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SBS 수-목 밤 9시 55분
로맨틱 코미디에서 남주인공이 “날 이렇게 대한 여자는 당신이 처음”이라며 여주인공에게 한눈에 반하는 설정은 콘라트 로렌츠의 각인이론에 등장하는 새끼 오리들의 행동과 유사한 데가 있다. 여주인공이 그의 결핍과 상처를 인식하면서부터 사랑에 빠지게 되는 감정이 모성애와 흡사하다는 점도 그렇다. 에서 은설(최강희)과 지헌(지성)의 관계가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라는 전형적 구도를 넘어선 설득력을 지니는 것은 이 아이처럼 본능적이고 운명적인 로맨스의 핵심을 너무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난 당신이 필요해’ 혹은 ‘당신 없으면 안돼’라는 고백은 숱한 로맨스의 단골 대사이나, 지헌의 경우처럼 저 대사가 말 그대로 절실하게 들어맞는 사례는 드물다. 지헌은 정말로 은설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다못해 판넬의 형태로라도 눈앞에 없으면 불안해한다. 그녀가 “대뇌변연계 편도핵에 콕 박혀버렸다”는 고백은 은유의 차원이 아니라 진짜 그의 상태를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다.

의 장점은 이처럼 인물들의 감정을 쿵쾅대는 심장에 손을 가져다대듯이 혹은 손목의 맥박수치를 직접 세어보듯이 생생한 촉감의 차원으로, 즉물적이고 순수한 어린아이의 화법으로 구현하여 설득해낸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없이 미숙한 인물의 로맨스는 유치함(childish)과 천진함(childlike)의 경계를 매순간 오가는 사랑의 본질로 그려진다. “객관적으로는” 찌질하지만 “주관적으로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지헌에게 마침내 은설이 항복하듯이 고백하는 것처럼. 그러니까 어제 “세뇌당한 것”이라는 은설의 고백은 지헌의 저 앞선 고백에 대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답가다. 그리고 의 이 화법에 은설처럼 ‘세뇌’되는 순간, 우리는 단순히 보고 싶은 차원을 넘어 무원(김재중)의 말처럼 “계속 같이 놀고 싶은” 드라마와 대면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글. 김선영(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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