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에도 이경규는 여전히 ‘사랑과 배려의 아이콘’이 되겠다고 선언했지만, 말처럼 쉽진 않았다. KBS ‘남자의 자격’(이하 ‘남격’)에서 동생들을 다그치는 것은 물론, 게스트를 치유하는 콘셉트의 토크쇼인 SBS 에서조차 ‘버럭’ 캐릭터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30일, SBS 에서 동료들의 최우수상 수상 축하도 거부한 채 끊임없이 대상 욕심을 부리며 2012년을 마무리했다.비록 ‘사랑과 배려의 아이콘’이 되진 못했지만 여전히 이경규는 예능계의 어떤 아이콘이며,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30년 간 쉬지 않고 달려 온 그는이제 “호랑이가 아니라 집 지키는 개처럼 된 것 같다”며 멋쩍게 웃는 데뷔 30년차 개그맨이자, 나이가 들수록 웃음이 없어져서 힘들다는 50대 중년이 되었다. 10년 뒤에는 반드시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힘주어 말할 땐 소년의 열정이, 코미디부터 드라마까지 모두 혼자 하는 ‘이경규 쇼’를 마지막 히든카드로 숨겨놓았다고 말할 땐 프로의 연륜이 묻어나는 이경규를, 본격적인 연예대상이 시작되기 일주일 전에 만났다.대화를 나눌수록‘버럭’보다 ‘울컥’하게 되는 그의 힐링캠프.

Q. 영화 제작은 잘 되고 있나.이경규: 지금 김해에서 찍고 있는데 촬영은 50% 정도 진행됐다.



Q. KBS 을 모티브로 삼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이경규: 노래를 통해 뭔가 말하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진짜 노래자랑에 나오는 일반인처럼 보여주기 위해 주인공을 비롯한 몇몇 배우를 제외하고는 전부 신인을 캐스팅했다. 영화 가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옮겨갈 때 생기는 편견을 깨는 영화였다면, 은 꿈을 찾아가는 영화다. 그리고 오락 프로그램을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게 처음인데, 오락 프로그램으로도 충분히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Q. 영화는 짧은 시간 안에 극적인 스토리를 보여줘야 하는데 긴 역사를 가진 오락 프로그램으로 그걸 구현하는 게 쉽진 않았겠다.이경규: 시나리오 단계에서 어려운 부분이 많았지만 온 가족이 보는 즐거운 영화라는 콘셉트에 맞게 만들었다. 대중성이 강해서 중간에 봐도 스토리 전개에 전혀 지장이 없는 만만한 작품이다. (웃음) 요즘 영화다운 영화가 많이 나오는데 은 완전 힘을 빼고 아날로그 식으로 만들었다.

“이 나이 돼서 이미지 관리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Q. 때와 비교하면 섭외를 비롯한 제작 과정은 어땠나.이경규: 한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다는 걸 터득했기 때문에 편했다. 마음고생도 덜했고. 그 때는 충무로와 대중들에게 전혀 인정을 못 받았다. 아니 무슨 영화를 하냐고. 로 관객 수가 180만 가까이 들고 나름 후지지 않은 오락 영화를 내놓으니까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다.



Q. 에서 트로트를 부르는 락스타 봉달호(차태현)처럼 편견을 극복한 셈이다.이경규: 편견이라기보다는 어차피 처음 도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게 있다. 무명 배우들이 조연급으로 출연할 때처럼. 그거 깬다고 고생을 좀 했다.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게 있으니까 내 모습이 영화 속에 전혀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지금은 내 생각보다는 대중들한테 즐거운 영화, 재밌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인정을 받는 게 먼저다. 앞으로 2~3년 동안은 코미디 영화를 만들 생각이다. 아무리 엄숙한 영화를 만들어도 그 안에 유머를 넣어야 된다. 그게 내 분야니까. 옛날에는 영화가 웃기기 진짜 쉽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만들어 보니까 정말 어렵더라. 스토리도 있어야 되고 캐릭터도 살아야 되고 타이밍도 맞아야 한다. KBS 에서 5분 웃기는 것과는 정말 다르다. 한두 편 더 하게 되면 심도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겠지.



Q. 이경규가 만들고 싶은 심도 있는 영화는 어떤 영화인가.

이경규: 평범한 곳에서 비범함을 찾아내는 영화를 좋아하지, 아예 비범한 것을 다루는 영화를 좋아하는 취향은 아니다. 가령, 술 먹고 필름이 끊어졌는데 그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 걱정하는, 그런 생활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다. 영화 도 웃기지 않았나? (최)민식이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가장의 인생이 참 슬펐다. 페이소스가 있는 영화를 만들 생각이다.



