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물고기를 낚는 단 하나의 장면 뒤엔 수 천 년 동안 물고기를 저장하고 활용해 온 인류의 지혜와 역사가 있었다. 8월 18일부터 3주에 걸쳐 방송된 KBS 는 500분 동안 이를 유려하고 감각적으로 보여줬다. KBS 다큐멘터리 사상 최대 제작비 20억 원을 실감하게 하는 타임 슬라이스, 수중 고속 촬영 등으로 담긴 생생한 영상은 눈과 귀를 즐겁게 했고, 20개가 넘는 나라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방대하게 엮은 이야기는 흥미로움 자체였다. 다큐멘터리의 퀄리티가 ‘무엇’을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면, 는 보기 드물게 두 가지 모두를 훌륭하게 구현한 작품인 셈이다. “인류가 물고기를 만난 건 축복이었다”는 한 문장을 전하기 위해 2년 가까이 물고기와 인간의 역사를 누빈 송웅달, 이지운, 이기연 PD를 만났다. 그들이 풀어놓은 이야기 또한 만큼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만 2년에 걸쳐 만든 가 호평을 받으며 끝났다. 소감이 어떤가.
송웅달 PD: 세 명이 같이 맥주를 마시면서 방송을 보고 있었는데 SNS에 실시간으로 좋은 반응이 올라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KBS에서도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준 거라 부담이 되기도 했는데 시청률도 잘 나와서 기쁘다.
이기연 PD: 사실 하루 전 날 KBS 시청률을 시청률로 잘못 봐서 내가 난리 법석을 떨었다. 한 24~25% 나온 줄 알았거든. (웃음) 본의 아니게 설레발을 친 게 돼 정말 불안했다. 다음 날 시청률 확인할 때까지 잠도 못 잤고. 시청률 나온 후엔 웅달 형부터 작가, CP한테 모두 문자를 보냈다. ‘전국 기준 13.8%!’ 이렇게. 물고기를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만든 이유는 뭔가.
송웅달 PD: 고향이 내륙 지방이라 어릴 때 먹었던 간고등어 정도가 본 물고기의 다였다. 그러다 을 찍으며 막 잡은 물고기를 봤는데 소금에 절인 고등어와는 너무 다르더라. 물고기가 정말 아름다운 생명체란 생각을 그때 했다. 그래서 물고기가 식탁에 올라오기까지 여러 이야기가 있을 거란 생각을 갖고 살았을 때 회사에서 기획안을 공모했다. 회사에선 의미 있고 세계에서도 통할 수 있는 소재를 원했고 극지방 소수를 빼면 모든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아먹으니까 이거다 싶었다. 할 때 시청률이 가장 잘 나오는 것도 물고기 잡는 장면이었고.
“물고기가 한류스타보다 모시기 더 힘들었다”
총 500분 분량인데 세 명이 촬영 분담은 어떻게 했나.
송웅달 PD: 주제가 ‘인간과 물고기’라 물고기 없이 인간만 찍기 힘드니까 모든 일정을 물고기에게 맞췄다. 근데 물고기가 한류스타보다 모시기 더 힘들더라. 보통 다 비슷한 시기에 산란하러 육지 쪽으로 오기 때문에 일정이 겹쳐서 동시 다발로 촬영을 해야 했다. PD의 기호, 취향 불문하고 처음 답사 가던 지역 위주로 나눴는데 이지운 PD가 중국과 동남아시아, 이기연 PD가 아프리카, 내가 유럽과 캐나다 등을 갔다.
이지운 PD: (송웅달 PD 가리키며) 물가 비싼 곳 주로 가시고 우린 좀 험한 데 갔다.
송웅달 PD: 난 늙었으니까. (웃음)
이기연 PD: 난 맡고 있을 때 투입됐는데 갑자기 아프리카 말리로 가게 됐다.
‘물고기 스타’를 촬영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타임 슬라이스 기법이나 수중 초고속 촬영 등으로 물고기를 생생하게 찍은 영상이 화제였다. 물고기를 촬영할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나.
송웅달 PD: 공연을 보러 가면 그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공간감이 있지 않나. 실제로 물고기 잡는 현장에서도 잡는 사람의 흥분, 놀라는 물고기의 움직임 등 만감이 교차하는 걸 느낄 수 있다. 어부들은 물고기 한 마리 잡기 위해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하고 반대로 물고기는 말은 못하지만 동료 참치가 작살에 찔리고 피투성이가 되는 걸 보고 고통을 느낄 거고. 짧은 시간 동안 그려지는 그런 현장의 생생한 감정을 시청자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기존 촬영 방식과는 다른 게 필요할 것 같아 수중 초고속 촬영, 여러 대의 스틸 카메라로 다양한 각도에서 동시에 사물을 찍고 편집해서 붙이는 타임 슬라이스 기법 등을 이용한 거다. 그런 촬영 기법은 보통 교양 프로그램 제작할 때는 쓰기 어려운 거라 활용하는 입장에서도 색달랐을 것 같다.
