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말에는 조정석이 MBC ‘라디오 스타’에 출연했고, 11월 초에는 주원이 KBS 단독 게스트로 초대됐다. 최재웅은 SBS 의 초반을 담당했고, 서범석은 MBC 에서 ‘큐티봉’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임태경과 차지연, 소냐는 KBS ‘불후의 명곡’에서 활약했고, 김소현은 현재 MBC 의 멘토가 되어 있다. 최근 뮤지컬배우들이 다방면으로 진출하면서 누군가는 그들의 과거를 안다는 이유로 뮤지컬 팬들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과거 뮤지컬 VIP 티켓만이 인생 유일한 사치였던 기자와 뮤지컬 평론가 지혜원이 만나 뮤지컬계 이슈를 나누는 ‘뮤德과의 동침’ 세 번째 시간은 바로 이 이야기다.
뮤지컬배우가 드라마와 영화에 빠진 날
장경진: 조정석이나 김무열처럼 5년 이상 뮤지컬무대를 지켰던 사람들을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뮤지컬팬 입장에서 지금의 상황이 좋으면서도 되게 씁쓸하다. 나만 알던 비밀이 까발려진 느낌도 들고, 오빠들이 다시 무대에 안 설까봐 조마조마 하기도 하고. (웃음) ‘뮤지컬배우의 TV 진출’이라는 타이틀로 얘기가 많이 되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뮤지컬배우’라는 게 대체 뭔가 싶다.
지혜원: 방송사 공채가 있던 시절에는 영화배우와 TV탤런트의 구분이 있었다. 공채가 없어지면서 사실상 그 구분이 사라졌고, 그 경계가 공연까지 넓어졌다. 뮤지컬배우라는 정의도 비슷하다. 현대극장, 민중극단, 광장, 대중, 롯데월드예술극장 등으로 이어져오던 80-90년대는 우리나라 뮤지컬의 스타일을 완성해가는 시기였다. 지금에 비하면 어색한 번역 투의 대사와 과장된 연기의 작품들이 많았고 뮤지컬배우도 훨씬 분명한 스타일이 있었다. 배우의 활동 영역에 있어 매체 간 하드웨어적인 경계는 점차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소프트웨어랄 수 있는 매체별 연기 스타일은 여전히 존재한다. 무대 연기는 오픈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관객의 주의를 자신에게로 집중시키는 배우의 장악력이 중요하다. 특히 대극장 뮤지컬의 경우엔 10열 뒤로는 자세한 표정이 거의 안보이기 때문에 딕션과 발성, 몸짓 등 통합적인 부분으로 배우를 평가하게 된다. 외형적 조건 외에 배우의 다양한 매력을 찾을 수 있다는 건 뮤지컬의 강점이기도 하다.
장경진: 거리감 때문에 생겨난 과장된 톤이 어쩔 수 없는 장르의 특성이긴 했지만 늘 놀림거리였다. 드라마와 영화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연기 트레이닝이 된 신선한 얼굴을 원하는 제작진들의 수요와 무대 배우들의 공급도 잘 맞아 떨어졌다. SBS 에 조현민(엄기준)의 수족, 염재희 역으로 정문성이 출연했었다. 상대적으로 대중에게 덜 알려진 배우라 시청자들이 크게 주목하지 않았고, 그랬기 때문에 이후 그가 범인으로 밝혀졌을 때 임팩트가 더 컸던 것 같다.
지혜원: 거기에 뮤지컬이라는 장르 자체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주요하게 작용했다.
롤모델이 있다면 조승우와 이선균
장경진: 뮤지컬이 주목 받은 데는 조승우의 영향이 크다. 2002년 뮤지컬 으로 시장이 커졌고, 영화 로 인기를 얻던 조승우가 2004년 뮤지컬 초연에 참여하면서 일반 대중들이 더 유입됐다. 제작진 입장에서도 꾸준히 뮤지컬 무대에 섰던 그를 통해 무대 배우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을 거다. 오만석도 조승우의 뮤지컬 을 통해 알려진 케이스고, 홍광호나 최민철 등은 조승우와 함께 영화 과 에 출연했으니 말이다.
지혜원: 조승우는 똘똘하다 못해 영악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매체별 연기톤을 잘 조절한다. 그는 호흡을 아는 배우다. 캐릭터나 작품만이 아니라 매체를 이해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사각 앵글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영상매체의 경우 카메라와의 호흡이 중요하다. 눈빛, 표정, 손동작 등의 디테일이 중요한데, 그런 트레이닝을 받았거나 원래 그런 것들을 잘하는 배우들이 가서 성공하는 편이다.