Q. ‘남격’도 중년 가장의 평범한 인생을 담아냈기 때문에 초반부터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

이경규: 처음 할 때부터 ‘죽기 전에 해야 될 101가지’라는 콘셉트가 잘될 거라 생각했다. 내가 리얼 버라이어티에 적응을 잘 못했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리얼 버라이어티의 원천인 몰래카메라를 했던 사람이 바로 나다. 내가 항상 주장하는 게 리얼리티다.



Q. 다른 리얼 버라이어티와는 달리 ‘남격’은 일상생활에까지 침투하는 프로그램인데, 방송에서 내 삶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이경규: 난 방송과 생활이 거의 비슷한 사람이다. 하하. 가정을 보여주는 건 좀 그렇지만 내가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성향과 취향에 대해서는 감추거나 미화시키고 싶지 않다. 평소에도 잘 웃거나 친절한 편이 아니다. 그렇다고 남과 다투는 건 아니지만 연예인이니까 과도한 친절을 베풀거나 참는 건 없다. 내가 기분 나쁘면 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Q. 까다로운 아저씨 이미지를 굳이 숨기지 않는데 젊은 시청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되진 않나.

이경규: 전혀 고민하지 않는다. 어차피 좋아할 사람은 좋아하고 싫어할 사람은 싫어한다. 내가 30대면 모를까 이 나이 돼서 이미지 관리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웃음) 내가 갈 길을 꾸준히 가면 내 색깔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마지막에 남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 데리고 갈 순 없다.



Q. 를 봐도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웃음)

이경규: 콘셉트도 ‘상대방 비위맞추지 말자’다.

“를 하면서 연예인들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Q. 게스트들도 그런 직설화법을 잘 받아주던가.

이경규: 처음에는 좀 어색해했다. 사실 내가 방송에서 버럭하고 고함지르는 것도 자세히 보면 남한테 그러는 게 아니라 나한테 그러는 거다. (웃음) 대놓고 게스트의 사생활을 물어보는 게 어색했다. “죄송스럽지만”이라든가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이라고 빙 둘러놓고 찔렀다. 그러면 그 사람도 즐겁게 털어놓고, 또 를 미리 보고 나오는 게스트들은 우리가 돌직구를 던져도 편안하게 얘기하시더라.



Q. 학력 논란이나 이혼 심경고백처럼 연예인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털어놓는 게스트들이 많은데, MC의 입장보다 연예계 선배로서 마음이 쓰일 때도 있겠다.

이경규: 를 하면서 연예인들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정말 평탄한 삶은 없는 것 같다. 어릴 때 했던 고민은 세월이 가면 해결해주지만 나이가 먹으면서 찾아오는 고민은 해결할 시간이 별로 없다. 그래서 얘길 듣다보면 가슴이 아프다. 다행히 우리 프로그램에 나오면 다 잘돼서 나간다. 그게 자랑거리다. 우리끼리 농담처럼 김제동 하나만 되면 다 잘 된다고 얘기한다. 하하.



Q. 특히 신은경 씨는 출연 이후 드라마에 캐스팅되기도 했다.

이경규: 신은경 씨는 내가 먼저 연락해서 몇 번 만나서 밥도 먹고 얘기도 나눴다. 딱히 무슨 얘기를 해줬다기보다는 연예계에 친구가 별로 없는 것 같아서 선배 입장에서 버팀목이 되어줬다.



Q. 과거 인터뷰에서 “영화는 남지만 코미디는 남지 않기 때문에 영화를 만든다”고 말했는데, 자신의 생활과 생각을 바꿔 준 ‘남격’과 정도면 충분히 남는 프로그램이 아닐까.

이경규: 그렇지. 난 프로그램을 통해서 사람이 됐다. ‘남격’을 하면서 담배도 끊고 식스팩도 만들고 배낭여행도 가보고, 아직도 공황장애 약을 먹지만 를 하면서 그런 얘기를 편하게 할 수 있게 됐고 런던 올림픽도 가봤다. 예전엔 축구만 보러 다녔는데 런던에 가서 올림픽 메달 따는 걸 보니까 월드컵과는 다른 느낌이더라. 가 아니었으면 언제 올림픽 개막식을 가보겠나. 인생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Q. 예전엔 소소한 취미를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안했나.

이경규: 전혀 못했다. 그 전에는 방송만 하고 술만 먹고 돌아다녔다. ‘남격’을 하면서 많은 걸 알아 가고 있는데 세월이 빨리 가니까 아깝고, 프로그램도 더 하기 힘들어진다. 식당이 두 개만 있으면 장사가 잘 되는데 여러 개 생겨서 서로 나눠먹다 보니까 메뉴도 비슷해지고 뭘 만들어도 새로워 보이지 않는다. 갈수록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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