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이 쉽사리 보이지 않는 길을 가는 건 얼마나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할까. 한 달 전 KBS2 을 끝낸 배우 박기웅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가 가는 길이 고달프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또래 배우보다 다작을 한” 20대 남자 배우가 “작품을 하면 할수록 할 게 더 많아지고 연기가 무섭다는 걸 느껴요”라고 말할 때, 대중의 평가를 꼼꼼히 체크하는 것은 물론이고 배우로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점검하는 사람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집념을 봤기 때문이다. 그는 매 작품을 하면서 또 하나를 배우고 자신을 평가하며 그것을 담백하게 털어놓을 줄 아는 배우다. 일에 치여 사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연기만 생각하게 될 것 같은 천생 배우.

그래서 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것 외에도 박기웅이란 배우에게는 어떤 의미였는지가 궁금해졌다. 그가 영화 , , KBS , ,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보여준, 로맨틱하다가도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연기를 생각하면 박기웅에게도 대중에게도 의 기무라 ?지는 새로운 역할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박기웅은 자신의 신념과 반대로 가야 하는 시대의 피해자이자, 한 여자를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하고 친구와 적이 될 수밖에 없는 남자의 쓸쓸함과 외로움을 복합적으로 그려냈다. 종잡을 수 없이 달라지는 감정을 빼곡하게 새김으로써 단면적으로 보일 수 있던 기무라 ?지는 보는 사람에게 애틋함으로 다가갔다.

겸손한 배우로 알려져 있듯 박기웅은 이에 대해 “대본이, 상황이, 상대배우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스태프 분들이 그렇게 표현되도록 도와주신 부분이 큽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악역으로서 영웅인 각시탈(주원)이 더 멋있어 보일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친구인 강토(주원)와 대립해야만 하는 당위성도 표현해야 했기 때문에 중심을 지키려고 했어요”라는 말로 허세가 아닌 믿음을 주기도 한다. 배우로서의 욕심만 고집하지 않고 대중이 원하는 것을 끊임없이 존중할 때 배우의 내일이 더 밝다는 걸 아는 사람의 대답이기 때문이다. 자신과 대중의 거리를 좁히는 것은 쉽게 답을 찾을 수 없는 일이고 그래서 그는 항상 부지런할 수밖에 없으며 그럴수록 박기웅의 인내심은 돋보인다. 그렇게 박기웅은 시간이 갈수록 자신을 깊게 파면서 또 넓어지려고 한다. 다음은 그런 그의 면면을 느낄 수 있는 노래다.
1. 에코브릿지(Eco Bridge)의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수 있는 곡이에요.” 박기웅이 첫 번째로 추천한 곡은 에코브릿지(Eco Bridge)의 ‘니자리 (Feat. 정엽 of 브라운 아이드 소울)’다. “개인적으로 에코브릿지 형, 정엽 형과 친해요. 이 곡을 녹음할 때 서래마을에 있는 녹음실에 같이 있었는데 녹음할 때도, 작업이 끝난 곡을 들을 때도 가슴이 울렸던 기억이 나요.” 이 곡의 ‘나도 몰래 네가 준 옷을 입으면 왜 그리 참 잘 어울려. 오래된 친구와 술을 마실 때면 늘 내게 말투가 너 같대’ 등의 가사는 박기웅의 말처럼 추억을 건드린다. 또한, 감성적인 에코브릿지의 분위기와 부드러운 정엽의 목소리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도 느낄 수 있는데 이들은 공연, 음반 작업 등을 함께 하며 우정을 나누는 사이로도 잘 알려져 있다.

