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세트장으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 ‘장소 협조: 한국민속촌’이라는 자막 덕분에 널리 알려지긴 했으나, 한국민속촌의 본래 기능은 드라마 촬영장이 아니라 생생하게 재현된 마을 안에서 전통의 원형을 지키고 전파하는 것이다. 거기에 최근 한국민속촌은 단순히 전통을 보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민속촌을 공포마을로 변화시킨 야간공포체험 프로그램과 500명이 동시에 술래잡기를 하는 ‘500, 얼음땡’ 등이 그 출발점이었다. 특히 한국민속촌 트위터 계정은 사극 말투를 쓰는 아씨의 캐릭터로 뚜렷한 존재감을 떨치고 있는 중이다. 전통은 더 이상 과거에 정체돼 있지 않고, 현재의 방식과 결합해 더 큰 재미를 만들어 냈다. 그래서 가 한국민속촌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는 마케팅 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덤으로 민속촌 아씨가 안내하는 한국민속촌의 ‘핫 스팟’들도 만나볼 수 있다.
“트위터의 아씨 캐릭터는 트렌드와 딱 맞아떨어졌다”
최근 한국민속촌이 트위터 우수활용기업으로 뽑혔다. 센스가 남다르던데, 누가 계정을 운영하고 있나.
김은정 팀장: 돌아가면서 세 명 정도가 하고 있지만, 메인으로 하는 사람은 한 명으로 정해져 있다. ‘드립’에는 개인차가 있을 수밖에 없고, 시크하고 도도한 아씨라는 캐릭터도 유지해야 하므로 다른 사람이 대신하면 표가 난다. 계정을 메인으로 운영하는 사람이 누군지 밝히지 않는 게 우리의 신비주의 전략이다. 팔로워가 10만 명을 넘어가면 운영자를 밝히고 공개 이벤트를 할 생각이다.
황선집 대리: 아마 대국민축제가 될 것이다. (웃음)
사극 말투를 쓰는 아씨의 캐릭터는 어떻게 잡게 된 건가.
황선집 대리: 한국민속촌이 트위터 계정을 오픈한 건 지난해였는데 팔로워가 700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 RT 팔로우 이벤트를 해봤지만, 그런 방법을 사용하는 기업 계정이 너무 많다 보니 티가 나지 않았다. 방법을 바꿔보자, 해서 사극 말투를 쓰기 시작했는데 입소문이 나면서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팔로워가 늘었다.
허영은 학예연구사: 팔로워 분들이 만들어주신 부분도 있다. 민속촌 계정의 말투에 관심을 두는 분들이 많이 생기면서, 어떤 분이 연상되는 이미지를 그려서 보내주셨다. 트위터와 더불어 젊은 사람들이 한국민속촌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지난여름 실시했던 야간공포체험이었던 것 같다.
허영은 학예연구사: 대부분의 기획은 우리가 민속촌을 어떻게 느끼는가에서 출발하게 된다. 밤의 민속촌은 운치도 있지만, 느끼기에 따라서 좀 무서울 수도 있다. 현대적인 조명이 있는 게 아니거든.
김은정 팀장: 아이디어는 계속 있었다. 민속촌 중간에 문이 하나 있는데, 거기부터는 전통 경관 구역이라 전기도, 수도도 안 넣은 채 38년을 지켜왔다. 직원들끼리 늘 “야, 우리 공포체험 하면 정말 대박이겠다”라는 이야기를 계속했었는데, 이번에 신사업 팀에서 실행에 옮긴 거다.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좀 더 듣고 싶다.
김은정 팀장: 지난 6월 ‘전설의 고향’ 어트랙션이 오픈됐고, 이걸 한국민속촌 전체로 확장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들이 직접 참여해서 시뮬레이션을 계속했다. ‘더 무섭게, 더 무섭게’라고 업데이트를 하다 보니 연출이나 조명, 특수효과 등이 부분적으로 들어갔다. 대신 민속촌에는 아날로그적인 느낌이 있기 때문에 너무 화려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내년에는 야간공포체험도 좀 더 보강될 것 같은데 아직은 대외비다.
허영은 학예연구사: 나는 실제로 시험해보다가 울면서 포기하고 나왔다.
황선집 대리: 나는 최초 기획 당시 프로그램을 같이 만들었기 때문에 별로 안 무서웠다. 어디서 어떤 게 나오는지 다 알고 있으니까. 귀신도 내가 교육했기 때문에 나와서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안다. 그런데 가끔 애드리브를 치는 귀신들이 있어서 그럴 땐 좀 무서웠다.
