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바다는 독특한 보컬이다. 그의 목소리는 굵고 거칠지만, 한편으로는 날카로운 칼날 같다. 세상의 거친 파도를 온 몸으로 다 맞은 것 같은 목소리를 내지만, 가끔은 소년의 순수한 느낌을 뿜어낸다. 그렇게 다양한 층의 목소리를 가진 김바다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시나위의 김바다로 기억된다. 하지만 데뷔 16년 차의 김바다는 시나위의 김바다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신하며 항상 록의 최전선에서 여러 결과물을 제시해 온 열정 넘치는 록커 김바다다. 바로 그 김바다를 만나 그의 열정과 에너지를 확인했다.
최근 TV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 같다. 김바다 : 이번에 랑 에 나왔다. KBS 에도 짧게 나갔고(웃음). 에도 나간다. 들국화 트리뷰트 앨범과 김광석 트리뷰트 앨범에 참여했는데, 그 프로모션의 일환으로 나가게 됐다. 좋지 않나. 사람들이 다 아는 노래를 새롭게 해석해서 들려주는게. 방송에 나가는 것도 참 괜찮은 것 같다.에 나왔을 땐 사람들이 ‘저 사람이 바로 그 김바다냐’고 놀라기도 하고(웃음).
김바다 : 더 많이 나가고 싶다. 그런데 미디어 쪽에서 록 음악이나 실험적인 음악을 하는 사람을 많이 불러주지 않는다. PD 분들도 그런 음악에 대한 시도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 많이 나가고 싶어도 나갈 데가 없다. 그게 애석하다. 좋은 음악 프로그램들도 몇 있었는데, 단명을 해버린다. 오직 시청률에 의해 존재의 의미가 어떻든 빨리 내려버리는 풍토는 사라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음악 후진국이 될 수밖에 없다. 아티스트들은 굉장히 발전하고 있는데, 좀 더 멀리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인디 자체가 너무 재미있는 씬이다. 인디 음악의 시장성은 무궁무진하다. 어쨌든 우린 멈추지 않으니까.
방송 뿐 아니라 최근 발표하는 노래들도 많다. 산울림 트리뷰트에도 참여한다고 들었다.
김바다 :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라는 곡이다. 싸이키델릭한 하드록이 될 것 같다. 마치 섬에 놀러가 와인을 많이 마시고 저녁에 해변에 누워서 별을 보는 느낌(웃음)? 그런 느낌으로 시작되다가 폭풍이 몰아 칠거다.
그런데 그 ‘폭풍’이 신윤철의 개인 앨범에서 부른 ‘누구나’에는 안 분 모양이다(웃음).
김바다 :록이라는 것이 거칠고 반항적인 것만은 아니다. 사실은 로맨틱한 부분이 더 많다. 그 곡을 만들 때도 정말 웃겼는데 윤철이 형이 이메일로 반주만 있는 그 곡을 보내줬다. 들어보고 멜로디를 만들어서 다시 보내달라고 했는데, 이미 나는 그 곡을 다운로드 받기 전에 보이스 레코더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곡을 처음 플레이하면서 나는 바로 보이스 레코더에 멜로디를 녹음했고 한 번에 다시 보내줬다. 즉흥적으로 멜로디를 만들어서 단 한 번에 녹음하고 바로 보내 준거다. 그랬더니 윤철이 형도 두 말 없이 한 번에 ‘좋다’ 하더라. 즐거운 작업이었다.“록은 에너지고 분위기다”
지금 밴드인 아트 오브 파티스는 예전의 레이시오스나 나비효과와는 많이 다르다. 마치 원점으로 다시 돌아간 느낌인데.
김바다 :나만의 음악적인 색깔을 찾으려고 하는 과정에서 밴드를 만들었다가 해체하는 과도기가 계속 있었다. 레이시오스 같은 경우에는 너무 빨리 냈다, 시대를 조금 비껴갔다는 말들을 많이 들었다. 대중보다 딱 반 발짝만 앞서가야 하는데, 그 조절을 하는게 쉽진 않다. 그런 여정을 계속 반복하다 지금 내가 도달한 지점은 무조건 사람이 연주를 해야 하고, 가장 원초적인 사운드가 가장 섹시하고 멋있는 음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트 오브 파티스로 정착을 하게 됐고, 지금 이 밴드는 계속 유지하도록 노력을 하고 있다.
앨범 녹음 방식도 모든 곡이 믹싱이나 더빙 없이 스튜디오 라이브를 통해 녹음했다. 쉽게 볼 수 있는 녹음 방식은 아니다.