장경진: 엄기준이 그걸 시작부터 가장 잘했던 것 같다. 뮤지컬 무대에서도 늘 ‘1열이 진리’라는 얘기를 들어왔고, 대극장보다는 소극장 공연에서 도드라졌었다.
지혜원: 특히 드라마의 경우엔 매체에서 요하는 배우가 있다. 작품의 장르만이 아니라 편성도 고려해 배우를 캐스팅한다. SBS 에서도 ‘쟨 미니 얼굴은 아니야’라는 말을 하지 않나. (웃음) 공연에 비해 영화가, 영화에 비해 TV가 훨씬 더 관객의 접근성이 높기 때문에 드라마의 주연급일 경우에는 잘생기고 못생기고를 떠나서 일단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인상이 굉장히 중요하다. 뮤지컬배우 출신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이선균은 자연스럽고 편안한 연기가 카메라 앞에서 장점이 됐다. 무대였으면 묻혔을 수도 있다. 거기다 서민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를 놓지 않음으로써 연기 스펙트럼도 꾸준히 넓혀왔기 때문에 조승우와는 또 다르게, 영상매체로의 진출을 희망하는 무대 배우에게 좋은 롤모델이 될 것 같다.
배우, 때로는 장난치는 여우가 되어야 한다
장경진: 몇몇 잘된 배우들의 케이스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요즘은 뮤지컬배우가 되려면 연예인을 먼저 하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했던 이들이 뮤지컬로 많이 넘어온다. 거기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도 이 현상의 원인 중 하나다. 그러니 무대를 드라마나 영화로 가기 위한 발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할거다.
지혜원: 은연중에 많은 이들이 영상매체를 더 상위의 매체로 생각하고 있다. 에서 짐 하퍼 역을 맡은 존 갤러거 주니어는 뮤지컬 의 모리츠였다. 미국에서도 장르간 이동이 자유롭고, 우리나라처럼 주연급보다는 조연급으로 출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미국은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를 대등한 위치로 놓고 보기 때문에 영상매체에 나가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배우도 많지 않고, 유명인이 뮤지컬을 한다고 해서 유난을 떠는 일도 별로 없다. 환경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시켜만 주면 뭐든 하겠다’ 라는 생각으로 허겁지겁 TV나 영화로 진출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장경진: 배우 스스로도 자신의 이미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영리하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영화 의 조정석은 적은 비중이었지만 자신이 뮤지컬 무대에서 잘해왔던 장난스러운 모습을 영화와 잘 믹스해 모든 신을 살리지 않았나. 그리고 뮤지컬 경력이 많다손 치더라도 영상매체는 아예 새로운 환경이라 리셋이라는 생각으로 준비할 필요도 있다. 엄기준은 촬영이 없는 날에도 무조건 촬영장에 나가서 앵글 안에서 연기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꾸준히 보며 적응해 나갔다고 했다. 그런 노력 없이는 계속 살아남을 수 없다. 그리고 배우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나간 이상 배역이 작아도 임팩트 있는 캐릭터를 맡아주면 좋겠다. 뮤지컬에서 나름의 캐릭터를 가지고 연기하던 이들이 누구 비서로 뒤에 서 있는 걸 보면 정말 속 터진다.
지혜원: 우리나라는 영화든 드라마든 원탑에 기대어 가는 멜로 작품이 많기 때문에 스타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무대 배우들이 진출할 수 있는 통로가 적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국드라마처럼 인물 사이의 관계나 사건에 중심을 둔 SBS , , MBC 등의 작품이나 케이블드라마의 장르물들이 부각되면서 더 다양한 길이 생기고 있는 추세다. 그 매체가 다루는 콘텐츠의 특성과 배우 자신의 특성의 접점을 잘 찾아야 한다.
가능성 있는 뮤지컬배우, 누가 먼저 찜하나
장경진: 뮤지컬배우의 다양한 가능성이 증명되면서 매니지먼트사에서도 그들을 주목하는 시기가 빨라지고 있다. 사실 주원이 빠르게 TV에 안착한데는 소속사의 힘도 무시할 수 없다. 엄태웅, 김윤석 등의 배우를 관리해온 심엔터테인먼트는 주원을 트렌디 드라마 대신 KBS , 처럼 자연스럽게 대중에게 스며드는 작품에 출연시켰고, 주원 역시 경력 많은 선배들과의 호흡으로 매체에 적응했다. 거기에 ‘1박 2일’은 그의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기에 적합한 프로그램이다.