“최근 반년 동안 방문객의 세대층이 확 바뀌었다”
사실 한국민속촌은 영화나 드라마 촬영장으로만 꾸준히 쓰여도 유지될 수 있지 않나.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은정 팀장: 물론 홍보나 마케팅을 전혀 하지 않아도 촬영팀은 꾸준히 온다. 그런데 최근 비슷한 민속마을이나 테마파크들이 많이 생기면서 경쟁이 심해졌다. 예전에는 원형을 보존하고 유지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면, 이제는 여러 사람과 전통문화를 공유하는 데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오로지 한국민속촌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로 콘텐츠를 채우고 홍보하자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롤모델로 삼을 만한 게 없어서 아이디어를 내기가 자유로운 한편, 방향성을 잡기는 어려울 것 같기도 한데.
김은정 팀장: 그렇다. 사실 우리는 에버랜드나 롯데월드를 경쟁상대로 생각하고 있다. 테마가 다를 뿐 ‘테마파크’라는 점에선 유사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민속촌은 박물관과 어뮤즈먼트파크의 중간이라고 볼 수 있는데, 너무 교육적이어도 재미가 없고 너무 놀이만 있어도 안 되기 때문에 타깃별로 나눠서 마케팅을 하는 편이다. 메인 타깃은 어린 자녀를 둔 4인 가족이고, 부수적으로 젊은 층도 함께 공략하고 있다. 야간공포체험이나 ‘500, 얼음땡’ 같은 행사는 후자를 위한 거라고 보면 된다.
‘500, 얼음땡’은 일종의 전통 ‘런닝맨’ 같은 기획이었는데, 처음에는 실행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있었을 것 같다.
황선집 대리: 그냥 던진 기획이었는데 진짜로 실현이 된 케이스다. 500명이 얼음땡을 하러 뛰어다니는 그림 자체가 재미있지 않나. 배경이 민속촌이니까 KBS 느낌이 날 것 같았다.
김은정 팀장: 처음엔 내가 “되겠어?”하는 눈으로 압박을 줬는데 트위터 팔로워들한테 물어보니 반응이 좋더라. 이게 SBS ‘런닝맨’을 모델로 접목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제작진 측에서 이걸 보고 민속촌에서 촬영하겠다고 오시면 대환영이다.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많은데 자료 수집은 어떻게 하고 있나.
허영은 학예연구사: 민속촌의 역사가 워낙 길다 보니 꾸준히 쌓아온 충실한 자료들이 있다. 이걸 새로운 감각으로 바라보기 위해 다방면의 매체를 많이 접하려고 노력한다.
김은정 팀장: 팀 내에 오타쿠가 두 명 정도 있어서 한 번 파기 시작한 건 끝까지 매달린다. 그 중 한 명이 황선집 대리다.
황선집 대리: 오타쿠는 아니다. 취향을 존중해달라. (웃음) 예전부터 만화를 좋아하다 보니 유명한 사이트들을 많이 돌아다닌다. DC 인사이드나 SLR 클럽 같은. 아이템 창고는 댓글이다. 어처구니없는 것들이 많지만, 그 속에 빛나는 댓글들이 한두 개씩 있다. 그런 걸 캐치해놨다가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꺼낸다.
김은정 팀장: 기획을 할 때는 크게 두 가지 축을 생각한다. 기존의 전통 행사를 젊은 감각으로 리뉴얼하는 게 한 축, 현재 라이프 스타일과 맞아떨어지는 걸로 콘텐츠를 아예 새로 만드는 게 나머지 한 축. 그래서 지난봄에는 ‘추억의 그때, 그 놀이’라는 행사를 기획해서 달고나 만들기나 공기놀이 등을 준비하기도 했다. 변화된 기획 및 마케팅의 효과는 좀 있는 것 같나.
황선집 대리: 방문객 수는 아직 눈에 띌 정도로 늘진 않았다. 다만 이곳에서 30년 동안 주차장을 관리하고 계신 분이 말씀하시길, 최근 반년 동안 방문객의 세대층이 확 바뀌었다고 하시더라. 포털사이트에도 한국민속촌이라고 치면 연관검색어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확실히 예전과 달라진 걸 느낀다. 그런데 트위터나 공포체험의 인기에 비해서 위상이 확 올라간 건 아니고, 아직도 아시는 분들만 아시기 때문에 거만해져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민속은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의 생활 방식까지 아우르는 것”
마케팅팀이 신설된 올해부터 내놓은 기획들이 좋은 성과를 냈기 때문에 부담감도 클 것 같다.