김바다 : 이런 녹음 방식을 택하는 밴드들이 최근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관객이 없을 뿐 라이브 앨범인 셈인데. 세 명이 들어가서 메트로놈도 없이 그냥 합주로 녹음을 했다. 녹음실의 사용 단위를 프로라고 하는데, 한 프로에 3시간 30분 정도다. 한 프로 동안 6곡, 7곡을 거의 다 한 번에 연주하고 끝내버렸다. ‘Child of Pioneer`라는 곡이 있는데 베이스가 너무 흥분해서 세게 쳐서 음이 안 나왔다. 그런 부분이 많다. 하지만 록은 에너지고 분위기다. 언제부터인가 록이 너무 섬세해져서 모두 딱 맞아야 하고, 정리 되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들 하고 있다. 그게 너무 짜증난다. 정돈하는 순간 매력이 떨어진다. 그게 록의 원초성이다. 그런 부분을 한번 제시해보고 싶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명반을 들어보면 곡이 좋은 것도 있겠지만 제일 중요한 부분은 그 당시에 그 뮤지션들이 발산하는 에너지를 기록한 것이라는거다. 보컬도 이전 앨범보다 더 거칠고 폭발적인데, 오히려 더 편하다는 느낌마저 느껴진다. 마치 연주 위에서 논다는 느낌인데.
김바다 :실제로 녹음할 때 공연할 때처럼 일어나서 춤추고 흔들면서 녹음을 했기 때문일 거다. 보컬 딜레이나 공간계 이펙터도 즉흥적으로 직접 만지면서 녹음했다. 후반 작업이 믹스 다운이나 마스터링 말고는 거의 없었다.
한편으로는 사운드라는 면에서 아쉬움도 있었을 것 같다
김바다 : 아쉽긴 하다. 이번 앨범은 엔지니어인 홍준호씨가 서로 한번 이런 식으로 작업해보자고 의기투합을 한 거다. 처음에 녹음할 때 11시간 동안 드럼 톤만 잡았다. 그래서 정작 녹음은 그날 못했다. 다음 날 다시 와서 한 프로에 6~7곡을 한 번에 가버린 거다. 그런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예전과 굉장히 다른 방향의 음악인데도 여전히 전자음에 관한 관심이 엿보이기도 한다. 일렉트로니카와 록의 접합에 여전히 관심이 있나?
김바다 :관심은 정말 많다. 전자 음악에서 느껴지는 센스를 록밴드가 재현하는게 참 멋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걸 재현해보고자 노력하는 과정 중에 레이시오스가 있었고 나비효과 2집이 있었다.“대중들의 인정보다 밴드 음악의 뜨거움이 내게 훨씬 중요하다”
록밴드 출신 다른 보컬들과 다르게 솔로 음반을 내지 않았다. 제의도 많았을 것 같은데?
김바다 :시나위를 탈퇴하는 순간 그런 제의들이 엄청나게 왔다. 지금도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밴드를 정말 사랑한다. 3명, 4명밖에 안 되는 소수의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가서 손짓 하나로 악기를 연주하면 사운드가 터져나가고, 수많은 사람들이 즐거워 한다는게 그렇게 경이로울 수가 없다. 밴드의 호흡, 에너지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는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대중적인 활동이나 대중들의 인정보다 그런 밴드 음악의 뜨거움이 훨씬 내게 중요했다.
앞으로도 솔로 앨범을 낼 생각은 전혀 없나?
김바다 :나이가 30대 후반으로 가면서 인생에 대해 뭔가 할 말이 생기더라. 지금은 내가 마흔이 넘었다. 지금쯤이면 내가 내 생각을 차분하게 얘기해볼 수 있는 앨범을 만들어도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밴드 음악이 아니라 혼자서 할 때만 할 수 있는 얘기를 해보고 싶다. 그래서 기타 하나와 좋은 레코더 하나 들고 산이나 들, 바다 같은데 여행을 떠나서 순간의 감정과 감성을 가사로 적고 곡을 만들어서 그 자리에서 녹음하고, 여행 끝나고 돌아와 그걸 마스터링을 해서 내는 것을 구상해 보고 있다. 그런 시도도 해보고 싶다. 영국의 뉴웨이브 그룹 Japan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일렉트로니카에 관심이 있는걸 알고 있으면서도 의외로 들렸다. 어떤 음악 취향을 가졌나?
김바다 :평소에는 그냥 들으면 좋은 음악을 듣는 것 같다. 가벼운 음악보다 조금 진중한 음악을 좋아한다. 클래식도 많이 듣고, 달달한 러브송도 듣는다(웃음). 얼터너티브 록도 많이 듣고. 요즘에는 기분이 약간 우울해서 포티쉐드나 라디오 헤드를 다시 듣고 있다.
어렸을 땐 어떤 음악을 듣고 자랐나?