지혜원: 무대에서 다른 매체로 진출하려면 대중에게 어떤 포지셔닝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플랜이 필요하다. 훨씬 더 넓고 많은 사람에게서 다양한 시각의 주목을 받게 되기 때문에 배우와 매니지먼트 모두 그 동안 나를 봐준 사람(뮤지컬 관객)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 앞에 선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카메라 앞에서도 무대에서만 통하는 오버 연기를 안 할 수 있다.
장경진: 무대 배우들과 계약한 소속사들이 많아지면서 자체적으로 공연을 제작하는 현상도 두드러졌다. 장인엔터테인먼트는 최재웅을 앞세워 뮤지컬 를 만들었고, 김다현과 강필석이 소속된 판타지오는 뮤지컬 , 등에 투자한 KMH와 제휴협약을 맺음으로서 제작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김재범과 조강현, 성두섭 등 최근 뮤지컬배우를 다수 영입한 아시아브릿지컨텐츠는 올해만 총 네 작품을 올렸다.
지혜원: 2010년에는 아예 나무액터스와 악어컴퍼니가 MOU를 맺고 ‘무대가 좋다’ 시리즈를 1년간 진행하기도 했었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이름 있는 배우들의 출연으로 수익과 홍보에 도움을 얻었을 거고, 매니지먼트사 역시 소속 배우들에게 새로운 경험의 장을 마련해 준거다.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방식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이 배우를 추천합니다
장경진: 그동안 뮤지컬에서 보여줬던 연기를 바탕으로 배우들을 추천해보자. 이율은 데뷔가 강렬해서 그런지 나 같이 센 척 하는 캐릭터가 잘 어울린다. 김재범의 경우엔 말간 얼굴을 가졌는데 그 뒤에 악랄함 같은 게 확 스칠 때가 있다. 연극 가 인상적인 것도 그런 이유였는데, 같은 장르물에서 용의자 역할 맡으면 잘할 것 같다.
지혜원: 랑 에서 해설자 역을 주로 맡아서 그런지 박은태가 예지력 있는 캐릭터로 출연해 중요한 순간을 확 점지해주는 건 어떨까 싶다. (웃음) 강필석의 경우엔 복고풍의 작품에서 학교 선생님이나 지식인 같은 캐릭터도 잘 어울릴 것 같고.
장경진: 최재웅은 다크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설경구 같은 느낌으로 포지셔닝 하면 괜찮지 않을까?
지혜원: 조정석에겐 긍정의 기운이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차태현스러운 길을 가면 오히려 더 롱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장경진: 이러다 이 오빠님들이 진짜 무대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서 무섭다. (웃음)
글. 장경진 three@
뮤지컬배우가 드라마와 영화에 빠진 날
장경진: 조정석이나 김무열처럼 5년 이상 뮤지컬무대를 지켰던 사람들을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뮤지컬팬 입장에서 지금의 상황이 좋으면서도 되게 씁쓸하다. 나만 알던 비밀이 까발려진 느낌도 들고, 오빠들이 다시 무대에 안 설까봐 조마조마 하기도 하고. (웃음) ‘뮤지컬배우의 TV 진출’이라는 타이틀로 얘기가 많이 되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뮤지컬배우’라는 게 대체 뭔가 싶다.
지혜원: 방송사 공채가 있던 시절에는 영화배우와 TV탤런트의 구분이 있었다. 공채가 없어지면서 사실상 그 구분이 사라졌고, 그 경계가 공연까지 넓어졌다. 뮤지컬배우라는 정의도 비슷하다. 현대극장, 민중극단, 광장, 대중, 롯데월드예술극장 등으로 이어져오던 80-90년대는 우리나라 뮤지컬의 스타일을 완성해가는 시기였다. 지금에 비하면 어색한 번역 투의 대사와 과장된 연기의 작품들이 많았고 뮤지컬배우도 훨씬 분명한 스타일이 있었다. 배우의 활동 영역에 있어 매체 간 하드웨어적인 경계는 점차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소프트웨어랄 수 있는 매체별 연기 스타일은 여전히 존재한다. 무대 연기는 오픈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관객의 주의를 자신에게로 집중시키는 배우의 장악력이 중요하다. 특히 대극장 뮤지컬의 경우엔 10열 뒤로는 자세한 표정이 거의 안보이기 때문에 딕션과 발성, 몸짓 등 통합적인 부분으로 배우를 평가하게 된다. 외형적 조건 외에 배우의 다양한 매력을 찾을 수 있다는 건 뮤지컬의 강점이기도 하다.