허영은 학예연구사: 별생각 없다. 그냥 할 일을 열심히 할 뿐이다! (웃음)
황선집 대리: 맨땅에 헤딩하면서 계속 가는 거다. 행사를 1년에 12번 한다. 그 중 맞는 것 같다 싶은 건 살리고, 아니다 싶은 건 턴다. 2, 3년 안에는 한국민속촌이 새로운 모습으로 확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은정 팀장: 기획에 대한 스트레스는 존재한다. 다만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는 그런 무게를 덜고서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편이다. 문제는 어떤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현실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가, 경영진을 설득할 수 있는가, 고객들이 반응할 수 있는가다. 그걸 생각하는 단계는 머리가 매우 아프다. 우리는 항상 D-60 개념으로 사는데, D-30까지 뭐가 안 나오면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가 아주 짜파게티가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어떻게 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나오긴 나오더라.
한국민속촌에 입사 지원을 했을 때는 어떤 마음가짐들이었나.
허영은 학예연구사: 역사와 문화를 공부한 입장에서, 한국민속촌이 전통을 보존하고 있다는 게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이런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했고. 아마 다들 동기는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일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김은정 팀장: 너의 이유는 숭고하네. (웃음) 나는 민속촌이 전통공원 같다는 느낌이 있었다. 아름답고 고즈넉하고. 조선 시대로 산책을 떠나는 듯이 직장 생활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핑크빛 환상을 가지고 입사했다. 어떻게 보면 정체돼 있던 것들을 바꿀 수 있고, 뭘 해도 표가 날 것이기 때문에 나한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헤드헌터가 설명한 기억도 난다. 어쨌든 민속촌은 아름다운 곳이다.
황선집 대리: 나는 전통공연에 관심이 있었다. 때마침 그 자리가 비어서 입사했는데, 점점 하는 일들이 산으로 가고 있다. 정체성을 못 찾겠다. (웃음) 특이한 직장인만큼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은데.
김은정 팀장: 얼마 전 말이 죽었다는 컴플레인이 자꾸 들어왔다. 알고 보니 여기 있는 말 중에 누워있는 걸 좋아하는 애가 있었던 거다.
허영은 학예연구사: 민속촌에 닭도 있고 토끼도 있다 보니, 어떤 분은 집에서 키우던 닭을 박스에 넣어서 직접 기증하셨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우리도 사람인지라 가끔 이곳에 촬영하러 온 연예인들의 팬이 된다. 그럴 땐 관리자의 권한으로 그들을 보러 간다. (웃음)
김은정 팀장: 민속촌에서 MBC 을 촬영할 때는 관리자인 척 괜히 가서 김수현 씨를 보곤 했다. 야근도 더 하고.
민속촌에서 일해보니 장점은 무엇인 것 같나.
김은정 팀장: 매번 기획할 때마다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그럴 때 민속촌을 한 바퀴 돌면서 머리를 싹 비우고 오면 훨씬 나아진다.
황선집 대리: 우리 팀에서 갖가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알려지기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보람차다. 다만 야근은 기본이다. 6시에 퇴근하면 “조퇴하냐?”는 소리를 듣는다. 처음에는 엄청나게 힘들었는데, 이제는 야근하지 않으면 어색하다. 집에 갈 때 해가 있으면 ‘가도 되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사무실을 막 돌아볼 때도 있다. 물론 칼퇴근도 하지만 정말 드문 일이다.
지금도 새로운 시도의 일환으로 준비하고 있는 기획이 있나.
김은정 팀장: 사극드라마 축제를 계획하고 있다. 이것 때문에 얼마 전에는 MBC 에 출연하는 이준기 씨와 신민아 씨에게 핸드프린팅을 부탁하기도 했다.
허영은 학예연구사: MBC 에서 송승헌 씨가 사용했던 소품을 받아놓은 게 있는데, 그것도 사극드라마 축제에서 볼 수 있을 거다.
이런 노력에도, 아직 한국민속촌을 사극에 장소 협찬하는 곳쯤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마지막으로 한국민속촌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면.
김은정 팀장: 정답은 전통문화 테마파크다. 여기는 박제된 과거를 보여주는 박물관이 아니라 살아있는 전통문화를 보여주는 곳이다. 민속이라는 개념은 과거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현재의 생활 방식까지 아우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민속촌은 앞으로의 미래까지 예측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다.
