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욱 실종사건
천보산 "내가 죽였다"
생전 회고록 공개
천보산 "내가 죽였다"
생전 회고록 공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2'가 과거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의 회고록을 공개했다.
지난 27일 방송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2' 12회에서는 '김형욱 실종사건'을 다뤘다. 음모와 배신으로 얼룩진 '그날'의 이야기를 되돌아본 것.
최장수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형욱은 1979년 10월 12일 프랑스 파리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한 호텔에서 방안에 짐을 그대로 둔 채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건 5일 전 저녁, 파리의 유명 카지노에서였다. 하지만 그 이후 김형욱의 실종과 관련된 어떠한 실마리도 발견되지 않았다. 프랑스 경찰, 파리주재 한국 특파원들은 실종사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가 정보수집권, 수사권을 가진 중앙정보부의 핵심 인사였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그가 1200여 명의 간첩을 잡았기에 북한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김형욱은 박정희의 3선 개헌의 1등 공신이었지만 하루 아침에 중앙정보부에서 쫓겨났다. 정권의 비밀을 알고 있는 그가 감시를 받기 시작하자 망명을 결정한다. 박정희는 귀국을 권유했지만 김형욱은 3년 후 '박정희에게 하야를 요구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낸다.
당시 한국 정부가 로비스트를 동원해 뇌물 수백만 달러를 미국 정부 관리들에 제공한 이른바 '코리아 게이트'가 터졌는데 김형욱이 해당 사건의 청문회에 출석했다. 그는 청문회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하야해야 마땅하다"며 정권의 민낯을 폭로했다.
이후 파리로 건너간 김형욱이 돌연 실종됐다. 그의 행방에 대해 여러 설이 돌았으나 파리 경시청은 실종 4개월 만에 살인청부업자의 조직적 납치 살해로 추정된다고 결론 지었다.하지만 2005년 4월 자기 손으로 김형욱을 납치했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사건 발생 26년 만이었다. 그는 자신이 중정 소속의 특수공작원 코드명 천보산이었다고 주장했다. 천보산은 박정희의 하명을 받고 해외 정보기관에서 특수 암살 훈련을 받은 후배 한 명과 김형욱을 유인했다고 밝혔다. 그와 관계 있던 여배우도 끌어들였고, 여배우는 자신이 이용되는 것은 모른 채 파리에서 김형욱을 만났다. 이에 공작팀은 술에 취한 김형욱을 차에 태운 뒤 마취시켰고, 파리 외곽의 양계장에서 그를 사료용 분쇄기에 밀어 넣어 살해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중정 소속 공작원은 맞지만 관심 끌려고 거짓말하는 것"이라고 부인했다. 천보산은 납치 지점이나 양계장 위치 등 무엇도 제대로 떠올리지 못했다.
이날 출연진은 김형욱이 중앙정보부에서 나온 뒤에 쓴 회고록 일부를 읽었다. 해당 문서에서 김형욱은 "박정희의 권력은 한 마디로 말해 부정과 부패의 구조를 그 존립의 토대로 하고 있다", "단순폭력을 통치 기본 수법으로 삼는다", "일본 군벌의 오기를 전수받은 식민주의적 사고방식이 아직 그의 혈관을 관통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주장을 펼쳤다.
정태건 텐아시아 기자 biggu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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