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이 슬프게도 아직까지 손익분기점에 도달하지 못했어요. 황동혁 감독님한테 '다른 거 좀 없냐', '돈 벌어야 하지 않겠냐', '보상해야 하지 않겠냐' 농담을 던지던 차에 넷플릭스가 들어와서 '킹덤' 같은 걸 선보이고 있었죠. 당시 스크립트 상태의 '오징어게임'을 보여주더라고요."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제작사 싸이런픽쳐스 김지연 대표가 16일 서울 소동공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에미상 수상 기념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김 대표는 영화 '남한산성'의 원작 소설을 쓴 김훈 작가의 딸. '누군가의 딸'이라는 수식어와 부담을 넘어 김 대표는 이제 글로벌 제작자가 됐다.김 대표는 서강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해 동 대학원에서 신문방송을 공부하다 영화의 매력에 빠져 1999년 전공을 영화로 틀었다. 2001년 싸이더스 픽쳐스에서 입사해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늑대의 유혹' 등의 홍보 일을 했다. 싸이더스HQ 해외사업부에서는 '데이지', '파랑주의보' 등의 해외 판매를 담당했다.
김 대표는 2008년 이든픽쳐스를 차렸고, '헤드', '맛있는 인생', '10억' 등을 제작했지만 모두 흥행을 거두지는 못했다. 이 가운데 '10억'은 박해일, 박희순, 신민아가 주연한 영화로, 거액이 걸린 서바이벌 버라이어티쇼에서 우승자 1명만이 상금 10억 원을 가지고 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 게임 참가자들은 사막과 밀림에서 1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게임을 멈출 수 없다. 여기에는 '뗏목게임', '보물찾기', '러시안룰렛' 등의 게임이 등장한다. 이 영화는 43만 명을 동원하며 흥행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10여년 뒤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킨 '오징어 게임'의 자양분이 됐다.김 대표는 간담회에서 "애들이 하는 게임을 목숨 걸고 하고 살아남으면 거액의 돈으로 바꿀 수 있다는 설정 자체가 재밌었다. '만약 나라면?'을 대입할 수 있어서 재밌게 다가왔다"며 '오징어 게임'을 접했던 때를 떠올렸다. 이어 "일본의 어려운 서바이벌물은 내가 들어가도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지 않나. 게임이 어렵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은 쉽다.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모티브가 중요했다"고 전했다.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TV(비영어) 부문에서 작품 공개 후 28일 동안 누적 시청량 기준 16억5045만 시간을 기록해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골든 글로브, 미국 배우조합상,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등에서 수상하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김 대표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시리즈를 봤다는 사실을 직면하며 '세상이 바뀌었구나' 느꼈다"며 "저도 1년 전에야 체감했던 변화다. 전 세계인들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오징어게임'의 신드롬 같은 전 세계 확산이 쇼킹한 일이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이렇게 변화된 환경에서 나아갈 것인가, 서로 피해보지 않으면서 잘 할 수 있는가가 활성화되고 시작되는 것 같다"고 봤다. 김 대표는 황동혁 감독과 함께 미국 최대 규모 소속사인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 에이전시(Creative Artist Agency, CAA)와 계약도 맺으며 글로벌 콘텐츠 제작의 통로를 열었다. 넷플릭스로 OTT 플랫폼의 힘도 체감한 김 대표는 "이전까지는 한국어로 된 콘텐츠를 누가 보느냐 했을 때 한국에 살고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사람들만 봤다면 이제는 전 세계로 나가는 통로가 있다. 그 통로를 통해 (해외에서도) 이해도가 높아진다. 그런 것들도 큰 몫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플랫폼의 힘도 있지만 K콘텐츠 자체의 저력도 있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는 "한국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재능이나 창작자들의 창의성이 단연코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또한 "제도적으로 K콘텐츠를 육성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데 ''K무엇'을 만들자'라고 의도를 가지고 하면 오히려 안 되더라. 창작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인내심을 주면서 좋은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나 유무형의 자본들을 투자해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제도, 환경적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오징어게임'은 시즌2도 제작된다. 김 대표는 넷플릭스와 시즌2 계약과 관련해 "조건을 좋은 방향으로 올려서 '굿딜'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IP 소유에 관한 이야기는 쉽게 말하면 돈을 대는 사람과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 사이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리면서 시작된 이슈인데, 여러 가지 방법으로 대안을 마련하려는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또한 "제작사가 힘을 갖는 게 중요한데, 초반에 자본을 확보하는 길이 열려야 한다"며 "국가나 민간 투자자들이 그런 쪽으로 과감히 투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제작사가 자기 자본을 확보했을 때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다"고 전했다.
누군가의 딸, 흥행에 실패한 영화 제작자에서 글로벌 콘텐츠 제작자로 거듭난 김지연 대표. '오징어게임', 그리고 '오징어게임' 시즌2을 비롯해 앞으로 선보일 작품에서도 K제작자의 저력을 선보이길 기대한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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