허영은 학예연구사: 왜 세트장을 두고 민속촌에서 사극을 찍어야만 하는지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올 듯하다. 민속촌은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극 드라마 세트장들을 가까이서 보면 가짜 티가 많이 난다. 그런데 여기는 리얼이다. 찍어보면 그림이 다르다. 음….결국은 ‘한국민속촌은 리얼이다’라는 이야기밖에 안 되는 것 같은데?
김은정 팀장: 리얼이다? 얼라이브(alive)? (웃음)
글. 황효진 기자 seventeen@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장경진 three@
“트위터의 아씨 캐릭터는 트렌드와 딱 맞아떨어졌다”
최근 한국민속촌이 트위터 우수활용기업으로 뽑혔다. 센스가 남다르던데, 누가 계정을 운영하고 있나.
김은정 팀장: 돌아가면서 세 명 정도가 하고 있지만, 메인으로 하는 사람은 한 명으로 정해져 있다. ‘드립’에는 개인차가 있을 수밖에 없고, 시크하고 도도한 아씨라는 캐릭터도 유지해야 하므로 다른 사람이 대신하면 표가 난다. 계정을 메인으로 운영하는 사람이 누군지 밝히지 않는 게 우리의 신비주의 전략이다. 팔로워가 10만 명을 넘어가면 운영자를 밝히고 공개 이벤트를 할 생각이다.
황선집 대리: 아마 대국민축제가 될 것이다. (웃음)
사극 말투를 쓰는 아씨의 캐릭터는 어떻게 잡게 된 건가.
황선집 대리: 한국민속촌이 트위터 계정을 오픈한 건 지난해였는데 팔로워가 700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 RT 팔로우 이벤트를 해봤지만, 그런 방법을 사용하는 기업 계정이 너무 많다 보니 티가 나지 않았다. 방법을 바꿔보자, 해서 사극 말투를 쓰기 시작했는데 입소문이 나면서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팔로워가 늘었다.
허영은 학예연구사: 팔로워 분들이 만들어주신 부분도 있다. 민속촌 계정의 말투에 관심을 두는 분들이 많이 생기면서, 어떤 분이 연상되는 이미지를 그려서 보내주셨다. 트위터와 더불어 젊은 사람들이 한국민속촌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지난여름 실시했던 야간공포체험이었던 것 같다.
허영은 학예연구사: 대부분의 기획은 우리가 민속촌을 어떻게 느끼는가에서 출발하게 된다. 밤의 민속촌은 운치도 있지만, 느끼기에 따라서 좀 무서울 수도 있다. 현대적인 조명이 있는 게 아니거든.
김은정 팀장: 아이디어는 계속 있었다. 민속촌 중간에 문이 하나 있는데, 거기부터는 전통 경관 구역이라 전기도, 수도도 안 넣은 채 38년을 지켜왔다. 직원들끼리 늘 “야, 우리 공포체험 하면 정말 대박이겠다”라는 이야기를 계속했었는데, 이번에 신사업 팀에서 실행에 옮긴 거다.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좀 더 듣고 싶다.
김은정 팀장: 지난 6월 ‘전설의 고향’ 어트랙션이 오픈됐고, 이걸 한국민속촌 전체로 확장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들이 직접 참여해서 시뮬레이션을 계속했다. ‘더 무섭게, 더 무섭게’라고 업데이트를 하다 보니 연출이나 조명, 특수효과 등이 부분적으로 들어갔다. 대신 민속촌에는 아날로그적인 느낌이 있기 때문에 너무 화려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내년에는 야간공포체험도 좀 더 보강될 것 같은데 아직은 대외비다.
허영은 학예연구사: 나는 실제로 시험해보다가 울면서 포기하고 나왔다.
황선집 대리: 나는 최초 기획 당시 프로그램을 같이 만들었기 때문에 별로 안 무서웠다. 어디서 어떤 게 나오는지 다 알고 있으니까. 귀신도 내가 교육했기 때문에 나와서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안다. 그런데 가끔 애드리브를 치는 귀신들이 있어서 그럴 땐 좀 무서웠다.
“최근 반년 동안 방문객의 세대층이 확 바뀌었다”
사실 한국민속촌은 영화나 드라마 촬영장으로만 꾸준히 쓰여도 유지될 수 있지 않나.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은정 팀장: 물론 홍보나 마케팅을 전혀 하지 않아도 촬영팀은 꾸준히 온다. 그런데 최근 비슷한 민속마을이나 테마파크들이 많이 생기면서 경쟁이 심해졌다. 예전에는 원형을 보존하고 유지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면, 이제는 여러 사람과 전통문화를 공유하는 데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오로지 한국민속촌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로 콘텐츠를 채우고 홍보하자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롤모델로 삼을 만한 게 없어서 아이디어를 내기가 자유로운 한편, 방향성을 잡기는 어려울 것 같기도 한데.
