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국내 남성복 1호 카루소를 론칭 했습니다"

"80년대 조용필부터 현재 이정재까지, 모두 제 옷을 입었죠"

"남성복 디자이너 최초로 파리 컬렉션에 진출했어요"

"최초로 홈쇼핑에 진출해 최고 매출을 찍었습니다"

"서두르지 마세요. 그리고 도전하세요"
장광효 디자이너./ 사진=조준원 기자

<<노규민의 만남의 광장>>

텐아시아 노규민 기자가 매주 일요일 급변한 미디어 환경에서 방송, 가요, 영화, 패션 등 연예계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전합니다. 익숙지 않았던 사람들과 연예계의 궁금증을 직접 만나 풀어봅니다.


11일 오후 청담동 명품 거리 초입에 자리한 카루소 빌딩. 오버사이즈 갈색 체크무늬 자켓과 운동화로 맵시를 부린 사내가 들어왔다. 무심하게 주머니에 넣은 손과 단단해 보이는 눈빛. 부조화할 것 같은 두 요소를 자연스럽게 매칭한 디자이너 장광효 선생의 아우라는 60대라는 나이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정재, 정우성, 이병헌, 현빈, 성훈 등 웬만한 40~50대 배우들 모두 제가 만든 옷을 입었죠."
'패션 디자이너' 외길 인생을 40여년간 걸은 장광효의 역사는 한국 연예계의 역사다. 1987년 남성복 1호 브랜드 카루소를 론칭 한 뒤 2000년부턴 서울패션위크까지 22년간 개근했다. 홈쇼핑에 최초로 진출했고, 이종석, 장기용 등 모델 출신 배우들을 발굴하기도 했다.

'글로벌 스타'로 도약한 이정재에게 최근까지 옷을 입혔다. 인자한 얼굴인데 눈빛에선 단단한 심지가 느껴졌다. 무엇보다 "이 일을 오늘 당장 접을 수도 있다"며 덤덤하게 말하는 그에게선 장인(匠人)에게서 나오는 '여유'가 전해졌다.

2022 F/W 서울패션위크는 어떠셨나요.

오프라인으로 못 한 것이 아쉽지만 만족합니다. 재미있었어요.컬렉션 출품만 100번이 넘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가슴 떨리고 재미있어요. 지금까지 서울, 대구, 부산, 광주 등에서 컬렉션만 100번 넘게 한 것 같군요. 한 길만 걷는 것이 어디 쉬운가요. 내 인생이 컬렉션을 통해 차곡차곡 쌓이고 있어 늘 기분이 좋아요.

'패션'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운명 아니었을까요. 어머니게서 말씀하시길 초등학교 때부터 제가 직접 옷을 사 입었다고 하더군요. 시장이나 백화점을 돌고 와서 자기가 고른 옷을 사겠다고 떼를 쓰곤 했답니다.

#장광효는 프랑스 퐁텐블로 예술학교 유학까지 마쳤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 유명 기성복 업체에 들어갔지만, 똑같은 형식의 옷을 만드는 '익숙함'이 싫었다.

2년 동안 프랑스에서 유학 생활을 하셨습니다.헛바람이 좀 들었죠. 대학교 때 프랑스 영화에 빠져서 그곳의 문화를 깊숙이 알게 됐고, 기회가 되면 프랑스에 가서 살아야겠다고도 생각했어요. 그래도 마냥 놀고 올 순 없었겠죠? 한국에 들어오기 전 피에르 가르뎅에서 실습생 생활을 했어요. 당시 피에르 가르뎅은 지금의 구찌나 디올보다 유명했습니다.

'카루소'는 언제 어떻게 론칭하신 겁니까.

유학을 마치고 의류 업체 서너곳을 옮겨 다녔는데, 마지막 회사가 부도가 났어요. 그때가 1987년, 32살 때였죠. 그 일을 계기로 '내 것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거예요.대박이 났습니다.

엄청났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남성복에 집중한게 대박의 비결이라고 봅니다. 1980년대 톱스타였던 조용필, 소방차, 임하룡이 제 옷을 주로 입었고, 강남에 사는 재벌 2세들, 심지어 고등학생들도 교복으로 입었으니까. 당시 한 벌 가격이 100~150만원 정도였어요. 지금 물가로 치면 1000만원 정도 되는 돈이었는데 대단했던 거죠. 백화점 매장만 40개 정도 됐었고, 갤러리아 백화점에서는 지하 식품 매장을 제외하고 매출 1등을 찍기도 했어요.

남성복 디자이너 최초로 파리 컬렉션에 진출하셨습니다.

1994년이에요. 그때 파리 사람들은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잘 몰랐죠. 요지 야마모토, 꼼 데 가르송에 이어 동양 남성복 브랜드로는 세 번째로 파리 컬렉션에 진출했어요. 컬렉션을 한 번 치르는데 1억 이상이 듭니다. 7번 정도 참여했는데, 그만큼 욕심이 컸던 거예요. 한국을 대표해서 제가 직접 디자인한 의상을 '패션의 중심지'에서 선보이는데 무리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갑자기 많은 사업을 정리하신 이유가 있나요.

