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가 아덴만 여명작전을 재조명했다. 가수 전진이 당시 석해균 선장의 총상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지난 17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인질을 구출하라 : 해적과의 일주일-아덴만 여명작전'이라는 주제로 이야기가 펼쳐졌다.
2011년 1월 1만1000톤급 대형 화물선 ‘삼호주얼리호’에는 21명의 선원이 탑승해 있었다. 삼호주얼리호는 이란에서 스리랑카에 가던 도중 아라비아해에서 해적을 만나게 된다.석해균 선장은 “갑자기 선내에 비상벨이 울렸다. 일등 항해사가 해적이 (갑판 위로) 올라왔고 보고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또 “이미 해적 2~3명이 올라와서 총을 들고 경계하고 있었다. 밖에 나가서 배 옆을 보니까 나머지 해적들이 줄을 타고 올라오더라”라며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설명했다.
해적은 10명 이상. 석 선장은 마이크를 들고 선내 방송을 했다. 선원들은 곧장 선박 1층 로프 창고로 대피했다. 하지만 해적들에게 발각되고 선원들은 안전을 위해 항복했다.
대한민국의 배라는 것을 알게 된 해적들은 거액의 현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환호했다. 이내 삼호주얼리호가 납치됐다는 사실이 대한민국 정부에 알려지고, 긴급회의가 열린다.이후 정부는 선박 피랍 현장에 청해부대를 보냈다. 청해부대 최영함에는 최정예 대원 300명이 탑승해 있었다. 다만 최영함과 삼호주얼리호의 거리는 2600km. 현장까지 약 이틀이 소요되는 거리다.
해군과 비밀리에 연락하던 석 선장은 “너희가 엔진을 정지시킬 때 고장이 났다. 못 믿겠으면 직접 테스트해라. 내가 없으면 이 배는 못 움직이니 쏘고 싶으면 쏘라”라며 시간을 벌었다.
최영함에서는 먼저 30명의 대원을 고속 보트로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해적 진압은 쉽지 않았고, 작전을 지휘하던 대장은 해적들의 공격으로 총상을 입었다.
이에 대원들은 며칠간 해적들을 공격하지 않고, 선박 주위를 빙빙 돌며 ‘부산갈매기’ 노래를 트는 등 기만작전을 펼친다. 해적들이 방심한 순간 대원들은 작전을 시작했고, 결과는 해적 6명을 사살, 피랍 6일 만에 선원들을 구출하게 된다.작전이 종료되고 선교 위에 석 선장이 해적들의 총을 맞고 쓰러진 채 발견됐다. 작전에 투입됐던 김규환 대위는 석 선장을 먼저 이송시킨 후 남은 해적들을 소탕했다.
석 선장의 상태를 듣던 전진은 이내 눈물을 보였다. 전진은 “총을 이렇게 많이 맞으셨다고? 복부에만 맞으신 줄 알았는데”라고 말했다. 또 임무를 마친 대원에 대해서는 “왜 세계 최강 UDT인지 알겠다”고 감탄했다.
가장 가까운 오만 병원으로 이송된 석 선장. 한국 정부는 이국종 교수를 파견시켰고, 이 교수는 석 선장의 상태를 보고 한국으로 갈 것을 결정한다.
비용은 약 4억 4000만원이었고 이 교수는" 내 이름으로라도 빌리겠다"라며 이송에 필요한 에어 앰뷸런스를 대여했다. 한국에 도착한 석 선장은 마지막 3차 수술을 받았고 5일 만에 눈을 뜨게 된다. 이에 아덴만 여명작전을 시작한 지 약 288일 만에 해피엔딩을 맞게 된다.
이후 석 선장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마음을 다잡고 앞을 보면 어려움 속에서도 길이 있다. 포기하지 마라” 라고 했다.
이 교수 역시 "당시 작전에 투입됐던 대원들은 지금도 그 일을 한다. 한국 사회가 버티는 가장 큰 힘은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 덕분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윤준호 텐아시아 기자 delo410@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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