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빈의 조짐≫

'태종 이방원' 촬영 위해 학대 당한 말 사망
'태종 이방원' 불매 및 폐지 요청
KBS, 수차례 사고 겪고도 위험한 동물 학대
'태종 이방원' 제작진 및 배우

≪우빈의 조짐≫
우빈 텐아시아 기자가 연예계에서 일어나거나 일어날 조짐이 보이는 이슈를 짚어드립니다. 논란에 민심을 읽고 기자의 시선을 더해 분석과 비판을 전합니다.
끔찍하다는 말 외엔 달리 설명할 표현이 없다. KBS1 드라마 '태종 이방원' 제작진이 낙마 장면을 촬영하겠다고 말을 죽이고 배우를 사지로 내몰았다.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도 취하지 않았으면서 '죄송하다'며 '책임감을 갖겠다'고 한다.

KBS는 수신료로 월 2500원을 걷어간다. 수신료를 가치를 돌려드리겠다더니 시청자들의 수신료를 동물 학대에 썼다. 말은 소품 (小品)이 아니라 생명이다. 생명 존중 없는 제작진이 만든 드라마를 소비할 가치가 있을까.
'태종 이방원' 동물 학대 장면

'태종 이방원' 제작진은 지난해 11월 2일, 낙마 장면 촬영을 위해 말의 뒷발에 올가미를 씌우고 전력 질주하게 했다. 말은 팽팽해진 올가미로 인해 목이 꺾이면서 그대로 땅에 처박혔고 말 위에 있던 배우도 멀리 날아갔다. 말은 몸을 일으키지 못한 채 뒷발을 차다 움직임을 멈췄다.

영상은 앞에서 촬영된 장면. 실제 방송분은 더 잔인하다. 말이 공중에 뜬 채 그대로 고꾸라진다. 뒷발이 들리고 머리나 목을 방어할 새도 없다. 목뼈가 부러질 정도의 큰 충격을 받았을 터다. 뒷발에 묶어놨던 올가미는 기술로 삭제했다. KBS의 편집 실력을 보니 말을 넘어뜨리지 않고도 낙마 장면을 충분히 실감나게 연출할 수 있었다.
'태종 이방원' 말 사망 논란 방송 장면

문제의 장면은 논란을 넘어 불매 운동 및 드라마 폐지를 요청하는 국민청원까지 등장하게 했다. 제작진은 부랴부랴 사과문을 내놨지만, 이 사과문 조차 어불성설이다.

제작진은 "낙마 장면은 말의 안전은 기본이고 말에 탄 배우의 안전과 이를 촬영하는 스태프의 안전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어렵다"면서 "이 때문에 제작진은 며칠 전부터 혹시 발생할지 모를 사고에 대비해 준비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했다.

하지만 그 고민의 과정에서 '말의 안전'과 관련된 논의는 없었던 듯하다. 그 어디에도 말의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를 찾아볼 수 없다. 말이 넘어지는 걸 막는 장치도 없었고 응급처치를 위해 대기하는 수의사도 없다. '태종 이방원' 제작진이 말의 안전을 고려한 결과는 죽음이다. 살아 있는 말이 아니어도 '낙마'를 촬영할 수 있는 방법을 많다. 실제 크기로 만든 인형을 쓸 수도 있고 cg로도 대체 가능하다. 27년 전 영화인 '브레이브 하트'는 인형으로 낙마를 연출했다. 2020년 개봉한 영화 '원더우먼'은 승마 장면 자체를 cg 처리했다. 제작비 부족 같은 변명을 들먹여도 소용없다. 이미 말의 발에 묶어놓은 올가미는 삭제했으니.

'태종 이방원' 포스터

"사고 직후 말이 스스로 일어났고 외견상 부상이 없다는 점을 확인한 뒤 말을 돌려보냈습니다. 말의 상태를 걱정하는 시청자들의 우려가 커져 말의 건강상태를 다시 확인했는데, 안타깝게도 촬영 후 1주일 쯤 뒤에 말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말은 예민한 동물이다. 골절이나 끊어진 인대는 말에게 치명적이기 때문에 회복 불가일 경우 대부분 안락사를 시킨다. 일주일 뒤 말이 사망했다는 건 최소 골절상을 입어 치료를 받다 죽었거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안락사를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일주일 뒤에 죽었던 한 달 뒤에 죽었던 죽음의 원인 제공자는 제작진이다. '당시엔 외견상 부상이 없었다'는 해명은 어떻게든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의지로 비친다.

KBS가 동물을 학대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사과문을 보면 마치 처음 발생한 사건인 듯 변명을 늘어놓지만 '용의 눈물'에서는 노루를 기절시킨 뒤 바닥에 던졌고 '정도전'에서도 '태종 이방원' 속 말과 똑같이 넘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정도전' 방송화면


2012년 KBS2 '대왕의 꿈'에서는 낙마 사고로 말은 즉사하고 배우 최수종은 견갑골이 산산조각 나는 중상을 입고 대수술을 두 번이나 했다. 사극의 경우 말을 타는 장면이 필수로 들어가기에 늘 사고가 발생했다.

작고 큰 사고만 여러 번이면서 논란이 되자 "이번 사고를 통해 낙마 촬영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 다른 방식의 촬영과 표현 방법을 찾도록 하겠다"는 건 눈속임이다.

"시청자분들과 동물을 사랑하시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제작진. 시청자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생명을 하찮게 다루는 제작진의 바닥 친 윤리의식에 있다.

시청자들은 제작진과 다르기에 이들의 행태에 분노한다. 드라마를 위한 배우 및 제작진의 수고보다 생명이 더 귀하다.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동물을 소품 취급한 제작진. 이들이 만든 드라마가 울림이나 감동을 줄 수 있을까. '태종 이방원'이 계속 방송돼야 할 이유는 찾지 못했다.

우빈 텐아시아 기자 bin0604@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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