2. Amalia Rodrigues의
박기웅이 추천한 두 번째 음악은 포르투갈 출신의 아말리아 로드리게스가 부른 ‘Barco Negro’다. ‘검은 돛배’란 뜻을 가진 이 노래는 포르투갈 민요라 할 수 있는 파두다. 보통 흘러간 세월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기 때문에 파두는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마음을 건드린다.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는 아버지께서 추천해 주신 가수인데요. ‘Barco Negro’는 그 가수의 대표곡 중 하나에요. 이 가수의 목소리는 정말 슬프다 못해 처연해요. 연기할 때 많은 영감을 주기도 합니다.” 이 노래는 먼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떠난 남편을 기다렸지만, 어느 날 수평선 위로 나타난 남편의 배에 검은 돛이 달려 있어 눈물을 흘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3. The Innocence Mission의
“이 그룹의 보컬인 카펜 페리스와 기타리스트인 돈 페리스는 부부인데요. 이들의 하모니가 정말 좋아요. 물론 베이시스트인 마이크 비츠도 좋지만요.” 박기웅이 추천한 곡 ‘Rain (Setting Out In The Leaf Boat)’의 주인공 이노센스 미션은 1985년 결성한 이후로 끊임없이 포크 씬의 지지를 얻고 있는 밴드다. “개인적으로 여성 보컬리스트를 좋아하는 편인데 카펜 페리스의 목소리를 특히 좋아해요. 이노센스 미션의 다른 곡들도 추천하고 싶어요.” ‘Rain (Setting Out In The Leaf Boat)’은 2010년에 발표된 에 들어있는 곡이며 ABC 에도 수록된 바 있다.
4. Meklit Hadero의
박기웅이 추천한 네 번째 음악은 메크릿 하데로의 ‘Feeling Good’이다. 에티오피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그녀는 2010년 데뷔 앨범을 발표한다. 허스키하면서도 청량한 느낌도 주는 메크릿 하데로의 목소리는 4분 남짓한 이 곡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박기웅에겐 그녀의 목소리보단 앨범 재킷으로 먼저 시선을 끈 앨범이다. “음원보다 CD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음악을 소유한다는 기분이 들거든요. 그러다 보니 앨범 재킷만 보고 꽂혀서 사는 경우도 있는데 이 음반이 그랬어요. 자주 가는 집 근처 한의원에 진료 받으러 갔다가 옆에 있던 멕시칸 음식점에서 커피를 마시려고 했는데 카운터에서 이 앨범을 팔고 있더라고요. 하지만 음악을 듣고 더 반하게 됐어요. 한 곡 안에서도 분위기가 서너 번은 바뀌거든요.”

5. 림지훈의
박기웅의 마음을 울린 마지막 노래는 림지훈의 ‘연안부두’다. 제목부터 독특한 이 앨범은 마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오르간 그라인더 림지훈의 솔로 앨범이다. 이 앨범엔 남자의 색깔을 잘 보여준다는 오르간 위주의 연주곡이 많은데 그 중 김트리오의 동명 곡을 리메이크한 ‘연안부두’는 유일하게 가사가 있다. “친한 영화 미술감독 형의 추천으로 듣고 바로 산 앨범인데요. 현장에서 집으로 퇴근하는 길에 같이 있던 사람들과 들었는데 신나더라고요. 지금 들어도 퇴근하는 기분이 들어요. 음악의 힘은 참 무서운 것 같습니다.” 트로트와 그루브한 느낌이 동시에 담겨있는 이 곡은 들을수록 쓸쓸함을 느낄 수 있는 음악이다.

박기웅은 “작품 끝날 때마다 아쉬운 점이 느껴지지만 그만큼 시야가 넓어졌다는 의미”라며 기합을 넣었다. 많은 작품을 했다고 해서 무조건 성장한다는 결론엔 어폐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충분한 경험을 통해 자신을 다듬고 대중의 시선도 놓치지 않으려는 태도는 어렵지만 분명 그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얻어낸 박기웅의 답은 관객들에게도 분명 반가운 일이다. “영화 의 리해랑 역을 준비하고 있는데 북한 사투리, 기타 연주, 특공무술을 기반으로 한 액션 등 준비할 게 참 많아요. 그중에서도 김수현, 이현우 씨가 맡은 캐릭터와 다른 색깔을 보여주면서 하모니를 맞추는 거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영화에서 해야 할 역할과 관객 분들이 바라는 이미지 모두 충족시키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가 만난 새로운 길은 또 어떤 모습일까. 이런 설렘과 믿음이 차기작뿐 아니라 그의 다음을 계속 기대하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글. 한여울 기자 sixteen@
사진. 이진혁 elev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