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리띠리디~와아 와아 앙~' 서부극 영화를 즐겨보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 멜로디는 안다. 황야 위에 총잡이들이 서 있고 담배를 질겅거리며 무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모습. 이는 영화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메인 테마다.
'넬라 판타지아~~'로 유명한 그 멜로디는 영화 '미션'의 메인테마로 쓰였다. 영화 초반부에 가브리엘 신부가 원주민 앞에서 오보에로 연주하는 그 장면은 영화 음악이 단순한 배경음이 아닌 영화 서사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여실히 증명했다. 이 음악들은 모두 영화 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의 작품이다.
엔니오 모리꼬네가 2020년 7월 고인이 된 3년만에 스크린으로 환생한다. 오는 5일 엔니오 모리꼬네의 다큐멘터리 영화 '엔니오:더 마에스트로'가 개봉할 예정이다. 다큐멘터리 작품이지만, 음악을 다루는 만큼 관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할 예정이다. 그는 1961년부터 영화, 드라마 업계에 발을 들였다. 업력만 50년 가까이 된다. 세르지오 레오네, 롤랑 조페, 주세페 토르나토레, 테렌스 멜릭, 쿠엔틴 타란티노 등 거장 감독들과 작업했다. 400여편이 넘는 영화와 드라마가 그의 손을 거쳤다. 2007년 명예 오스카 상을 받고, 2016년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헤이트풀8'으로 생애 첫 아카데미 수상하며 업적을 인정받았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1964년 스파게티 웨스턴(기존의 정형화된 미국 서부 영화의 틀을 깬 1960~70년대 이탈리아산 서부영화) 영화 '황야의 무법자(A Fisful of Dollars)'의 음악을 담당하면서부터 명성을 얻게 됐다. 이탈리아 출신인 두 사람은 협업을 통해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 달러 3부작으로 일컫는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를 함께 하며 관객들에게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에 대한 강한 인상을 남겼다.
1964년 개봉한 '황야의 무법자'는 이탈리아식 서부극을 알린 작품이다. 이름 없는 남자(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마을에 당도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흔히 총잡이들의 법칙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존 포드 감독의 미국식 할리우드는 선과 악이 이분법적으로 나뉘고 인디언과 백인의 차이를 작품 안에 넣었다. 반면 스파게티 웨스턴의 특징은 뒤에서 습격하는 것이 아니라 대결과 결투의 구도로 싸움함과 동시에 뚜렷한 선악의 경계는 흐릿해진다는 점이다.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황야의 풍경 위에 얹어지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Titoli(영어로 Title이라는 뜻)'는 음악의 제목처럼 휘파람 소리가 주가 된다. 사막을 청각적으로 표현하는 이 곡은 클래식을 주로 사용하는 영화 음악계에서 하모니카, 전기 기타, 리코더, 오카리나, 휘파람, 채찍 등을 대신 사용했다. 해당 곡은 'We can fight'라고 강한 남성의 목소리로 반복적으로 외치는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진다.
1966년 개봉한 '석양의 무법자'는 김지운 감독의 작품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원작으로도 국내 팬들에게 친숙한 작품이다. 앞서 설명한 ''띠리띠리디~와아 와아 앙~!'가 테마로 흘러나오는 영화이기도 하다. 사막의 코요테 소리를 흉내를 낸 소리이며 강한 중독성으로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곡이다.
이어 세르지오 레오네와 마지막으로 함께 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ost 'Deborah's Theme'는 메인 테마보다 더 유명하다. 배우 로버트 드니로, 제임스 우즈, 제니터 코넬리, 조 페시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출연한 이 영화는 251분이라는 어마어마한 러닝타임을 갖고 있다. 1921년부터 1968년에 이르기까지, 뉴욕 뒷골목의 갱들의 범죄를 다룬 작품이다. 그중에서도 'Deborah's Theme'은 극 중 누들스(로버트 드니로)가 짝사랑하는 데보라(엘리자베스 맥거핀)을 떠올릴 때, 등장하는 곡이다. 기나긴 세월을 건너 데보라에게 닿기까지의 애절한 마음이 담긴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선율이 인상적이다. 이 곡을 듣다 보면, 누들스와 데보라의 세월의 발자취를 자연스레 연상할 수 있을 테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을 제외하고도 엔니오 모리꼬네는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과의 협업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1988년 개봉한 이탈리아 영화 '시네마 천국'의 메인 테마 'Love Theme'은 초반부의 경쾌한 선율부터 바이올린 연주로 자동으로 주인공 토토(살바토레 카스치오)의 어린 시절을 추억을 소환하는 곡이다. '시네마 천국'은 영화가 세상의 전부였던 어린 소년 토토가 시네마 천국 극장에 가서 영사 기사 알프레도(필립 느와레)와 친구로 지내며 영사 기술을 배우며 키워가는 우정과 사랑을 담고 있다. '따라라란 ~ 따라라란'이라고 반복되는 구절은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하다. 영화의 엔딩 신에 얹어져 감동이 배가 된 곡이기도 하다. 아들 안드레아 모리꼬네가 작곡하고 엔니오 모리꼬네가 편곡했다. 'Love Theme'을 제외하고도 영화의 사운드 트랙 전체는 너무나 아름다운 선율로 아직도 사랑받고 있다. 'Cinema Pardiso' 역시 현악기들의 연주가 인상적인 곡이다.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1998년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영화는 1900년, 유럽과 미국으로 오가는 버지니아 호에서 태어나 한 번도 육지에 발을 내디딘 적 없는 천재 피아니스트(팀 로스)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Playing Love'는 주인공이 짝사랑에 빠지는 순간의 곡으로 즉각적으로 바뀐 감정처럼 멜로디가 변화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평생을 배 안에서 살아가던 주인공이 바깥으로 나가기를 결심하는 설레면서 두려운 감정에 대한 포착을 담아냈다. 한 음씩 섬세하게 치는 피아노의 선율과 느리지만 강한 울림이 영화의 상황과 조화롭게 맞붙는다.
마지막으로 테렌스 멜릭의 1973년 영화 '천국의 나날들'은 거대한 자연 안에서 왜소한 인간의 존재를 담아낸 작품이다. 세계적인 촬영감독 네스트로 알맨드로스가 시력을 잃어가는 상태에서 찍은 영화로도 유명한 이 작품은 엔니오 모리꼬네의 웅장한 음악이 더해 최고의 명작으로 꼽힌다. 배우 리처드 기어와 브룩 아담스, 샘 쉐퍼드 주연으로 뒤엉키는 청춘들의 사랑과 함께 강렬한 선율이 인상적이다. 그중에서도 음악 'HARVEST'는 자연의 웅장함처럼 영화를 꽉 채워져 있어서 극의 긴장감을 더한다. 자연의 빠르게 지나는 모습처럼 바뀌는 멜로디 역시 하나의 포인트다.
사실 지금까지 소개한 엔니오 모리꼬네의 곡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의 대표적인 명곡들만 겨우 언급했을 정도. 이 외에도 수많은 작품에서 그의 선율은 아직도 잊히지 않고 있다. 영화의 시각적인 이미지뿐만 아니라 귀로 듣는 영화 음악에 한 획을 그은 엔니오 모리꼬네. 그는 타계했지만, 그의 음악은 아직도 많은 관객의 가슴에 남아 울림을 주고 있다. 오는 5일 개봉하는 '엔니오:더 마에스트로'에서 트럼펫 연주자 시절의 엔니오 모리꼬네와 아내 마리아 트라비아와의 순간, 그의 명곡이 완성한 시그니처 명장면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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