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면 네가 되고 싶다던, 어느 영화 속 소녀의 고백을 들었을 때타인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이 말을 되새기게 하는 이를 만났다. “장애물은 피하라고 있는 게 아냐. 넘으라고 있는 거지” 라고 패기 넘치게 외치던 호협한 그의 이름은 하시바 히로미. 아소 미코토의 만화 의 주인공이었다. 물론, 2차원 가상의 여자에게 고백 같은 건 안 했다.



대학에서 뒤늦은 사춘기를 겪었다. 서울은 너무 복잡하고 학교는 너무 컸고 사람들은 너무 무서웠다. 강의실보다 하숙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동네 만화방 아저씨와 안부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그 때 히로미를 만났다. 아버지의 돈으로 도쿄에 가서 “멋진 여자”가 되는 게 구두쇠에 억압적인 그를 이기는 것이라 믿고, “국립에 유명하고 도쿄에 있”는 일본 최고 학부 T대에 가기 위해 위액을 토하며 공부한 여자. 표범보다 표범 무늬가 더 잘 어울리는 비행소녀 같은 미모에 생각이 곧장 말과 행동으로 나오는 호전적 태도 탓에 좀처럼 친구를 사귀지 못 하던 여자. 이런 히로미가 대학에서 벌이는 좌충우돌과 여기에 얽혀 삶의 새로운 풍경을 보게 된 사람들이 “히로미를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 이력서에 쓰고 싶을 정도야!” 라고 말하게 되는 이야기가 정말로 부러웠다. 하지만 이십대 내내 히로미 발끝에도 못 가보고 결국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란 소설의 문장에 어깨가 낮아지는 서른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까 신이시여, 다시 태어나게 할 거라면 이번에는 제발! 성격이 어렵다면 얼굴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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