장경진: 거리감 때문에 생겨난 과장된 톤이 어쩔 수 없는 장르의 특성이긴 했지만 늘 놀림거리였다. 드라마와 영화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연기 트레이닝이 된 신선한 얼굴을 원하는 제작진들의 수요와 무대 배우들의 공급도 잘 맞아 떨어졌다. SBS 에 조현민(엄기준)의 수족, 염재희 역으로 정문성이 출연했었다. 상대적으로 대중에게 덜 알려진 배우라 시청자들이 크게 주목하지 않았고, 그랬기 때문에 이후 그가 범인으로 밝혀졌을 때 임팩트가 더 컸던 것 같다.
지혜원: 거기에 뮤지컬이라는 장르 자체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주요하게 작용했다.
롤모델이 있다면 조승우와 이선균
장경진: 뮤지컬이 주목 받은 데는 조승우의 영향이 크다. 2002년 뮤지컬 으로 시장이 커졌고, 영화 로 인기를 얻던 조승우가 2004년 뮤지컬 초연에 참여하면서 일반 대중들이 더 유입됐다. 제작진 입장에서도 꾸준히 뮤지컬 무대에 섰던 그를 통해 무대 배우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을 거다. 오만석도 조승우의 뮤지컬 을 통해 알려진 케이스고, 홍광호나 최민철 등은 조승우와 함께 영화 과 에 출연했으니 말이다.
지혜원: 조승우는 똘똘하다 못해 영악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매체별 연기톤을 잘 조절한다. 그는 호흡을 아는 배우다. 캐릭터나 작품만이 아니라 매체를 이해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사각 앵글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영상매체의 경우 카메라와의 호흡이 중요하다. 눈빛, 표정, 손동작 등의 디테일이 중요한데, 그런 트레이닝을 받았거나 원래 그런 것들을 잘하는 배우들이 가서 성공하는 편이다.
장경진: 엄기준이 그걸 시작부터 가장 잘했던 것 같다. 뮤지컬 무대에서도 늘 ‘1열이 진리’라는 얘기를 들어왔고, 대극장보다는 소극장 공연에서 도드라졌었다.
지혜원: 특히 드라마의 경우엔 매체에서 요하는 배우가 있다. 작품의 장르만이 아니라 편성도 고려해 배우를 캐스팅한다. SBS 에서도 ‘쟨 미니 얼굴은 아니야’라는 말을 하지 않나. (웃음) 공연에 비해 영화가, 영화에 비해 TV가 훨씬 더 관객의 접근성이 높기 때문에 드라마의 주연급일 경우에는 잘생기고 못생기고를 떠나서 일단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인상이 굉장히 중요하다. 뮤지컬배우 출신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이선균은 자연스럽고 편안한 연기가 카메라 앞에서 장점이 됐다. 무대였으면 묻혔을 수도 있다. 거기다 서민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를 놓지 않음으로써 연기 스펙트럼도 꾸준히 넓혀왔기 때문에 조승우와는 또 다르게, 영상매체로의 진출을 희망하는 무대 배우에게 좋은 롤모델이 될 것 같다.
배우, 때로는 장난치는 여우가 되어야 한다
장경진: 몇몇 잘된 배우들의 케이스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요즘은 뮤지컬배우가 되려면 연예인을 먼저 하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했던 이들이 뮤지컬로 많이 넘어온다. 거기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도 이 현상의 원인 중 하나다. 그러니 무대를 드라마나 영화로 가기 위한 발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할거다.
지혜원: 은연중에 많은 이들이 영상매체를 더 상위의 매체로 생각하고 있다. 에서 짐 하퍼 역을 맡은 존 갤러거 주니어는 뮤지컬 의 모리츠였다. 미국에서도 장르간 이동이 자유롭고, 우리나라처럼 주연급보다는 조연급으로 출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미국은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를 대등한 위치로 놓고 보기 때문에 영상매체에 나가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배우도 많지 않고, 유명인이 뮤지컬을 한다고 해서 유난을 떠는 일도 별로 없다. 환경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시켜만 주면 뭐든 하겠다’ 라는 생각으로 허겁지겁 TV나 영화로 진출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장경진: 배우 스스로도 자신의 이미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영리하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영화 의 조정석은 적은 비중이었지만 자신이 뮤지컬 무대에서 잘해왔던 장난스러운 모습을 영화와 잘 믹스해 모든 신을 살리지 않았나. 그리고 뮤지컬 경력이 많다손 치더라도 영상매체는 아예 새로운 환경이라 리셋이라는 생각으로 준비할 필요도 있다. 엄기준은 촬영이 없는 날에도 무조건 촬영장에 나가서 앵글 안에서 연기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꾸준히 보며 적응해 나갔다고 했다. 그런 노력 없이는 계속 살아남을 수 없다. 그리고 배우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나간 이상 배역이 작아도 임팩트 있는 캐릭터를 맡아주면 좋겠다. 뮤지컬에서 나름의 캐릭터를 가지고 연기하던 이들이 누구 비서로 뒤에 서 있는 걸 보면 정말 속 터진다.
