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이스'에서 보이스피싱 범죄 설계자役
소름 끼치는 연기로 '분노 유발'
뛰어난 캐릭터 소화력
영화 '보이스'에 출연한 배우 김무열. / 사진제공=CJ ENM


"너라는 변수를 만난 나는 너무나도 내일이 불완전하고 어색하고 불안해. 반이었던 김무열의 내일을 그렇게 만드는 너는 정말로 이젠 날 하나로 만들건가봐."

배우 김무열이 지금의 아내 윤승아와 연애 시절 그에게 '취중진담'으로 보냈던 메시지. 실수로 공개 트위터로 메시지가 전송되면서 열애 사실이 밝혀졌다. 한 편의 시 같은 사랑 고백 때문에 김무열은 '광명의 셰익스피어'라는 별명도 얻었다.이렇게 달달한 사랑 고백을 하던 남자는 어디가고 세상 가장 비열한 얼굴을 한 보이스피싱 범죄자가 됐다. 영화 '보이스'에서 김무열의 이야기다. '보이스'는 보이스피싱 피해자 서준(변요한 분)이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 소탕을 위해 본거지로 잠입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는 범죄액션 영화다. 김무열은 보이스피싱 범죄 설계자 곽프로를 연기했다.

영화 '보이스' 김무열 포스터 / 사진제공=CJ ENM


곽프로는 일명 '콜센터' 기획실의 총책으로, 보이스피싱 조직의 에이스. 풍기는 분위기부터 냉혹하고 야비하다. 각진 안경테와 목티, 흰색 바지에 광이 나는 구두를 신고 언제나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가 쓴 '대본'에는 누구라도 당할 수밖에 없는 치밀함이 있다. 취업준비생, 청약신청자, 일용직 노동자 등 간절함과 절실함을 갖고 하루하루를 사는 이들의 마음을 헤집고 들어가 두려움을 꽂고, 희망을 주는 척 사기를 치며 무너져 내리게 만든다.부하 직원들에게는 "보이스피싱은 공감"이라고 강조하며 "피해자들의 희망과 두려움을 파고 들어야한다"고 소리친다. 누구라도 가스라이팅을 당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 그에게 위압감과 지배력이 느껴진다. 이런 교활하고 소름 끼치는 캐릭터를 탄생시킨 배우가 김무열이다. 심지어 김무열 자신마저도 "연설하는 장면을 보면 분노할 것"이라며 "관객의 입장에서 말씀 드리자면 아주 개소리들을 하고 있다. 진짜 화나실 것"이라고 말했다.

김무열·윤승아 부부 / 사진=윤승아 인스타그램


김무열은 이전에 짠내 나는 캐릭터들도 여러 번 맡았다. '기억의 밤'에서는 어린 시절 가족을 잃고 보육원에 버려진 인물을 연기했고, '머니백'에서는 어머니의 수술비를 구해야하는 흙수저 취업준비생 역을 맡기도 했다. '악인전'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형사 역으로 몸 사리지 않는 액션 연기도 선보였다. 그러나 이번 영화만큼 강렬한 캐릭터는 없었다. 김무열은 "묘하게 삐뚤어나간 괴물"이라며 "때려 죽이고 싶은 캐릭터"라고 했다.

배우들은 연기를 할 때 자신의 일부를 꺼내 확장시키기도 하고 본래의 자신과는 전혀 다른 '제2의 나'를 만들어 몰입하기도 한다. 어떤 방법이든 캐릭터를 자신의 것으로 얼마만큼 소화해내느냐가 관건이다. 그런 면에서 김무열은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들어놓는 재능과 노련함이 있다. 문학 작품 같은 사랑 고백을 하던 김무열과 '보이스'의 김무열이 동일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김무열의 '교활한 연기'에 탄성이 터져나오는 이유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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