내 이름을 타이틀로 걸고 내 것을 하고 싶다.(웃음)

Q. 본인에게 음악이란 무엇인가?
김창기: 음악은 나에게 제일 좋은 취미다. 동물원은 제일 좋은 동아리였다. 누구 앞에 나서서 연주를 하고 노래하는 것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만드는 것은 정말 좋다.

Q. 글을 써보고 싶지는 않나?
김창기: 책을 두 권 냈는데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나는 아이의 친한 친구가 되고 싶다〉라는 제목인데,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겪었던 문제들을 수필 식으로 썼다. 족집게처럼 구체적인 해결점을 써야 책이 팔릴 텐데 그러고 싶지 않아서 내 이야기를 적어봤다. 날 아는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하더라.

Q. 공연을 준비 중이다.
김창기: 지난주부터 연습중이다. 김정렬이 하는 밴드 버드(Bird)가 연주를 해준다. 정렬이는 오래 알고 지내서 편하다. 워낙 편곡을 잘해서 나는 잘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Q. 앨범을 다 만들고 기분이 어떻던가? 머릿속의 가시는 뽑혔나?
김창기: 또 〈하강의 미학〉처럼 될까봐 불안하다.(웃음) 하지만 음악은 계속 만들 거다. 차기작은 가을쯤에 녹음을 할 예정이다. 만들어놓은 노래가 많으니까. 빠르면 올해 겨울, 늦으면 내년 봄쯤에 낼 계획이다. 차기작은 이번 앨범보다는 밝은 이야기들이 담길 거다. 일단 계속 만들어보고 정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이 들면 그만 두겠지.(웃음)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푸른곰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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