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이 평범한 삶이 끝나버린 여자와 이제부터 평범한 삶을 시작하려는 남자가 만난다. 유망한 사격 선수였지만 불의의 사고와 빚 때문에 킬러가 된 세빈(신세경)은 식당을 차리려는 은퇴한 조직 보스 두헌(송강호)을 감시하기 위해 접근한다. 마음 둘 데 없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요리학원의 “급우”를 넘어서는 특별한 존재가 되어갈 즈음, 세빈에게 두헌을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그저 “니가 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아저씨”를, 세빈은 쏠 수 있을까?


간수가 덜 빠진 소금의 뒷맛


영화 의 화면들은 곱게 오려 붙인 색종이처럼 예쁘지만 한 꺼풀 떼어내면 얼기설기 남은 풀 자국이 금세 드러난다. 세빈과 친구 은정(이솜)의 행복한 한 때는 석양이 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까르르 웃는 얼굴과 즐겁게 춤추는 몸짓으로 채워진 인디 밴드의 뮤직비디오를 연상시키고, 스마트폰을 사이에 둔 두헌과 세빈의 단란한 한 때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연인을 등장시킨 핸드폰 광고 같다. 인물과 그 인물이 스며들어 있는 세계를 구축하기에 의 건축술은 일차원적이며 전형적이다. 그 결과 빼곡히 크레딧을 채운 능력 있는 배우들은 물론이고, 매 작품 캐릭터를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을 부여받은 사람으로 걸어 나왔던 송강호 조차 스크린 안에 머문다. 물론 그는 허무 개그에 가까운 순간도 완벽한 코미디로 만들어낼 정도로 영화가 농축해낸 가장 순도 높은 결정(結晶)이지만 한 여자를 사랑하고 또 사랑받는 ‘남자’임을 적극적으로 내세운 영화에서 오히려 가장 매력 없는 남자가 되었다.

“사랑은 말이야 한 가지 색만 있는 게 아니야. 니가 생각하는 사랑이 뻘건 색이라면 푸른색도 있고, 검은색도 있고 그런 거지.” 세빈에 대한 감정을 묻는 애꾸(천정명)의 질문에 두헌은 이렇게 답한다. 정작 세빈과 두헌의 사랑이 무슨 색이었는지는 영화를 다 보고 나오는 순간까지도 확신할 수 없지만 이현승 감독이 생각하는 사랑의 색깔은 단연 푸른색이다. 에 이어 까지 블루에 대한 감독의 애착은 스크린을 빼곡히 물들인다. 어슴푸레한 새벽녘의 하늘빛을 머금은 카메라는 해운대와 여의도, 염전을 바삐 오간다. 세빈과 함께 웃으며 걷던 바닷가는 노을이 섞인 푸른빛으로, 두헌이 혼자 머무는 여의도 오피스텔의 하늘은 그레이 블루로, 두 사람의 비극이 절정에 달하는 염전은 검은색에 가까운 푸른빛으로 비장미를 더한다. 그러나 제대로 여문 드라마 없이 꾸며진 영상은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이내 가라앉고 마는 인물들의 감정과 함께 녹아 버린다. 바다 밑으로 내려가 흔적 없이 사라진 소금인형처럼. 결국 감독이 만들고자 했던 세계는 그저 찬란하고 다양한 파란색으로 칠한 색칠 공책 속 인형의 집이었을까? 좋은 영화는 단순히 공들여 찍은 영상의 집합이 아니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은 영화가 놓치지 말아야할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글.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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