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개막해 24일까지 열리는 1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PiFan)는 한여름의 더위를 피해 판타스틱한 세계로 여행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다. 영화제 자체가 ‘판타스틱’을 추구하는 만큼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패밀리 판타’, ‘판타스틱 단편 걸작선’ 등의 부문을 잘 찾아보면 숨은 보석을 쉽게 건질 수 있다. 이것저것 묻고 따지기 귀찮은 독자들을 위해 PiFan의 두 프로그래머가 강력하게 추천하는 다섯 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지옥행 신혼여행 열차를 탄 부부, 수퍼히어로가 된 드랙퀸, 신비의 동물로 환생한 짝사랑 동창생 등 판타스틱한 세계에서 날아온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따분한 일상에 지친 사람이라면 부천에서 별천지를 경험하고 오시길.

임신한 아내와 맞서는 황당한 저주
| 니콜라스 골드바트 | 아르헨티나 | 부천 초이스의 주인공이 임신한 여자라면? 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게으른 남편 코코와 잔소리꾼 임산부 피피는 하루도 멀다 하고 싸우며 끔찍한 나날을 보낸다. 아파트가 원인 모를 질병으로 인해 격리되자 아파트 이웃들은 불안에 휩싸인 채 모여들기 시작한다. 좀비도, 질병의 실체도 등장하지 않는 독특한 SF 스릴러로 은근하면서도 독특한 유머가 돋보인다.
박진형 프로그래머: 특수효과나 CGI, 대규모 제작비가 없이도 상상력과 통찰력만으로도 걸작 SF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을 자증하고 있는 작품.

춤추고 노래하는 드랙퀸 액션 히어로
| 럭키 쿠스완디 | 인도네시아 |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드랙퀸 수퍼히어로 뮤지컬 액션 코미디. 하나의 영화에 이토록 다양한 장르가 들어있다니! 독특한 영화를 원하는 관객이라면 반드시 ‘득템’해야 할 작품이다. 동성애 혐오 정당세력인 미스터 스톰의 수도 함락 야망을 막으려는 헤어디자이너 아담의 활약상이 펼쳐진다. 주인공이 메이크업 가방과 분장 도구에 숨겨진 엄청난 파워로 미스터 스톰의 당선을 막는다는 설정부터 ‘판타스틱’하다.
박진형 프로그래머: 인도네시아 특유의 발랄한 에너지가 총천연색 의상과 수박만한 가발, 그리고 G컵 뽕브라와 만나 폭발하는 ‘드랙퀸’ 수퍼히어로 뮤지컬 액션 코미디. 권태기 부부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 혼다 류이치 | 일본 |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노부야시와 사키 부부, 신혼이지만 동거 기간이 길어서인지 벌써부터 관계가 시들하다. 어느날 백화점에 간 사키는 잃어버렸던 밥솥을 들고 가는 한 남자를 발견한다. 남자를 쫓던 사키는 우연히 만난 점쟁이로부터 지옥행 패키지 여행 팸플릿을 건네받는다. 백화점 옥상에 덩그러니 놓여진 더러운 욕조 속으로 들어가면 지옥에 갈 수 있다니. 아, 지옥으로 떠나는 짜릿한 하룻밤 신혼여행이여!
이영재 프로그래머: 기발한 상상력으로 묘사된 지옥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하다. 이를테면 광대한 바다처럼 펼쳐진 카레 온천이라는 걸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지옥 웨이터의 말에 따르면 피부에 그만이라는데. 다케노우치 유타카의 첫 번째 코믹 연기 도전에 주목하시길.

모래가 시간을 덮칠 때
| 페터 루이지 | 스위스 |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모래 하나로 특수효과 없이 SF 영화를 찍는다? 은 해냈다. 몸에서 모래가 나오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래의 양은 늘고 그에게 남은 시간은 줄어든다. 주인공은 자신이 혐오하던 카페 여주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밤마다 그녀에 대한 꿈을 꾸게 되는 주인공. 대체 이 모든 것은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박진형 프로그래머: 값비싼 특수효과 없이 모래만 있어도 재기발랄한 상상력을 스크린에 펼쳐보이는 데 아무 문제가 없음을 보여주는 영리한 영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와 로맨틱 코미디의 감성을 절묘하게 결합시킨다. 스위스 현대 장르영화의 ‘어떤’ 흐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오, 사랑~ 축축하고 놀라워라
| 이마오카 신지 | 일본 | 스트레인지 오마쥬

핑크영화 전문 감독 이마오카 신지와 왕가위 감독의 단짝 크리스토퍼 도일 촬영감독이 만났다. 장르는 무려 ‘핑크 뮤지컬’이다. 상사와 결혼을 앞두고있는 생선공장 직원 아스카는 호수에 사는 신비의 생물 갓파를 만난다. 고교 동창 아오키가 환생한 것이다. 아오키는 아스카를 짝사랑했지만 러브레터를 보내지 못한 채 호수에 빠져 죽었다. 예비 남편과 결혼할 것인가, 환생한 동창을 선택할 것인가. 핑크영화이니 야릇한 ‘18禁’ 장면은 필수이고 노래와 춤이 보너스로 곁들여진다. 음악은 유럽의 다국적 인디팝 밴드 스테레오 토털이 맡았다.
이영재 프로그래머: 엉뚱하고 멜랑콜리하고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심지어는 엇갈린 사랑, 삶과 죽음에 대한 우주적 비전까지 담아내고 있다. 올해 부천영화제가 선보이는 가장 매혹적인 사랑 이야기!

글. 고경석 기자 k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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