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피라미드 게임' 리뷰
김지연, 장다아, 류다인, 신슬기, 박나언 신예들의 반란
김지연, 장다아, 류다인, 신슬기, 박나언 신예들의 반란
*1~4화에 대한 리뷰로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괴물도 옮아. 누군가 마침표를 찍어줘야 끝낼 수 있어" '피라미드 게임'은 폭력의 발현과 전염성에 대해 꼬집는다. 미처 보지 못했던 자그마한 불씨는 빠르게 타올라 모든 것을 집어삼킬 큰 불이 되고야 만다. 사회의 축소판이라 불리는 학교 안, 은밀하지만 위태로운 '괴물 놀이'가 지속된다.직업 군인 아버지의 매번 바뀌는 발령지 탓에 전학이라면 신물이 날 정도로 많이 해본 성수지(김지연)는 백연여고 2학년 5반에 배정된다. 성수지는 반 분위기를 빠르게 스캔하고, 어울려야 할 부류와 아닌 부류를 구분하는 눈치를 탑재한 상태다. 하지만 무슨 일일까. 백연여고 2학년 5반은 뭔가 다르다. 외딴섬처럼 별관에 동떨어진 것도 꺼림직한데, 알 수 없는 적대심과 경계가 반 내부를 휘감는다.
한 달에 한 번, A부터 F까지 등급을 뽑는다는 피라미드 게임이 그 불길함의 정체였다. 인당 총 5개의 이름을 적을 수 있는 투표권을 가지며, F가 된 누군가는 암묵적인 반의 왕따가 된다. 교묘하게도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내지 않고,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이용해 괴롭힌다. 그것 역시 A등급 혹은 A등급의 허락을 받은 소수만이 가능하다. 요상한 규칙을 접한 성수지가 어리둥절한 것도 잠시, 투표의 결과는 그녀를 F등급으로 만들고 만다. "길어봐야 3달이이야" 언제나처럼 다시 전학을 간다고 생각했건만. 아버지가 졸업은 백연여고에서 시켜주겠단다. 괴롭힘을 당하던 짝꿍 명자은(류다인)에게 조언하던 그 가벼운 말들은 성수지에게 화살로 되돌아와 박히고 만다.모두가 F등급인 성수지를 미워하지만, 백하린(장다아)만은 "네 잘못이 아니야"라며 토닥인다. 긴 웨이브 머리에 단정한 가디건, 뽀얀 피부의 백하린은 완전무결한 인물처럼 보인다. '장원영의 친언니'로 주목받은 장다아는 '피라미드 게임'을 통해 첫 연기 데뷔를 했음에도 캐릭터에 완전히 녹아든다. 백하린에게는 의지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성수지는 촉이 온 듯 묘한 느낌을 받는다. 명자은에게서 풍기는 담배 냄새와 백하린의 체취가 비슷했던 것. 연예계 데뷔를 앞둔 연습생 임예림(강나언), 틈이라곤 보이지 않는 반장 서도아(신슬기)를 의심했지만, 보호색 속에 숨어 '피라미드 게임'을 만든 것은 바로 백하린이었다.
장다아는 선과 악이 뒤엉킨 백하린의 얼굴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백연그룹의 손녀로 남들이 보기엔 인정 많고 구김살 하나 없는 고등학생 소녀지만, 실상은 짓밟고 깔보고 자신의 손아귀 안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포식자이기 때문이다. 토끼의 탈을 쓴 하이에나 백하린은 명자은을 교묘하게 괴롭힌다. 복도에서 실수로 발을 밟은 듯 은근한 힘을 주어 명자은의 신발을 찍어누르고, 교실 바깥에서 은밀히 명자은의 얼굴에 담배를 가져다대기도 한다.뒤틀릴 대로 뒤틀린 백하린은 우위에서 상대를 내려다본다. 점심시간, 무리를 지어 밥을 먹는 학우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거나 폭력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B등급 방우이에게 "그런 이야기를 왜 나한테 해"라며 선을 긋는 영리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왕좌 위에 오른 백하린은 백성을 군림하듯, 학우들을 지배하고 2학년 5반이라는 견고한 성벽을 쌓아놓는다. "그럼 주제 파악 좀 해줄 수 있어?"라며 방우이를 짓누르는 백하린의 심리에 깔린 태도는 무엇일까.
모든 일의 중심에 백하린이 있었음을 알아챈 성수지는 반격을 준비한다. 피라미드 게임을 무너뜨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한때는 F등급에서 C등급으로 올라 반의 규칙에 순응할까도 생각했지만, 체계 자체에 균열이 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챈다. 뾰족하게 솟아올라 '다른 이들의 양심을 콕콕 찌르는 삼각형'을 닮은 피라미드 게임은 처음에는 그저 수행평가와 내신을 위한 편의에서, 다른 이들을 지배하고 깔아뭉개는 형태로 변화한 것이다.
'피라미드 게임'은 백연여고 2학년 5반이라는 잔혹한 사회의 축소판 안에서 약자와 강자라는 굳건한 계층이 어떻게 무너질 것인지를 그리고 있다. 신예 '장원영 친언니' 장다아, '솔로지옥2' 신슬기, JTBC '18어게인'(2020)으로 데뷔한 류다인, tvN '블라인드'(2022)로 첫발을 내디딘 강나언과 여기에 tvN '스물 다섯, 스물 하나'(2022)의 고유림 역으로 청춘의 초상화를 그려낸 우주소녀 출신 김지연까지. '괴물이 될 것인가' 혹은 '괴물을 만들어낼 것인가' '피라미드 게임'은 보편적이지 않은 소재 안에 가장 은밀한 진실을 숨겨두고 있다.
티빙 오리지널 '피라미드 게임' 총 10부작. 2024년 2월 29일 공개.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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