김은정 팀장: 그렇다. 사실 우리는 에버랜드나 롯데월드를 경쟁상대로 생각하고 있다. 테마가 다를 뿐 ‘테마파크’라는 점에선 유사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민속촌은 박물관과 어뮤즈먼트파크의 중간이라고 볼 수 있는데, 너무 교육적이어도 재미가 없고 너무 놀이만 있어도 안 되기 때문에 타깃별로 나눠서 마케팅을 하는 편이다. 메인 타깃은 어린 자녀를 둔 4인 가족이고, 부수적으로 젊은 층도 함께 공략하고 있다. 야간공포체험이나 ‘500, 얼음땡’ 같은 행사는 후자를 위한 거라고 보면 된다.
‘500, 얼음땡’은 일종의 전통 ‘런닝맨’ 같은 기획이었는데, 처음에는 실행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있었을 것 같다.
황선집 대리: 그냥 던진 기획이었는데 진짜로 실현이 된 케이스다. 500명이 얼음땡을 하러 뛰어다니는 그림 자체가 재미있지 않나. 배경이 민속촌이니까 KBS 느낌이 날 것 같았다.
김은정 팀장: 처음엔 내가 “되겠어?”하는 눈으로 압박을 줬는데 트위터 팔로워들한테 물어보니 반응이 좋더라. 이게 SBS ‘런닝맨’을 모델로 접목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제작진 측에서 이걸 보고 민속촌에서 촬영하겠다고 오시면 대환영이다.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많은데 자료 수집은 어떻게 하고 있나.
허영은 학예연구사: 민속촌의 역사가 워낙 길다 보니 꾸준히 쌓아온 충실한 자료들이 있다. 이걸 새로운 감각으로 바라보기 위해 다방면의 매체를 많이 접하려고 노력한다.
김은정 팀장: 팀 내에 오타쿠가 두 명 정도 있어서 한 번 파기 시작한 건 끝까지 매달린다. 그 중 한 명이 황선집 대리다.
황선집 대리: 오타쿠는 아니다. 취향을 존중해달라. (웃음) 예전부터 만화를 좋아하다 보니 유명한 사이트들을 많이 돌아다닌다. DC 인사이드나 SLR 클럽 같은. 아이템 창고는 댓글이다. 어처구니없는 것들이 많지만, 그 속에 빛나는 댓글들이 한두 개씩 있다. 그런 걸 캐치해놨다가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꺼낸다.
김은정 팀장: 기획을 할 때는 크게 두 가지 축을 생각한다. 기존의 전통 행사를 젊은 감각으로 리뉴얼하는 게 한 축, 현재 라이프 스타일과 맞아떨어지는 걸로 콘텐츠를 아예 새로 만드는 게 나머지 한 축. 그래서 지난봄에는 ‘추억의 그때, 그 놀이’라는 행사를 기획해서 달고나 만들기나 공기놀이 등을 준비하기도 했다. 변화된 기획 및 마케팅의 효과는 좀 있는 것 같나.
황선집 대리: 방문객 수는 아직 눈에 띌 정도로 늘진 않았다. 다만 이곳에서 30년 동안 주차장을 관리하고 계신 분이 말씀하시길, 최근 반년 동안 방문객의 세대층이 확 바뀌었다고 하시더라. 포털사이트에도 한국민속촌이라고 치면 연관검색어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확실히 예전과 달라진 걸 느낀다. 그런데 트위터나 공포체험의 인기에 비해서 위상이 확 올라간 건 아니고, 아직도 아시는 분들만 아시기 때문에 거만해져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민속은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의 생활 방식까지 아우르는 것”
마케팅팀이 신설된 올해부터 내놓은 기획들이 좋은 성과를 냈기 때문에 부담감도 클 것 같다.
