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서 '진리에게' 첫 선
'진리에게' 스틸 /사진 = 부산국제영화제
≪최지예의 별몇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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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에게' 별몇개? = 없음

"나는 두려움 그 자체이지. 다만, 화려하고 싶을 뿐"

故 설리의 일기장 속 최진리는 화려한 것을 동경하는 두려움이었다. 영화는 몇 차례나 해당 문구를 스크린에 띄워 관객의 눈에 이 메시지가 들도록 안내했다.지난 7일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 베일을 벗은 다큐멘터리 영화 '진리에게'(감독 정윤석)는 고 설리의 생전 인터뷰와 5막으로 이뤄진 도로시(설리)의 여정이 교차하여 담겼다.

인터뷰 영상 속 설리는 그 이름처럼 하얀 배꽃 같았다. "본인이 예쁘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별로 망설이지 않고 "네"라고 말하는 눈빛이 해사했다. 그렇지만 이내 설리는 "본인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냐"는 물음에 "우월?"이라고 반문하며 내내 망설이며 침묵하다 결국엔 고개를 저었다.

영화 '페르소나 설리' 메인 포스터. /사진제공=미스틱스토리
설리의 인터뷰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기다림'이었다. 설리는 감독이 던지는 대부분의 질문에 즉답하지 못했다. 짧지 않은 시간을 기다려 침묵을 깨고 돌아온 대답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설리가 있었다. 꽤 많이 주저하고 확신이 많지 않은, 두려움이 가득한 스물넷 최진리였다. 머리카락을 정돈하는 손길, "음..."이라며 말을 끌다가 끝내 웃어버리는 얼굴. 쏟아진 눈물 탓에 고개 숙인 어깨에서 전해지는 미동. 동시에 설리의 침묵이 기대 이상으로 답답하고 좀처럼 참기 어려운 나를 발견했다. 그러다 순간 깨달았다. 우리는 과연 이 소녀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며 기다려 준 적이 있었을까.

감독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는 것. 우리가 찰라의 짧고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너무나 쉽게 한 사람을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아채길 바랐던 것 같다.

실제로 인터뷰에서 설리는 질문에 대한 답보다 행간의 공백을 통해 진짜 답을 내놓고 있었다. 말로 채워지지 않은 침묵 속 설리의 표정과 눈빛, 제스처에서 설리의 당시 마음이 더 와닿았다. 설리는 인터뷰 마지막으로 주어진 3분의 시간 역시 망설임과 침묵으로 흘려보냈다. 영화 속에서 감독이 기대한 주제 의식이 잘 작동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일면 개운치 않은 부분도 존재한다. 설리 죽음의 원인이 생전 고인을 향한 대중의 몰이해와 섣부른 판단에서 온 악플이라고 단정하는 듯한 감독의 시선이 그것이다.

영화의 첫 질문에서 사람들이 설리를 두고 '우월한 미모'라는 수식어를 쓴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설리가 '말의 무게'에 대해 고민하는 셀프 카메라 영상이 영화의 마지막에 배치됐다는 점에서 '설리에게'는 말 즉, 악플을 주요 주제로 삼았다.

다만, 이를 다루는 방식에서 던져진 악플 관련 여러 개의 질문, 예능프로그램 '악플의 밤' 촬영분 삽입 등이 상당 부분 감독의 정해둔 의도에 따라 전개되고 있어 시각에 따라서는 불편하게 비칠 가능성도 있다고 여겨진다. 악플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해당 메시지는 분명 다룰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악플이 고인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처럼 그려지는 것은 무리가 있다 생각된다. 고인의 죽음과 관련 악플이 작용했다고 보는 것은 우리의 짐작이고 추측일 뿐, 명확한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이 다큐멘터리의 공개 결정 역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생전 설리의 동의 하에 공개를 목적으로 촬영된 영상이라 할지라도, 고인이 현재 어떤 의사도 밝힐 수 없는 상태라는 걸 고려할 때 공개를 강행하는 것이 맞느냐 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메시지가 어떠한지, 호불호나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문제 소지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텐아시아DB
와닿았던 것은 하늘로 올라가는 도로시의 여정이 녹아진 애니메이션 부분이었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우리 모두가 한 번은 맞이할 '죽음'이라는 종착지가 자신의 도시로 돌아가는 도로시의 뒷모습으로 갈음돼 고 설리에 대한 '건강한 추모'라는 지점과 잘 맞았다는 인상을 준다.

최지예 텐아시아 기자 wisdomart@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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