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데칼코마니]
누구나 상반된 면모를 가지고 있다.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같은 듯 다른 '극과 극' 매력 대결.
영화 '내가 죽던 날' 김혜수 / 사진제공=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 두려움을 마주한 형사 김혜수
'내가 죽던 날'의 현수

"내가 원하는 건, 모든 게 없던 일이 되는 거야."김혜수는 감히 그 깊이와 넓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큰 배우'다. 영화 '내가 죽던 날'을 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다. 상처 입은 마음에 위로를 건네는 이 영화에서 김혜수가 보여주는 얼굴은 그 어떤 작품에서보다 아름답다.

'내가 죽던 날'은 범죄 사건의 주요 증인으로 채택돼 섬마을에서 보호 받던 소녀 세진(노정의 분)이 유서 한 장만을 남기고 사라지자 형사 현수(김혜수 분)가 이를 탐문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극 중 현수는 완벽한 줄 알았던 자신의 삶에 생긴 균열로 인해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번듯한 줄 알았던 변호사 남편은 바람난 지 오래였고, 직장에서는 절친한 동료와 불륜 사이라고 오해까지 받는다. 그래도 현수는 살아야 하기에 이혼소송에 나서기로 했고 복직 신청도 했다. 아직 위태롭지만 사람들에겐 "괜찮다"고 한다.

누구나 마음속 깊은 곳에 상처 하나쯤은 감추고 있다. 아픔의 크기는 오로지 주관적인 것이라 겪은 사람만이 헤아릴 수 있다. 남 일이라면 '누구나 겪을 법할 흔한 일'이라 할지 몰라도 본인의 일이 되면 그리 쉽게 말할 수 있을까. 김혜수는 현수의 고통이 마치 관객들 자신의 것인 냥 이입하게 하는 연기를 보여준다.현수에 몰입한 관객들이 아픔을 극복하게 하는 것 역시 김혜수다. 실종된 소녀의 흔적을 추적할수록 소녀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현수. 그는 좌절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현수가 '세진의 사망'을 증명하길 바라지만 현수가 이토록 이 일에 몰두한 이유는 결국 '세진의 생존'을 입증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기력해 보이지만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자신처럼 소녀 역시 희망을 잃지 않았을 거라 믿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 현수는 친구에게 죽어있는 자신을 지켜보는 악몽을 내내 꾼다고 털어놓는다. 이는 실제로 김혜수의 경험을 녹여낸 것. 김혜수는 "이 작품은 기묘하게도 내가 절망감에 휩싸였을 때 만났다"고 말했다. 또한 "시나리오를 읽을 때 이미 묵직한 위로를 느꼈다. 나를 위해서, 혹은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을 위해서 이 영화를 제대로 해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했다. 김혜수가 곧 현수였고, 현수가 곧 김혜수였다 '내가 죽던 날'에서 김혜수의 연기는 아주 잔잔한 파동을 오랫동안 남긴다.

영화 '타짜' 김혜수 /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 욕망의 화신 도박판 설계자 김혜수
'타짜'의 정마담

"이거 왜 이래 새삼스럽게, 나 이대 나온 여자야."

김혜수는 영화 '타짜'의 대사로 인해 오해를 받기도 한다. '이대 나왔다'는 정마담 때문에 실제로 김혜수가 이대 나온 줄 아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는 것. 그 만큼 이 영화에서 김혜수와 정마담 캐릭터의 존재감이 남다르다는 이야기다.'타짜'는 가난한 열혈 청년 고니(조승우 분)가 도박판에 뛰어들어 타짜로 거듭나는 이야기다. 김혜수가 연기한 정마담은 도박판 설계자로, 도박판의 꽃이라 불린다. 사실 '타짜'는 모든 대사가 명대사, 모든 장면이 명장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6년 개봉작이지만 14년이 흐른 지금 봐도 세련된 비주얼과 흥미로운 이야기, 개성 넘치는 캐릭터로 높은 흡입력을 자랑한다. 여전히 회자되는 많은 캐릭터들 가운데 김혜수가 연기한 홍일점 정 마담은 뚜렷한 존재감을 뽐낸다.

'타짜'의 정마담은 팜므파탈의 대명사다. 거칠고 잔혹한 남성들의 세계에서 관능미와 영리함으로 그들을 주무른다. '돈 많은 호구'를 꾀어내기 위해 '순진한 여자'인 척 연기하는 능청스러움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 매혹적인 캐릭터를 과연 김혜수가 아닌 다른 누가 소화했으리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이 영화에서 김혜수의 어떤 모습도 부자연스럽지 않다. 김혜수는 원작 만화보다 정마담이라는 캐릭터를 더욱 입체적이고 적극적인 인물로 발전시켰다. 욕망과 허영에 사로잡힌 인물이지만 비열하지 않고 부드러움이 묻어난다.

'타짜'의 마지막 부분에서 고니는 도박으로 딴 돈다발에 불을 지른다. 정마담은 사랑하는 남자인 고니를 잃었다는 상실감, 돈에 대한 집착 등으로 인해 매우 혼란스럽고 격양된 상태에서 정신없이 불을 끄려한다. 이 장면은 원래 시나리오에 없던 것으로 촬영 때 추가됐다고 한다. 이날 김혜수는 값비싼 디자이너 의상을 입고 있었는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자 불은 제대로 꺼지지 않고 옷만 타 들어갔다. 협찬 의상을 걱정한 최동훈 감독이 "반납해야 되는데"라고 하자
김혜수는 "내가 산다 그래"라고 말했다고 한다. 과연 김혜수의 배포가 범상치 않음이 드러나는 일화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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