지혜원: 우리나라는 영화든 드라마든 원탑에 기대어 가는 멜로 작품이 많기 때문에 스타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무대 배우들이 진출할 수 있는 통로가 적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국드라마처럼 인물 사이의 관계나 사건에 중심을 둔 SBS , , MBC 등의 작품이나 케이블드라마의 장르물들이 부각되면서 더 다양한 길이 생기고 있는 추세다. 그 매체가 다루는 콘텐츠의 특성과 배우 자신의 특성의 접점을 잘 찾아야 한다.
가능성 있는 뮤지컬배우, 누가 먼저 찜하나
장경진: 뮤지컬배우의 다양한 가능성이 증명되면서 매니지먼트사에서도 그들을 주목하는 시기가 빨라지고 있다. 사실 주원이 빠르게 TV에 안착한데는 소속사의 힘도 무시할 수 없다. 엄태웅, 김윤석 등의 배우를 관리해온 심엔터테인먼트는 주원을 트렌디 드라마 대신 KBS , 처럼 자연스럽게 대중에게 스며드는 작품에 출연시켰고, 주원 역시 경력 많은 선배들과의 호흡으로 매체에 적응했다. 거기에 ‘1박 2일’은 그의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기에 적합한 프로그램이다.
지혜원: 무대에서 다른 매체로 진출하려면 대중에게 어떤 포지셔닝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플랜이 필요하다. 훨씬 더 넓고 많은 사람에게서 다양한 시각의 주목을 받게 되기 때문에 배우와 매니지먼트 모두 그 동안 나를 봐준 사람(뮤지컬 관객)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 앞에 선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카메라 앞에서도 무대에서만 통하는 오버 연기를 안 할 수 있다.
장경진: 무대 배우들과 계약한 소속사들이 많아지면서 자체적으로 공연을 제작하는 현상도 두드러졌다. 장인엔터테인먼트는 최재웅을 앞세워 뮤지컬 를 만들었고, 김다현과 강필석이 소속된 판타지오는 뮤지컬 , 등에 투자한 KMH와 제휴협약을 맺음으로서 제작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김재범과 조강현, 성두섭 등 최근 뮤지컬배우를 다수 영입한 아시아브릿지컨텐츠는 올해만 총 네 작품을 올렸다.
지혜원: 2010년에는 아예 나무액터스와 악어컴퍼니가 MOU를 맺고 ‘무대가 좋다’ 시리즈를 1년간 진행하기도 했었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이름 있는 배우들의 출연으로 수익과 홍보에 도움을 얻었을 거고, 매니지먼트사 역시 소속 배우들에게 새로운 경험의 장을 마련해 준거다.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방식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이 배우를 추천합니다
장경진: 그동안 뮤지컬에서 보여줬던 연기를 바탕으로 배우들을 추천해보자. 이율은 데뷔가 강렬해서 그런지 나 같이 센 척 하는 캐릭터가 잘 어울린다. 김재범의 경우엔 말간 얼굴을 가졌는데 그 뒤에 악랄함 같은 게 확 스칠 때가 있다. 연극 가 인상적인 것도 그런 이유였는데, 같은 장르물에서 용의자 역할 맡으면 잘할 것 같다.
지혜원: 랑 에서 해설자 역을 주로 맡아서 그런지 박은태가 예지력 있는 캐릭터로 출연해 중요한 순간을 확 점지해주는 건 어떨까 싶다. (웃음) 강필석의 경우엔 복고풍의 작품에서 학교 선생님이나 지식인 같은 캐릭터도 잘 어울릴 것 같고.
장경진: 최재웅은 다크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설경구 같은 느낌으로 포지셔닝 하면 괜찮지 않을까?
지혜원: 조정석에겐 긍정의 기운이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차태현스러운 길을 가면 오히려 더 롱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장경진: 이러다 이 오빠님들이 진짜 무대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서 무섭다. (웃음)
글.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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