개인적인 일이 좀 있었어요. 믿었던 사람한테 사기를 당한 아픔이 있죠. 또 시즌마다 컬렉션을 하는데 회사며 매장이며 규모가 너무 커서 관리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온전히 창작에 힘을 쏟기도 힘들었죠. 한 번에 다 정리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그때가 IMF 터지기 직전이었거든요.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아이디어가 안 떠오를 때가 있었어요. 그때 참 많이 고민했고, 힘들어했죠. 지금은 저만의 룰을 알게 됐어요. 풀어나가는 방법을 알게 된 거예요. '옷'을 푸는 방법을 터득하니까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까지 알게 되더군요. 옷을 만들지 20년 정도 지나니 그제야 풀립디다.

빠르게 변하는 패션 시장에서 적응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제 옷장에 옷이 1,000벌 넘게 있어요. 30년 전 입었던 옷을 꺼내 입었는데 세련돼 보이더군요. 패션이란 게 돌고 돕니다. 옛것을 레벨업 시켜서 변신시키는 거예요. 아시다시피 패션은 앞서가야 합니다. 여기서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는 거죠. 한 템포 앞서서 변형하면 다음 시즌에선 새로운 트렌드가 되는 거예요.

몸담고 계시는 패션계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으십니까.

이 나이에 현역에 있어서 제겐 그만큼 책임감이 큽니다. 후배들을 위한 길을 제대로 닦아 놓고 싶은 마음이에요.

구체적인 방안이 있을까요.

나라에서 디자이너가 해외 컬렉션에 나갈 수 있게 지원해주는 부분이 있어요. 문제는 선발을 디자이너가 아니라 공무원이 뽑는다는 점입니다. 20대 신인들을 내보내는 경우가 많은 이유죠. 자기 매장을 갖고 있는 40대쯤 된 디자이너에게 지원이 가면 더 탄력받아서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충분히 성장할 있다고 봐요. 신인들을 일회성으로 보내면 연습만 하다 오는 꼴이 될 수 있오요.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육상 선수가 올림픽 100m 대회에 나간다고 경험이 쌓이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죠.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당부를 한다면.

서두르지 말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요즘은 해외 컬렉션도 인터넷을 통해 접할 수 있고, 국내에 명품 브랜드가 거의 다 들어와 있어요. 직접 나가는 것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당연히 현지 문화를 체험해 보는 것도 좋죠. 하지만, 자신이 자력으로 모든 걸 헤쳐 나갈 수 있는 역량이 생겼을 때 분명 기회가 옵니다. 무엇보다 패션 디자이너는 성실해야 합니다.

후배들이 롱런의 비결도 궁금할 듯 합니다.
도전을 두려워 마세요. 제가 홈쇼핑한다고 했을 때, '망하니까 그런 걸 하는 것 아니냐'며 패션업계에서 말이 참 많았어요. 저는 달랐습니다. 인터넷도 핸드폰도 없을 때였어요. 급변하는 시대에 홈쇼핑이란 콘텐츠가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결과적으로 저는 성공했고, 그때 큰 번 돈을 벌었어요. 그걸로 지금까지 에너지 넘치게 제가 하고 싶은 창작을 할 수 있는 거예요.

#1990년대 후반 일부 사업을 정리한 이후, CJ 홈쇼핑으로부터 '같이 일하자'고 제안받았다. 장광효는 남성복 디자이너 최초로 홈쇼핑에 진출, 사기 등으로 인한 리스크를 단번에 회복했다.

체력적인 문제는 없으십니까.

주치의가 신기해할 정도입니다. 당뇨도, 용종도 없이 깨끗해요. 야채를 많이 먹고 고기를 조금 먹습니다. 와인 한 잔 정도 마실 뿐 술, 담배를 하지 않아요. 무엇보다 잠을 잘 자요. 12시 안에 잠들어서 7시에 일어납니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하실 생각이신지요.

오늘 당장 접을 수도 있어요. 죽을 때까지 할 수도 있고요.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후배들도 마찬가지예요. 여기에 올인하지 마세요. 그래야 올인할 수 있습니다.
에필로그장광효 선생과의 인터뷰 말미, 커피 한 잔 함께하며 여유 있게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면서 장광효 선생이 과거 MBC 인기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를 통해 배우로 활동한 것부터, 한 콘테스트에서 심사위원장인 자신이 우겨 장기용을 발탁한 사실, 이종석을 처음 패션쇼에 세우면서 데뷔 시킨 일화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면서 "제가 국가 일도 참 많이 했다"라며 해맑게 웃었다.

"지금 바뀐 군복, 경찰복 제가 기획안부터 디자인까지 다 짠 겁니다. 대전 엑스포, 여수 엑스포, 각 기관, 대기업 유니폼 대부분 제 손을 거쳤어요. 하하하"

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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