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부터 운동을 시작해서 리듬체조를 안 한 기억이 없어요. 그 나이 전에는 기억이 잘 안 나잖아요.” 남들에게는 기예나 다름없는 동작과 매일의 훈련이 소녀에겐 그저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운동하며 가장 오래 쉬어본 게 일주일이고, 그 정도만 쉬어도 평소의 컨디션으로 끌어올리기까지 힘들다는 걸 느껴야 했다. 리듬체조 마루 위에서, 혹은 TV 광고 속의 손연재는 언제나 밝게 웃고 있지만, 열여덟 소녀가 기본적으로 짊어진 일상의 무게는 이처럼 만만하지 않다. 인간의 한계를 넘는 아름다운 동작과 선은 인간의 한계를 넘는 훈련과 자기 관리의 다른 이름이다. 최근 한국 선수 최초로 세계선수권대회 11위를 기록하고,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한 커리어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앳된, 실제로 보면 TV의 그것보다 더 앳된 얼굴의 소녀가 “저뿐 아니라 모든 운동선수들이 그러니까 저만 특별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기 목표, 저의 목표가 있어서 하는 거니까”라고 말하는 모습은, 그래서 대견하다기보다는 신기할 정도다.
“저는 목표를 세우는 게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는 거 같아요. 운동을 하다 보니 국가대표도 되고 싶고, 국제 대회도 나가고 싶고. 5년 전만 해도 제 꿈은 올림픽 출전이었는데, 이제는 조심스럽게 2012년 혹은 2016년에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고 싶단 목표가 생겼어요.” 요컨대 이 소녀는 조금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대중의 관심 속에서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길로 가야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 다음의 곡들은 조금씩 나아가는 그 하루하루를 함께하는 손연재의 플레이리스트다.
1. Taylor Swift의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는 거의 대부분 좋아하는” 손연재가 그 중에서도 골라낸 한 곡은 ‘Back To December’다. 2011년 한 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반 판매고를 기록한 테일러 스위프트는 지난 10월 빌보드 선정 올해의 여자 가수에 최연소로 뽑히기도 했다. 그만큼 이 젊은 싱어송라이터의 음악은 보편적 감성을 잘 충족시키는데, 2008년에도 최다 음반 판매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손연재가 고른 감성적 발라드 ‘Back To December’ 역시 세계 곳곳에서 사랑을 받은 곡으로 그의 전 남자친구 테일러 로트너를 위해 쓴 것으로도 유명한 곡이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감성적 목소리와 멜로디도 좋지만 어쿠스틱 기타와 현악 어레인지가 기가 막히게 어우러진, 겨울에 정말 어울리는 넘버다.
2. JYJ의
전국체전에 대해서도 “올림픽 출전 티켓이 걸린 시합은 아니지만 국내 팬들에게 좋아진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 중요하다”고 말하는 손연재에게 자신의 갈라쇼를 디렉팅 했던 김재중의 JYJ는 각별한 의미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가 선택한 두 번째 곡은 JYJ의 ‘In Heaven’. 굳이 과거 동방신기 시절의 엄청난 퍼포먼스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최근 스페인에서 공연을 하며 한류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줬던 JYJ는 한류의 대표적 아이콘 중 하나다. 그런 그들에게 은 단순히 첫 한국어 앨범이기 이전에 자신들의 힘든 시기를 담고, 방송에 나가기 어렵기에 공연에 맞춘 곡들로 채운 앨범이다. 앨범과 동명 타이틀곡인 ‘In Heaven’은 그래서 더욱 상징적인 곡이다.
3. 2NE1의
“2NE1의 곡은 요즘 것보다 예전 노래들을 더 좋아해요.” 손연재가 골라준 또 하나의 곡은 2NE1의 ‘I Don`t Care’다. 어떤 곡을 좋아하느냐는 취향의 문제고, ‘내가 제일 잘 나가’와 ‘I Don`t Care’ 중 무엇이 더 좋은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I Don`t Care’를 통해 2NE1이 ‘Fire’의 주목받는 신인에서 그해 최고 수준의 팀으로 남게 된 건 부정하기 어렵다. ‘Fire’ 같은 인상적인 전주나 ‘Can`t Nobody’ 같은 강렬한 오토튠의 자극도, 아니면 당시 대세였던 반복적 후크도 없지만 ‘I Don`t Care’는 오로지 리듬의 힘으로 곡을 이끌어 나가며 처음부터 끝까지 레게 특유의 흥겨운 그루브를 유지한다. 물론 노래를 부른다기보다는 리듬 자체를 느끼고 즐길 수 있었던 건 역시 2NE1의 저력이다.
4. 다비치의
“MP3 플레이어에 요즘 곡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 하나”라며 골라준 또 다른 곡은 다비치의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다. 프로그래밍 된 드럼의 비트에 딱딱 맞춘 듯 딱딱 박자를 맞추는 느낌의 보커 라인을 서정과 웅장 사이의 현악 어레인지로 감싸는 곡이다. 조금씩 감정을 고조시키며 ‘안녕이라고 내게 말하지 마’라는 가사까지 이어지는 구성은, 또한 떠나는 남자에게 작별인사를 하지 말라는 그 감성은 사실 좀 익숙하지만, 단순히 고음으로 내지르지 않고 감정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미덕 때문에 빤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아직 탁월할 정도는 아니지만 비슷비슷한 느낌의 걸 그룹과는 수준을 달리하는 이해리의 보컬 역시 잘 드러나는 발라드 넘버.
5. 비스트의
MBC 에 출연해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은 비스트”라 말하기도 했던 손연재는 당연히 비스트의 곡 ‘Fiction’ 역시 골라주었다. 작곡가인 신사동 호랭이도 자신의 최고 곡으로 꼽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곡인 ‘Fiction’은 차곡차곡 층층이 사운드를 쌓아가며 분위기를 고조하는 진행이 인상적이다. 특히 기존 곡들이 곡보다는 퍼포먼스를 먼저 고려한 듯, 강한 비트를 너무 전면에 내세웠다면 ‘Fiction’은 멜로디 라인이 살아있다는 점에서 올해 나온 남성 아이돌의 곡들 중에서도 눈에 띈다. 특히 곡이 수록된 앨범 제목 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싱글 커팅된 ‘Fiction’보다도 앨범 안에서 더 시너지를 내는데, 앨범의 인트로 ‘The Fact’ 이후에 나오는 ‘Fiction’을 들어보기 바란다.
사실 스타, 특히 스포츠 스타에 대한 대중의 기준은 가혹하리만치 엄격해서, 항상 잘하다가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너무 쉽게 혹평을 쏟아낸다. 여왕 김연아가 그랬고, 마린보이 박태환이 그랬다. 훈련을 쉬는 날, 정작 쉬지도 못하고 아침부터 열심히 찍은 아이비 클럽 화보에 대해 누군가는 너무 쉽게 훈련 부족을 운운할지도 모른다. 그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아직 십대인 손연재가 미더운 건, 그가 차근차근 쌓아가는 과정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지난해 자신의 영상만 봐도 1년 동안 성장한 걸 느낀다는 리듬체조계의 기린아는 이 종목의 선수 생명이 이십대 후반만 되도 끝이라는 걸 알지만 그 이후의 시간을 걱정하기보다는 지금 자신이 세운 목표를 이루며 생각해보겠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손연재는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할 뿐이고, 세계선수권이든 전국체전이든 올림픽이든, 혹은 CF 촬영 현장이든, 손연재에겐 최선을 다해야 할 ‘지금’일뿐이다. 이런, 이토록 철든 열여덟이라니.
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