이지운 PD: 타임 슬라이스 기법을 적용하자고 결정이 났을 땐 개념과 원리만 알고 있는 상태였고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영상제작부에서 장비를 만들고 나도 카메라를 구하면서 거의 무형 문화재가 될 정도로 알게 됐다. 카메라 60대, 거치대, 삼각대까지 하면 거의 200kg 정도의 짐이 생겨 무겁고 너무 많은 카메라를 들고 가니까 통관도 문제가 생겨 힘들기도 했다. 누가 봐도 밀수꾼이거든. 그렇게 세 시간 설치하고 한 시간 찍고 두 시간 해체해야 돼 힘들었지만 영상이 나오니까 기분 좋더라.
이기연 PD: 아프리카에서 항공 촬영을 하고 싶었는데 헬기 자체를 구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헬기처럼 생긴 헬리캠을 갖고 가는데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해프닝도 있었다. 사진으로 장비를 설명했는데도 아프리카 사람들을 이해시키기가 약간 어려웠다. 관계자들이 “이게 뭐냐, 혹시 스파이 아니냐” 물어보더라.
20개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촬영하는데도 여러 촬영 기법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걸 보고 프리 프로덕션이 치밀하게 진행됐다는 생각을 했다.
송웅달 PD: 관습적인 물고기 촬영 작법을 피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려면 결국 새로운 촬영 기법을 활용해야 한다. 결과를 바꾸려면 과정을 바꿔야 하지 않나. 근데 그 활용을 하기 위해선 사전 답사가 중요하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해도 파도는 얼마나 치는지, 이 장면을 한 시간 만에 찍을 수 있는 건지 아닌지를 방 안에서 알 수 없다. 비용은 들지만 답사를 하는 게 결국 전체적인 손실을 줄이는 거다.
이기연 PD: 아프리카의 경우는 위험하거나 특수한 상황인 나라들이 많아 답사를 하지 않으면 치명적이다. 말리는 알 카에다 북부 거점지역인데 현지에 있을 때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되기도 했고. 이런 위험 상황이 있고 외교부와 세네갈 대사관 사이에서 교통정리도 해야 해서 답사는 정말 필요했다.
송웅달 PD: 하지만 모든 곳을 갈 순 없어 아쉬움이 많았다. 촬영 지역을 선정하고 각 지역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정할 때 답사를 좀 더 많이, 일찍 갔다 오는 게 필요하다. 선진 제작 시스템에서는 이런 게 당연하다고 생각되는데 우리 현실은 아직 그렇진 않다.
제작기간이나 제작비, 인력 등의 문제 때문에 그런 시스템을 갖추기 힘든 건가.
이지운 PD: 힘들다기보다 언제나 아쉽다. 1년에 한 번 물고기 잡는 경우가 많은데 제대로 답사하려면 그 물고기가 잡히는 걸 봐야 한다. 그래야 카메라는 몇 대가 있는 게 좋을지 무슨 장비가 필요한 지 확실히 잡히는데 그걸 보고 하면 실제 촬영은 그 다음 해에 해야 하는 거다. “복잡한 이야기를 어렵게 하지 말자는 큰 원칙이 있었다”
회별 구성이나 스토리텔링 자체도 흥미로웠다. 1,2부에서 ‘10만년의 여정’, ‘위대한 비린내’로 거시적인 이야기를 하고 3,4부 ‘스시 오디세이’, ‘금요일의 물고기’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한 게 재밌었다.
송웅달 PD: 아무리 영상이 좋아도 이야기가 없으면 사람들이 보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이야기를 꼭 넣고 싶었다. 그래서 1부는 프롤로그, 2부는 먹을거리 중심으로 가고 3,4부는 구체적인 이야기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지운 PD: 기획 단계에서 아시아 문화권에 집중하고 싶었고 그러다보니 4부는 그와 대비되는 유럽 문화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취재를 하면서 살을 붙이고 버릴 건 버린 거다.
특히 3,4부에서 물고기를 각각 스시와 기독교 역사와 엮었다는 게 신선했는데 어떻게 나온 아이템인가.
송웅달 PD: 처음 기획할 때 3,4부는 막연한 내용이었는데 조사를 할수록 숨어있는 이야기가 너무 재밌더라. 지금은 깨끗해 보이는 스시가 냄새나고 썩어가는 물고기에서 시작된 게 흥미로웠고 서구 유럽 문화의 중심인 신권의 역사가 물고기와 뗄 수 없는 관계고 이름 없는 어부들이 신대륙에 먼저 갔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 이거 뭔가 되겠다!’ 싶었다.
그 이야기가 흥미롭지만 어려울 수도 있지 않나. TV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이야기를 풀기 위한 고민을 했을 것 같다.
송웅달 PD: 복잡한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그걸 고상한 척 어렵게 하지 말자는 큰 원칙이 있었다. 음식과 역사 이야기에 대해 대중들은 얼마나 알고 싶어 하며 전문가들의 연구는 얼마나 되어 있는지를 고려해서 전반적인 수준으로 만들었다.
