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분의 일초' 김성환 감독 인터뷰
한국 영화의 역사를 보면 위기 속에서 신인 감독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이들로 세대교체가 이뤄지며 발전해왔다. 1990년대 초반부터 들이닥친 한국 영화의 위기를 극복하는 원동력이 됐던 감독 중 하나가 '쉬리' 강제규 감독인 게 대표적 사례다. 요즘 한국 영화계가 위기다. OTT의 홍수 가운데서 극장을 찾는 관객 수가 급감하며 영화 산업 전체가 휘청이고 있다. 이 와중에 신인감독이 장편영화로 첫 데뷔를 한다. 소재도 쉽지 않다. 검도다. 그럼에도 이 감독 영화에는 무언가 새로움이 엿보인다. 한국 영화계를 바꿔갈 차세대 감독군 중 하나로서 손색이 없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그를 만나 영화와 그의 영화관을 들어봤다.
영화 '만분의 일초'는 장편 데뷔를 치른 신인 김성환 감독의 치열한 고민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만분의 일초'는 검도 국가대표 선발전을 준비하는 재우(주종혁)이 과거 자신의 형을 사고로 죽게 한 상대 태수(문진승)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영화 속 재우의 감정은 마치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생기는 파동처럼 단계적으로 고조된다. 10년 전, 검도 소재의 영화를 찍기로 결심했지만 딱 맞는 이야기를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김성환 감독. 어쩌면 평정심을 유지하며 찰나의 순간을 발견해야 하는 검도처럼 김성환 감독 역시 '만분(萬分)의 일초'를 위해 한 발자국씩 차분히 걸어온 것이 아닐까. 장편 데뷔를 무사히 치른 김성환 감독의 차기작이 벌써부터 궁금해지는 바다.
첫 장편영화 '만분의 일초'로 많은 호평을 받고 있다.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 판타스틱 작품상과 왓챠가 주목한 장편상, 제8회 런던아시아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수상에 이어 제47회 상파울루국제영화제 신인 감독 경쟁 섹션에 초대되기도 했다.'만분의 일초'를 통해 관객들이 감상 아닌 체험을 하길 바랐다. 낯선 지점들이 있을 것이라 당연히 조마조마했다. 나대로 표현하고자 했지만, 부천국제영화제와 런던아시아영화제에서 상까지 주시니 감사하다. 국내외로 좋은 반응을 얻으니 굉장한 위안이 되는 것 같다.
스포츠 영화에서 많이 다루고 있지 않은 검도를 소재로 하고 있다. '만분의 일초'를 기획하게 된 시작이 궁금하다.
검도는 늘 애정이 가고 찍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소재였다. 선수들의 기합과 목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면서 뮤지션들처럼 그들만의 언어를 하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검도라는 소재를 담을 이야기를 찾지 못해서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만분의 일초'는 성장담이 아닌 도약담으로 그려지기를 바랐다.
어색해 보이지 않게 검도 장면들을 구현하기 위해서 자료 조사도 많이 했을 것 같다.
구글을 다 뒤져서 자료를 찾았던 것 같다. 스태프들에게도 검도라는 스포츠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 다 모여있을 때 PPT로 브리핑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영상도 찾고 사진도 찾다 보니, 자료만 12GB가 된 것 같다.
검도 장면을 구현하기 위해서 배우들의 훈련 과정도 필요했을 테다. 검도 연습은 어떤 식으로 진행했나.
검도 하시는 분들은 태부터 다르다. 곧은 느낌이 있다. 대역을 쓰는 장면들도 있지만, 배우들이 가만히 서 있는 자세에서도 그 느낌이 나기를 바랐다. 용인대학교 학생들과 매칭 훈련을 하면서 연습을 했던 것 같다. 특히, 호면을 쓰기 전에 두건을 쓰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의외로 그 장면이 테이크를 오래갔다. 18번 이상 찍었던 것 같다(웃음).
주종혁, 문진승 배우가 국가대표를 준비하는 선수들처럼 검도 연기를 비롯한 섬세한 감정선까지 스크린 위에 잘 표현해냈다. 찰떡 캐스팅이라는 생각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서는 흥행이 되고 신인 감독으로서 주목받아서 산업에 들어갈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를 바란다. 캐스팅 단계에서 조금 인지도가 높은 배우들과 함께하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동자가 중요한 배우가 나한테는 가장 중요한 캐스팅 조건이었다. 호면 너머에 보이는 눈동자 그림을 지도 교수님께 보여드렸더니, 주종혁 배우를 소개해주셨다. '그래. 이분이다' 싶었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캐스팅 전이어서 같이 할 수 있었다. 문진승 배우는 독일 유학을 끝내고, 한국 활동을 시작하며 '만분의 일초'로 첫 장편 영화를 찍은 상황이다. 둘 다 스케줄이 허락되어서 다행이었다.
국가대표 선발전을 준비하는 재우와 태수의 검도는 비슷한 듯 다른 느낌이다.
재우와 태수가 검도를 겨루는 양상이나 형태를 이용해서 특징을 표현하고자 했다. 재우가 폭풍처럼 몰아붙이면, 태수는 수비 탁구처럼 하기를 바랐다. 태수의 경우, 재우의 아버지가 검도를 직접 가르쳤는데 어떤 검도를 가르쳤을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두 사람의 자세와 합이 다른 것을 통해서 심리를 대변하고 싶었다.
'만분의 일초'를 통해 주종혁과 문진승에게 끌어내고 싶었던 얼굴이 있었나.
두 배우와 처음 만났을 때, 캐릭터의 이미지에 관해서 이야기해줬다. 주종혁 배우한테는 압력밥솥 그림을 보여줬다. 영화는 재우의 1인칭 시점으로만 한정되어 있는데, 태수라는 불을 붙어서 압력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재우 입장에서 태수는 밉지만, 동시에 자신이 못 본 시간 속의 아버지도 궁금할 것이다. 주종혁 배우는 늘 포커페이스를 연기해야 했다. 문진승 배우가 연기한 태수가 입는 흰 도복은 재우의 아버지가 입은 도복을 떠올리게 한다. 그가 구사하는 거울 같은 검도가 태수 그 자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애정하는 장면이 있나.
재우와 태수가 등 스트레칭을 하면서 내적 심리전을 하는 장면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스트레칭하면서 껄끄럽지 않겠나. 서로 등을 맞대며 무게를 온전히 맡길 때, 버티는 사람도 올라간 사람도 긴장이 된다. 그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든다.
장편 영화는 첫 도전이다. 영화가 개봉하고 관객들을 만나면서 일종의 성취감이나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전심전력을 다한 영화라는 점에서 성취감이 든다. 물론 진정한 성취는 개봉 이후에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엔딩에 다다라 재우가 성장보다는 도약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에 재우가 꽉 움켜쥔 손을 놓는 엔딩은 확고했다. 승리했는데 아버지를 보고 싶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다. 과거 회상에서 아버지를 떠올릴 때, 비가 오지 않나. 그것을 치환해서 눈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만분의 일초'는 감상이 아니라 체험되는 영화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정화되고 낯선 자유가 느껴지는 영화로 가닿는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준비하고 있는 차기작이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소재가 있다면 무엇인가.
인간의 마음을 다루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매트릭스'와 '트루먼 쇼'를 정말 좋아하는데, 그 영화들은 단순하지만 아름다움을 다루는 영화들이다. 당장에 준비하고 있는 차기작은 없지만, 다시금 기회가 닿는다면 관객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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