허영은 학예연구사: 별생각 없다. 그냥 할 일을 열심히 할 뿐이다! (웃음)
황선집 대리: 맨땅에 헤딩하면서 계속 가는 거다. 행사를 1년에 12번 한다. 그 중 맞는 것 같다 싶은 건 살리고, 아니다 싶은 건 턴다. 2, 3년 안에는 한국민속촌이 새로운 모습으로 확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은정 팀장: 기획에 대한 스트레스는 존재한다. 다만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는 그런 무게를 덜고서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편이다. 문제는 어떤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현실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가, 경영진을 설득할 수 있는가, 고객들이 반응할 수 있는가다. 그걸 생각하는 단계는 머리가 매우 아프다. 우리는 항상 D-60 개념으로 사는데, D-30까지 뭐가 안 나오면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가 아주 짜파게티가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어떻게 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나오긴 나오더라.
한국민속촌에 입사 지원을 했을 때는 어떤 마음가짐들이었나.
허영은 학예연구사: 역사와 문화를 공부한 입장에서, 한국민속촌이 전통을 보존하고 있다는 게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이런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했고. 아마 다들 동기는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일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김은정 팀장: 너의 이유는 숭고하네. (웃음) 나는 민속촌이 전통공원 같다는 느낌이 있었다. 아름답고 고즈넉하고. 조선 시대로 산책을 떠나는 듯이 직장 생활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핑크빛 환상을 가지고 입사했다. 어떻게 보면 정체돼 있던 것들을 바꿀 수 있고, 뭘 해도 표가 날 것이기 때문에 나한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헤드헌터가 설명한 기억도 난다. 어쨌든 민속촌은 아름다운 곳이다.
황선집 대리: 나는 전통공연에 관심이 있었다. 때마침 그 자리가 비어서 입사했는데, 점점 하는 일들이 산으로 가고 있다. 정체성을 못 찾겠다. (웃음) 특이한 직장인만큼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은데.
김은정 팀장: 얼마 전 말이 죽었다는 컴플레인이 자꾸 들어왔다. 알고 보니 여기 있는 말 중에 누워있는 걸 좋아하는 애가 있었던 거다.
허영은 학예연구사: 민속촌에 닭도 있고 토끼도 있다 보니, 어떤 분은 집에서 키우던 닭을 박스에 넣어서 직접 기증하셨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우리도 사람인지라 가끔 이곳에 촬영하러 온 연예인들의 팬이 된다. 그럴 땐 관리자의 권한으로 그들을 보러 간다. (웃음)
김은정 팀장: 민속촌에서 MBC 을 촬영할 때는 관리자인 척 괜히 가서 김수현 씨를 보곤 했다. 야근도 더 하고.
민속촌에서 일해보니 장점은 무엇인 것 같나.
김은정 팀장: 매번 기획할 때마다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그럴 때 민속촌을 한 바퀴 돌면서 머리를 싹 비우고 오면 훨씬 나아진다.
황선집 대리: 우리 팀에서 갖가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알려지기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보람차다. 다만 야근은 기본이다. 6시에 퇴근하면 “조퇴하냐?”는 소리를 듣는다. 처음에는 엄청나게 힘들었는데, 이제는 야근하지 않으면 어색하다. 집에 갈 때 해가 있으면 ‘가도 되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사무실을 막 돌아볼 때도 있다. 물론 칼퇴근도 하지만 정말 드문 일이다.
지금도 새로운 시도의 일환으로 준비하고 있는 기획이 있나.
김은정 팀장: 사극드라마 축제를 계획하고 있다. 이것 때문에 얼마 전에는 MBC 에 출연하는 이준기 씨와 신민아 씨에게 핸드프린팅을 부탁하기도 했다.
허영은 학예연구사: MBC 에서 송승헌 씨가 사용했던 소품을 받아놓은 게 있는데, 그것도 사극드라마 축제에서 볼 수 있을 거다.
이런 노력에도, 아직 한국민속촌을 사극에 장소 협찬하는 곳쯤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마지막으로 한국민속촌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면.
김은정 팀장: 정답은 전통문화 테마파크다. 여기는 박제된 과거를 보여주는 박물관이 아니라 살아있는 전통문화를 보여주는 곳이다. 민속이라는 개념은 과거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현재의 생활 방식까지 아우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민속촌은 앞으로의 미래까지 예측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다.
허영은 학예연구사: 왜 세트장을 두고 민속촌에서 사극을 찍어야만 하는지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올 듯하다. 민속촌은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극 드라마 세트장들을 가까이서 보면 가짜 티가 많이 난다. 그런데 여기는 리얼이다. 찍어보면 그림이 다르다. 음….결국은 ‘한국민속촌은 리얼이다’라는 이야기밖에 안 되는 것 같은데?
김은정 팀장: 리얼이다? 얼라이브(alive)? (웃음)
글. 황효진 기자 seventeen@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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