김바다 :어렸을 때 충격을 받은 음악은 마크 볼란의 티렉스였다. 그 밴드에 처음 영향을 받았고, 중학교 때는 벤 헤일런에 충격을 받았었다. 사실 그 때문에 음악을 하게 됐다. 하지만 충격이 너무 커서 나도 과연 음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페리 페럴을 좋아했다. 제인스 어딕션이나 포르노 포 파이로스 같은 것.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 실험에 대한 욕구만 가지고 살았다”
건강이 안 좋다고 들었는데
김바다 :예전에 안 좋았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예전에 워낙 술도 많이 마시고, 여행도 많이 다니다 보니(웃음). 다만 목만은 항상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는다. 목이 생명이니까. 그래서 목에 대한 연구도 많이 한다. 오래 노래할 수 있는 창법이나, 힘을 덜 들이고 효과적으로 소리를 내는 방법 같은 것. 본의 아니게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런 부분을 제자들에게 전수해주고 싶고 내가 평생 터득해왔던 음악적인 철학이나 방법 같은 것도 가르치려고 하고 있다.
에서도 심사위원으로 나왔다. 서울종합예술학교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록커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얻는게 있을까?
김바다 :그 친구들도 하나의 음악가다. 그들이 만든 음악이나 무대에서 표현하는 것들을 보면 그들의 존재 자체가 다 아름답다. 그 에너지를 마음껏 뿌려주는 밴드를 만나면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김바다 너도 더 열심히 해야지’ 하는 생각을 들게 하니까. 그런게 좋다. 서로 힘이 되고, 의지가 된다.
요즘 관심 있게 지켜보는 밴드가 있다면?
김바다 :잘하는 팀들, 열정이 있는 팀들이 정말 많다. 에 나왔던 밴드들도 다 인상적이었다. 갤럭시 익스프레스나 옐로우 몬스터즈, 아폴로18, 전국 비둘기 연합 등이 다 기대하고 있는 팀이다. 서울전자음악단도 좋고(웃음). 진짜 외국 유명한 밴드들에 우리 팀들이 못지 않다. 지산에 둘째 날 갔었는데 악틱 몽키즈에 큰 감동이 없었다. 오히려 새벽2시에 한 칵스가 훨씬 좋았다. 연주도 잘했지만, 분위기가 좋았다. 칵스도 미치고, 관객도 미쳤다. 그게 정말 아름다웠다.
무대에서 서로 미쳤다고 할만큼 즐기고, 또 100% 만족하는 경우가 자주 있나?
김바다 :몇 번 있다. 아주 행복한 경험들이다. 그땐 세상에 더 필요한게 없다. 삶에 있어서 또 다른 행복이 있겠지만, 음악하면서는 그보다 더 행복한 순간은 없다. 내가 나의 철학을 담은 노래를 무대에서 연주했는데 공연장에 온 사람 모두가 다 공감을 해주고 호응해준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과 성취감, 그건 정말 엄청난거다.
무대에서의 에너지나 관객과의 교감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김바다 :모든 일이 다 그런 것 같다. 그 뿐만 아니라 밴드 구성원 사이의 교감도 중요하다. 내가 밴드를 만들고, 또 밴드가 깨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웃음). 그런 것들 또한 음악을 해가는 과정에서 내 색깔과 잘 맞는 멤버들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트 오브 파티스도 전에 1집을 같이 만들었던 드럼 김주영씨와 기타 박주영씨와 음악적인 부분이 잘 맞아서 한번 잘해보자 하고 열심히 해서 음반을 만들었지만 음악적인 욕심이나, 작업 속도, 내 안에 생겨나는 그런 것들을 그 친구들이 못 따라오는거다. 그다지 활동을 많이 하던 친구들이 아니라서. 그런 부분을 내가 잘 조율하면서 2년을 같이 했지만, 결국 서로의 음악적 거리차가 생기게 됐다. 지금은 새로운 멤버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무대 위에서 에너지를 발산하려면 우선 관객과 교감을 해야 하고, 그러려면 그 이전에 멤버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가 굉장히 큰 것 같다.
김바다 :그 욕구, 음악적 실험을 하고 싶다는 욕구만 가지고 살았다. 본능적인 부분인 것 같다. 그러다 앨범을 내면 사람들이 놀랐다. 그래서 내가 미투데이를 열심히 하고 있다. 나의 음악에 있어서 새로운 시도나 실험도 중요하지만 그 성과에 대해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서. 이것도 하나의 노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대화를 나누다가, 내가 올리는 음악도 듣고 좋아하시는 모습이 좋다. 그러다 공연장에 단 몇 명이라도 더 오게 되고 그럴 수도 있잖은가(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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