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더랜드'의 익숙한 캐릭터들
그 시절, 우리가 봤던 남주와 여주
사랑 그리는 방식 변했는데…'킹더랜드' 재벌남·캔디녀 로맨스 통할까
'킹더랜드' 공식 포스터 /사진 제공=앤피오엔터테인먼트, 바이포엠스튜디오, SLL

언젠가부터 로맨틱 코미디물의 공식이 사라졌다. 2000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 후반에 이르는 작품들은 '현실판 신데렐라'처럼 싸가지 없는 남주와 캔디형 여주의 사랑이 하나의 공식처럼 여겨졌다. 2020년대 들어서는 동화보다 현실을 주목한 로코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JTBC 드라마 ‘킹더랜드’는 시대를 역행이라도 한 듯 사라졌던 공식을 그대로 적용하는 모양새다. 2023년, 시청자들은 싸가지 없는 남주와 캔디형 여주에 얼만큼 공감할 수 있을까.

지난 17일 첫 방송된 ‘킹더랜드’는 웃음을 경멸하는 남자 구원(이준호 분)과 웃어야만 하는 스마일 퀸 천사랑(임윤아 분)이 호텔리어들이 꿈인 VVIP 라운지 ‘킹더랜드’에서 펼쳐지는 로맨틱 코미디물. 전작인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왕위에 오르는 왕세자 이산 역을 연기했던 이준호는 '킹더랜드'에서 싸가지 없고 안하무인의 재벌가 남주 구원 역을 맡았다. 임윤아가 연기한 천사랑은 호텔리어를 지망하는, 언제나 밝은 미소를 잊지 않는 캐릭터다.

'킹더랜드' 이준호와 임윤아 /사진 제공=앤피오엔터테인먼트, 바이포엠스튜디오, SLL
두 캐릭터를 보고 있자니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든다. '킹더랜드' 1화에서 구원은 낙하산을 타고 등장했다. 정체를 숨기고 인턴 사원으로 첫 출근하지만, 적응하는 시도도 하지 않고 이내 때려치는 무책임한 태도를 드러냈다. 천사랑은 킹호텔의 채용 조건에 맞지 않은 2년제 출신임에도 학벌을 극복하고 한 달짜리 실습생에서 로비 데스크까지 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호텔 안에서 스쳐지나간 구원과 천사랑은 7년 만에 운명처럼 킹호텔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전성기라고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시크릿 가든'의 현빈은 "길라임 씨는 언제부터 그렇게 예뻤나"라며 뭇 여성들의 마음을 훔쳤고, 좋아하는 감정을 역질문하던 '상속자들'의 이민호는 "나 너 좋아하냐"고 물었다. '주군의 태양'의 소지섭은 무뚝뚝하게 툴툴거리면서도 해사한 여주에게 빠져들었고, 후발주자 '김비서는 왜 그럴까'의 박서준은 나르시스트에 자기중심적이지만 자신의 여자에게만은 스윗한 남자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시크릿 가든', '상속자들', '김비서가 왜 그럴까',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공식 포스터.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가난하지만 밝은 여주인공과 운명처럼 엮이는 나쁜 남자라는 거다. 그 시절 우리는 나쁜 남자들에게 끌렸다. 심지어 송중기, 문채원 주연의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를 대신해 감옥까지 들어간 착하지만 가난한 남자 강마루(송중기 분)은 뒤통수를 맞고 나쁜 남자가 되기로 결심하지 않았나. 하나의 클리셰처럼 작동한 재벌 3세, 회장 등의 계급을 드러내는 직급도 한 몫 했다. 남자주인공은 늘 돈이 많지만 세상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안하무인이다. 반면 여자주인공은 계급상 아래에 위치하거나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간다.

과거의 트라우마와 운명적으로 끌리는 만남 설정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난과 함께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주체적으로 일을 해결하는 여성들로 바뀌었다. 그래선지 정석적인 로맨틱 코미디물은 점차 사라지고 장르와 결합한 로맨스물이 등장하는 추세로 바뀌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판타지와 로맨스를 결합했고, '우리들의 블루스'는 휴먼 드라마와 로맨스를 섞었으며, '종이달'은 서스펜스와 로맨스를 연결했다.

'사랑의 이해' 공식 포스터.
정통으로 승부를 본 작품도 있었다. 지난 3월 종영한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가 그 대표주자다. '사랑의 이해'가 말하는 사랑은 서로를 구원하는 서사가 아닌 이해하려는 서사다. 이 작품은 KCU은행 영포점에서 일하는 하상수(유연석 분), 안수영(문가영 분), 박미경(금새록 분), 정종현(정가람 분)의 얽히고 설킨 마음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이 작품은 최종적으로 아무도 사랑이 이뤄지지 않는다. 동화처럼 아름다운 사랑이 아닌 망설임 한 번이 파국까지 끌고간다. 또한 구원은 스스로의 몫이라는 듯 빈자리로 남겨놓는다. 이런 판단이 정답은 아닌 것이 현실적인 면모를 반영해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 시청자도 있는 반면 복잡하게 꼬아 억지스럽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시대에 맞게 변형된 사랑의 형태라는 점에서는 많은 호평을 받았다.

'킹더랜드'는 어떨까. 아직 2화까지 밖에 방영하지는 않았지만, 공식 포스터의 카피라이트 문구에서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살짝 엿볼 수 있다. 웃음을 경멸하는 남자와 웃어야만 하는 여자. 이준호가 맡은 구원이라는 이름에서부터 드러나는 구원 서사다.

2023년에도 시청자들이 원하는 로맨스는 동화처럼 아름다운 판타지를 그린 우리가 봐왔던 사랑 이야기일까. ‘킹더랜드’는 어쩌면 우리에게 익숙한 관계성으로 출발했다. 구원과 천사랑이 그리는 사랑의 형태가 어떤지 아직은 짐작할 수 없지만,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진정으로 보고 싶은 사랑은 어떤 형태인지 고민해볼 필요는 있는 것 같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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