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넷플릭스

"너희같은 것들은 가족이 제일 큰 가해자인데, 왜 딴 데 와서 따질까?"

아마도 박연진(임지연 분)이 한 말 중 유일하게 맞는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문동은(송혜교 분) 인생 최초의 가해자는 엄마였고, 연진의 삶 최대의 가해자 역시 엄마였다.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극본 김은숙 연출 안길호)에는 두 명의 빌런 엄마가 나온다. 문동은의 엄마 정미희(박지아 분)와 박연진 엄마 홍영애(손지나 분)이다. 정미희는 하나 뿐인 딸 동은을 돌보지 않고 방치하는 것은 물론이고, 합의금을 받고 동은이 당한 학교폭력을 묵인한다. 동은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관심도 없던 미희는 연진이 찾아와 '문동은이 학교를 그만두게 도와주면 돈을 주겠다'는 말에 어김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동은의 반 학생 엄마들을 찾아 촌지를 받고, 동은의 자취방에 살며 남자들을 불러들인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은, 모성애라곤 하나도 없는 캐릭터다.

미희 역을 연기한 배우 박지아는 얼마 되지 않는 짧은 비중에도 화면을 압도하며 완벽한 신스틸러로 활약했다. 아무렇지 않게 욕설을 날리며 고성을 지르고, 공허한 듯한 빌런 눈빛으로 존재감을 뽐내며 시청자로 하여금 '저 배우 누구지?'라는 호기심을 자아내는데 성공했다.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한 박지아는 2002년 영화 '해안선'(감독 김기덕)으로 스크린 데뷔해 내리 5편의 김기덕 감독 영화에 출연했다. 특히, 영화 '기담'(감독 정식)과 '곤지암'(감독 정범식) 등 공포영화에서 압도하는 존재감을 나타낸 바 있다. 박연진의 엄마 홍영애는 더 하다. 홍영애는 박연진의 학폭과 악행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러지 말라'는 말을 안 한다. 든든한 뒷배가 되어 박연진이 저지른 악행을 수습해 준다. 그러다 '네 딸이 저지른 살인을 알고 있다'며 자신의 협박하는 이석재(류성현 분)를 교통사고로 위장해 살해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비어진 모정이라도 있는 줄 알았지만, 홍영애는 사고 합의에 실패해 구속 위기에 처하자 박연진의 살해 증거를 가져오라는 동은의 요구에 고민 없이 딸을 버리는 '무정'의 엄마였다.

손지나는 무속신앙에 대한 맹신과 돈에 집착하는 홍영애를 안정적으로 그려냈다.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난리치는 딸에게 "넌 네 딸이랑 잘 지내, 난 그렇게 안 됐어"라고 말하는 신은 시청자들에게 적지 않은 인상을 남겼다.

앞서 윤다경이란 활동명으로 알려졌던 손지나는 최근 자신의 본명 손지나로 활동하고 있다. 1996년 연극으로 데뷔해 영화 '밀애', '백야행', '초능력자' 등에서 연기 활동했다. 드라마 '숨바꼭질', '악마판사', '고스트 닥터' 등에 출연하며 시청자들을 만났다. 영화 '인 허 플레이스'를 통해 2014년 아부다비 국제영화제 뉴호라이즈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영화 감독 양정웅이 남편이다.

최지예 텐아시아 기자 wisdomart@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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