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컴퓨터 그래픽)가 필요한 장면에서 배우들은 그린매트, 블루매트 앞에서 상상력을 동원한다. 본 적 없는 지옥을 상상해보기도, 괴물을 맞닥뜨렸다고 가정해 보기도 한다. '벽 보고 연기하는 것 같다', '허공에 연기하는 것 같다', '민망하다' 등 실제가 아닌 상황, 눈에 보이는 실체가 없는 상황은 배우들이 CG 연기를 어려워하는 이유다. 주지훈은 영화 '신과함께' 시리즈부터 최근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이하 '탈출')까지 자연스러운 CG 연기를 선보였다.
주지훈은 '신과함께' 시리즈에서는 저승사자 역을 맡았다. '신과함께' 시리즈는 망자들이 49일간 저승에서 7번의 심판을 받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 7개의 지옥이 등장하는 작품이었던 만큼 영화 배경 대부분이 VFX(시각 특수효과)로 완성됐다. 배우들은 그린 매트를 배경으로 상상력에 의존해 극 중 상황에 몰입했다. 폭력을 가한 자를 심판하는 폭력지옥 장면에서 주지훈은 무중력 상태에서 헤엄치는 모습을 연기해야 했다.
'신과함께2' 개봉 당시 주지훈은 "우리 작품에 CG가 많아서 우리도 궁금해하고 그 장면이 어떻게 그려질지 상상하면서 촬영했다. 어색하지 않을까, 내 연기는 어떨까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지배종'에서는 허공에다 액션 연기도 했다. '지배종'은 새로운 인공 배양육의 시대를 연 생명공학기업 BF의 대표 윤자유(한효주 분)와 그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퇴역 장교 출신의 경호원 우채운(주지훈 분)이 의문의 죽음과 사건들에 휘말리며, 배후의 실체를 쫓는 이야기.
주지훈은 17대 1의 싸움신을 비롯해 고난도 액션 연기를 펼쳤다. 극 중 우채운은 경호원 면접에서 VR을 통해 신체 능력을 테스트 받는다. VR을 쓰고 수트를 입으면 통각을 느낄 수 있다는 설정. 주지훈은 "전신 수트를 입었다"며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부끄럽고 쑥쓰러웠다"고 말했다. 이어 "아주 타이트했다"며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수트를 입고 혼자서 액션 연기를 하는데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앞서 '신과함께' 시리즈로 CG 연기를 경험했던 주지훈은 "'신과함께'는 더 판타지적이다. 제가 저승사자다. 그 안에서 마음껏 할 수 있다"면서 "이건 경호원 캐릭터이고, 맞았을 때의 좀 더 현실적 리액션을 해야 하니 쑥스럽더라"고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12일 개봉하는 '탈출'에서도 CG 연기를 펼쳤다. '탈출'은 연쇄적으로 재난이 발생한 붕괴 위기의 공항대교 위에서 생존자들이 탈출하는 이야기다. 주지훈은 렉카 기사 조박 역을 맡았다.
제작진은 100중 추돌 사고가 발생하는 장면을 위해 광양 컨테이너 선착장에 200m의 도로를 세트로 제작하고 실제 차량을 연쇄적으로 충돌시켜 현실감을 높였다. 이후 대부분의 촬영을 국내에서 가장 큰 1300여 평의 세트장을 섭외해 바닥에 아스팔트를 깔고 중장비까지 동원하는 등 실제 대교의 모습을 재현했다. 생존자들을 위협하는 군사용 실험견들은 모두 CG로 구현됐다.주지훈은 "CG는 힘들다. 없는 걸 있다고 생각하고 해야하기 때문이다. 순간의 집중력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과함께' 때보다 등장 인물이 많았다. 시야도 다 다르다. 추상적인 상황이다. 공포라는 걸 마주했을 때 각자가 표현하는 레벨이 다르지 않나. 그런 걸 맞춰가는 게 어려웠다. 자동차 100km/h가 누군가에겐 빠르고 누군가에겐 느릴 것 아닌가. 그런 걸 서로 조율해야 하는 거다"고 전했다.
어색한 CG 연기는 몰입을 방해하고 영화의 완성도도 떨어뜨릴 수 있다. 허공에 몸짓, 발짓 하고 없는 걸 상상하면서 실제처럼 연기해낸 주지훈. '현타'가 오는 순간들을 극복해내며 실감 나는 장면을 만들어냈다.
주지훈은 '탈출'에서 당연히 CG였을 것 같은 장면을 실제 연기로 소화했다며 반전 비하인드를 밝히기도 했다. 횃불에 위스키를 내뱉어 위협적인 실험견들에게서 방어하는 장면, 좁은 트렁크 안에 올라타서는 차량 내부와 연결된 틈에 몸을 욱여넣는 장면 등이다. "육체적으로 힘들었다"고 토로하면서도 책임감 있게 어려운 장면들을 완성해낸 주지훈이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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