이지운 PD: 우리로서는 정말 찍은 거 다 보여주고 싶었지만 큰 틀에서 봐야하니까 최대한 직관적으로 풀었다. 애니메이션이나 음악, 배우 김석훈의 내레이션도 작품을 쉽게 보는 데에 일조했다.
송웅달 PD: 음악은 역사를 훑는 작품이니까 서사성이 있는 게 필요했고 내레이션은 영화 에서 독백하는 한석규 씨의 목소리 같은 느낌을 원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CBS 라디오를 듣는데 김석훈 씨 목소리가 그런 느낌이어서 제안했다.
이지운 PD: 김석훈 씨는 전문 성우 못지않은 발성과 발음, 리딩 능력을 갖고 있었고 아무래도 배우다 보니 이야기 흐름을 항상 먼저 확인했다. 처음엔 서로 조율하면서 건조하게 갔는데 나중엔 본인이 극의 흐름을 완전히 이해하고 본인 리듬대로 녹음을 했다.
이기연 PD: 음악은 원래 송웅달 PD가 엔니오 모리꼬네와 작업하고 싶어 했다. 작년부터 세계적인 거장을 섭외하자고 해서 다 연락을 해봤고 영화 음악을 맡은 이와시로 타로가 적격이라 생각해 제안했다. 한스 짐머에게도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지만 개런티 문제 등으로 안 됐다.
“세계적인 방송사와 경쟁하기 위해 개선과 투자가 필요하다”
사실 4부까지 방송이 됐을 때 라오스의 한 어부가 줄을 잡고 급류를 건너는 장면, 말리의 물고기 잡이 장면 등이 BBC 과 비슷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송웅달 PD: 의 로케이션이 80군데 정도 되는데 우리가 한창 일정을 짤 때 보니 그 중 네 군데가 겹치더라. 두 가지 아이템은 눈물을 머금고 버렸지만 라오스와 말리의 경우엔 뿐 아니라 다른 작품에서도 많이 나온 곳이지만 너무 매력적이라 포기할 수 없었다. 라오스 답사를 갔더니 급류를 건너는 사람은 쌈냥이라는 사람뿐이고 그 사람을 찍을 각도도 그 곳밖에 없었고. 다큐멘터리에서 촬영 장소가 겹치는 건 비난받을 일이 아니지만 후발주자 입장에서 부담이 된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KBS만이 가진 노하우로 더 잘 찍고 싶었고 그만큼 노력했다.
를 만들고 난 후 물고기가 다르게 보이지는 않나.
이지운 PD: 2년 동안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중한 대상이라 애정이 생길 줄 알았는데 여전히 냉정하다. 다만 물고기가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식탁위에 올라온 것인지를 알게 됐으니까 이놈들을 가리지 않고 깨끗하게 다 먹어주는 게 얘들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든다. (웃음)
이기연 PD: 참치 해체하는 걸 찍는데 큼직한 물고기들이 피를 많이 흘리는 걸 보고 그 땐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참치가 처절하게 절규하는 듯한 장면도 있었다. 일상으로 돌아오니까 예전과 크게 다르진 않지만 좀 더 흥미롭게 보게 된 건 있다.
송웅달 PD: 프로그램 서두에 나오듯 인간이 물고기를 만난 건 큰 축복이다. 조물주가 있다면 인간을 위해서 물고기에게 다산의 복을 주고 소리를 지를 수 없는 벌을 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물고기가 만약 물고기가 개, 돼지처럼 소리를 질렀다면 지금처럼은 많이 못 잡을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물고기에 대해 미안하고 고맙고 경이로운 마음이 든다. 이번 작품으로 다큐멘터리 시청자의 눈이 또 한 번 높아졌을 것 같다. 앞으로 다큐멘터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어떤 게 필요할까.
이지운 PD: 우리는 보통 프로그램에 비해 답사도 많이 가고 준비기간도 있었지만 아직도 많은 제약이 있다. 세계적인 방송사와 1대 1로 경쟁하기 위해선 개선과 투자가 필요하다. 비용과 시간, 인력을 투입했더니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걸 위에서 결정하는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또 에 쓰인 이와시로 타로의 곡 권리를 KBS가 갖고 있다는 건 중요하다. 이전엔 저작권과 판권의 일부를 포기하면서까지 제작비를 아끼려고만 했다. 이번에 음악 판권을 모두 우리가 가지고 가겠다고 할 때 주변에서 많이 말리기도 했지만 앞으로 제작 방향이 이렇게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계획하거나 다루고 싶은 작품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기연 PD: 일단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 (웃음)
송웅달 PD: 앞으로 등등 슈퍼시리즈로 다 하면 된다. (웃음) 한 5년 정도만 기다리면 그 땐 후배들이 주도적으로 나서고 큰일을 낼 작품을 만들 거다.
글, 인터뷰. 한여울 기자 sixteen@
인터뷰. 이경진 인턴기자 romm@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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