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범이 26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자신의 단독 콘서트 도중 행한 ‘나치 제복’ 퍼포먼스에 대한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이 트위터에서 임재범의 해당 퍼포먼스를 비판하는 트윗을 올리고 작곡가 김형석이 이에 반박하는 트윗을 쓴 것이 언론을 통해 중계되면서 임재범 퍼포먼스에 대한 논란이 ‘김형석 VS 진중권’의 구도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설전에서 비롯된 논란들은 이미 임재범의 나치 퍼포먼스에 관한 본질과는 거리가 멀어진 상태다. 진중권은 영향력 있는 문화평론가이자 논객이고 김형석 또한 영향력 있는 대중문화예술인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발언은 여과 없이 언론을 통해 중계될만큼 정제된 것도 아니었고 두 사람 사이의 설전이 정교한 논쟁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김형석을 두고 “뭐하시는 분인지 모르겠다”고 말한 진중권 특유의 비꼬기 화법은 언론이 중계하기 적합한 형태가 아니고 언론 보도는 대부분 두 사람의 논란이 왜 생겼나 하는 내용보다 “김형석 발끈” 같은, 감정적인 헤드라인에 초점이 맞춰졌다. 연예인들이 자신들의 근황을 사진이나 글로 트위터에 올리기도 하고, 유명 드라마 제작사가 공식 입장을 트위터로 밝히기도 하는 요즘 언론이 트위터를 모른 척 할 수는 없지만 사안에 따라 트위터를 대하는 태도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일부 언론에서는 진중권이 자신의 의견에 반박하는 네티즌에게 보내는 트윗까지 기사화 하는 등 이슈를 위한 이슈가 양산되기도 했다.

소모적인 논란도 기사 거리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자극적인 헤드라인 속에서 두 사람이 제기한 임재범의 나치 제복 퍼포먼스에 대한 논점들을 차분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는 점이다. 임재범의 나치 제복 퍼포먼스는 좀더 면밀한 분석과 평가가 필요했다. 임재범의 소속사는 이 퍼포먼스에 대해 “자유 의지를 억압하는 모든 것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를 담은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또한 그가 공연장에서 “노 히틀러”, “히틀러 이즈 데드”라고 말했으며 그가 이 퍼포먼스 뒤에 부른 ‘Paradom’이 반전 메시지를 담은 곡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 주장이 진실이라면 임재범의 퍼포먼스가 담고 있는 그의 뜻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혹시 여전히 퍼포먼스의 진의를 의심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임재범의 마음에 들어가보지 않는 한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진중권이 트위터를 통해 임재범의 퍼포먼스를 “윤리적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임재범의 마음에 들어가지 않는한 진실을 알 수도 없고, 임재범이 반전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퍼포먼스를 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하지만 진중권이 말한 ‘미감’, 즉 미학적 평가는 여전히 남는다. 반전 메시지를 담았느냐, 담지 않았느냐의 문제를 떠나 반전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나치 제복을 입고 마치 ‘하이 하틀러’를 연상시키는 포즈를 취한 것이 반전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만으로 용인될 수 있는 퍼포먼스냐는 것이다.

그래서 이 퍼포먼스 논란은 해명이나 네티즌의 반응 등에 대한 단순 중계보다 이 퍼포먼스 자체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나 평가가 더 중요했다. 임재범은 워낙 단시간에 대중들에게 신화적 인물이 됐고 그만큼 이 퍼포먼스에 대한 실망과 옹호의 목소리도 클 수 밖에 없다. 때문에 단순히 네티즌들 사이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는 식으로 이 문제가 이슈화 되는 것은 양자 사이의 대립을 극심하게 만들 뿐 생산적인 논란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게다가 진중권이 정면에서 이 퍼포먼스를 비판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이 퍼포먼스를 분석하거나, 평가하지 않았다. 어떤 메시지를 담았느냐 뿐만이 아니라 그 메시지를 어떻게 담았고 그것이 대중에게 명확하게 전달되어 공감하는 것이 가능하냐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지 않은 것이다.

나치 같이 민감한 소재라면 더욱 그렇다. 나치 제복에는 유태인 학살이라는 역사가 담겨 있고, 동시에 그 악명만큼이나 디자인적으로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만큼 나치 제복을 퍼포먼스에 사용할 때는 관객이 그 제복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 이를테면 제복을 입은 모습이 멋있다는 느낌을 받거나, 카리스마를 느끼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나치 제복을 활용한 임재범의 퍼포먼스는 다소 불분명하고 애매한 태도로 펼쳐졌다. 전체 공연의 맥락에서 보면 임재범의 공연은 1부에서의 인간미와 2부의 야수성의 강렬한 대비를 통해 3부에서 임재범을 깨달음을 얻은 구도자, 상처 입고 방황했지만 끝내 부활한 신적인 존재로 만드는 흐름으로 진행됐다. 그런 맥락 속에서 이 나치 제복 퍼포먼스는 2부에서의 야수성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퍼포먼스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단지 그런 용도로 나치 제복이 퍼포먼스에 활용된 것은 나치 제복에 담긴 역사적 함의의 무거움을 볼 때 분명히 문제의 소지가 있다. 또한 임재범이 전달하려는 것이 단순히 반전의 메시지였다고 해도 공연의 구성이나 그가 퍼포먼스에서 보여준 카리스마적인 태도로 말미암아 그의 퍼포먼스의 효과는 공연 전반에 걸쳐 있는 그의 남성적 카리스마가 강조되는데 그쳤다는 비판 또한 가능하다.

하지만 임재범의 공연 이후 진중권과 김형석의 설전이 이어지기까지 임재범의 공연에서 나치 제복 퍼포먼스가 가진 맥락이나 메시지의 전달 방식에 대한 분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의 관심은 김형석-진중권의 의견 대립에 더 쏠리거나, 진중권의 화법에 대한 비판으로 넘어갔다. 비록 진중권 등이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고 하나, 그들의 정제되지 않은 의견을 단순 소개하고, 재생산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은 아니다. 또한 유명한 논객이라고는 하나 분량의 제약이 있는 트위터의 글을 소개할 때는 민감한 문제일수록 그 글에 대한 해석의 틀을 함께 제공해야 한다. 이런 논의의 과정이 사라지면 논란은 본질에서 벗어나 ‘진중권의 화법’과 ‘그에 발끈하는 상대방’을 구경하는 스포츠가 된다. 또한 임재범 역시 합당한 비판을 받는 대신 일파만파로 퍼지는 이슈에 휘말린 처지가 됐다. 자신의 퍼포먼스가 놓친 부분이나 소홀히 했던 부분을 돌이켜볼 기회를 놓친 것은 물론 자극적인 헤드라인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사건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임재범이라는 한 뛰어난 뮤지션이 자신의 노래와 무대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글. 김명현 기자 eigh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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