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주제가 될 수 있다. 출판의 단계를 생략한 채 대중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웹툰은 만화계에 보다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가능케 했다. 특히 작가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일상의 소재들을 만화로 엮은 일기에 가까운 작품들은 웹툰이라는 형태가 아니고서는 쉽사리 부흥하기 어려운 종류의 것들이었다.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육아 만화나 기간 한정의 긴장을 가져갈 수 있는 신혼 만화가 아니라 보다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결혼 생활을 보여주는 일군의 작품들은 특히 웹툰이기에 가능한 시도다. 문하생의 시스템에서 전혀 자유로운, 업계에 경력이 전혀 없는 삼십대 주부가 특별할 것 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그려놓아도 웹툰은 이들에게 쉽게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그 덕분에 독자들은 지극히 보편적인 동시에 너무나 사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결혼 웹툰이라는 장르를 만나게 되었다.
험난한 현대사회의 미담, 결혼 웹툰
의 난다는 남편이 애지중지하는 게임기를 청소하는 법을 에피소드로 그렸다. 뼛속까지 주부임을 자신하는 의 작가 마조의 가장 큰 고민은 식단과 전기세다. 드라마에서라면 고된 시집살이가 펼쳐지고, 영화에서라면 불치의 병이 사랑의 장애물로 등장하겠지만 웹툰 속의 결혼은 너무나 소소하고 평범하다. 판타지가 거둬진 맨 얼굴 같은 이들의 결혼 생활은 밥을 먹고, 청소를 하고, 때로는 가계의 문제로 고민을 하는 우리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 블로그를 통해 과시하는 평균의 삶과 비교할 때 이들의 생활은 때때로 고달프고 측은하기까지 하다. 의 주인공들은 미국에 보금자리를 꾸렸지만 미국사람 누구나 가진 것 같은 수영장이 딸린 주택에 살지 못하고, 의 두 사람은 유명한 만화가가 되었지만 여전히 작업실로 사용하는 작은 방에서 이불을 펴고 잠을 잔다. 삶이 검박한 만큼 만화 역시 검소하고 소박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결혼은 무대가 아니라 이야기 그 자체이며, 독자들은 웹툰이라는 필터를 통해 작가들의 실제 삶을 지켜보고 있다는 동시적인 체험을 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아닌 삶을 따라가면서 독자들은 작가의 이웃으로서 교감의 영역을 넓힌다.
하지만 ‘진짜’라고 믿는 이들의 결혼생활이 독자들에게 소비되는 방식이야말로 가장 섬세하게 다듬어진 판타지다. 혼수와 집 마련을 수치로 계산한 언론은 연일 결혼을 어려운 미션으로 묘사하고, 인터넷에는 온통 시댁과의 갈등, 남편의 배신, 아내의 이기심으로 점철된 경험담이 범람한다. 나의 결혼은 끊임없이 비교 당하고 타인의 결혼은 계속해서 의심 받기마련이지만, 웹툰 속의 결혼에는 현실에 없는 낙천주의가 전제되어 있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올려달라고 하거나, 갑작스러운 질병이나 실직에 맞닥뜨려도 만화 속의 인물들은 침착하고 긍정적으로 현실의 고난을 해결해 나간다. 그리고 그들은 부동산이, 주식이, 명품이 없으면 불행한 인생이라고 주입하는 세상의 잣대에서 비켜나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과 만족을 성취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확인 되는 것은 가난한 남편, 순진한 아내라 할지라도 타인의 응원을 받을 수 있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남들을 격려 할 수 있다는 지극히 클래식한 미담이다. 결국 이들의 작품이 독자들에게 ‘결혼 장려 만화’라고 불리는 것은 이들이 결혼의 좋은 점만을 나열하기 때문이 아니라 “결혼해도 괜찮다”고 안심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주기 때문인 것이다.
함께 지켜나가는 ‘생활의 방법’
그래서 사랑은, 오히려 결혼 웹툰의 지배적인 정서가 아니다. 같은 직장에서 만난 마조와 새디는 서로의 일을 이해하며 다시 함께 일터를 꾸렸고, 함께 만화를 그리며 서로의 슬럼프를 도와준 네온비와 카라멜은 동료로서 상대방을 존중한다. 학창시절 처음 만난 난다와 한군은 각자의 습관과 취향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으며, 함께 미국이라는 낯선 땅으로 이주한 딩스와 뚱스는 서로를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남편과 아내는 애정을 맹세한 대상인 동시에, 현실의 난관을 함께 해쳐나가는 동지다. 이들의 만화가 결혼 유무와 연령대를 뛰어넘어 사랑을 받는 것은 그래서다. 험난한 현실에서 가장 험악한 것이 결혼이요 출산이라고 가르치는 세상에서 결혼 웹툰들은 계산된 시뮬레이션이 아닌 진짜 생활의 방법을 기록한다. 그리고 그 생활을 함께 지켜나가는 사람의 존재로 현실의 험상궂은 모서리들이 조금은 둥글고 부드럽게 무뎌졌다고 말한다. 너무 오래되어 이제는 믿는 사람이 남아 있지 않는 그 진실이야말로 독자들이 계속해서 보고 싶은 장면이다.
글. 윤희성 nine@
편집. 이지혜 seven@
험난한 현대사회의 미담, 결혼 웹툰
의 난다는 남편이 애지중지하는 게임기를 청소하는 법을 에피소드로 그렸다. 뼛속까지 주부임을 자신하는 의 작가 마조의 가장 큰 고민은 식단과 전기세다. 드라마에서라면 고된 시집살이가 펼쳐지고, 영화에서라면 불치의 병이 사랑의 장애물로 등장하겠지만 웹툰 속의 결혼은 너무나 소소하고 평범하다. 판타지가 거둬진 맨 얼굴 같은 이들의 결혼 생활은 밥을 먹고, 청소를 하고, 때로는 가계의 문제로 고민을 하는 우리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 블로그를 통해 과시하는 평균의 삶과 비교할 때 이들의 생활은 때때로 고달프고 측은하기까지 하다. 의 주인공들은 미국에 보금자리를 꾸렸지만 미국사람 누구나 가진 것 같은 수영장이 딸린 주택에 살지 못하고, 의 두 사람은 유명한 만화가가 되었지만 여전히 작업실로 사용하는 작은 방에서 이불을 펴고 잠을 잔다. 삶이 검박한 만큼 만화 역시 검소하고 소박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결혼은 무대가 아니라 이야기 그 자체이며, 독자들은 웹툰이라는 필터를 통해 작가들의 실제 삶을 지켜보고 있다는 동시적인 체험을 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아닌 삶을 따라가면서 독자들은 작가의 이웃으로서 교감의 영역을 넓힌다.
하지만 ‘진짜’라고 믿는 이들의 결혼생활이 독자들에게 소비되는 방식이야말로 가장 섬세하게 다듬어진 판타지다. 혼수와 집 마련을 수치로 계산한 언론은 연일 결혼을 어려운 미션으로 묘사하고, 인터넷에는 온통 시댁과의 갈등, 남편의 배신, 아내의 이기심으로 점철된 경험담이 범람한다. 나의 결혼은 끊임없이 비교 당하고 타인의 결혼은 계속해서 의심 받기마련이지만, 웹툰 속의 결혼에는 현실에 없는 낙천주의가 전제되어 있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올려달라고 하거나, 갑작스러운 질병이나 실직에 맞닥뜨려도 만화 속의 인물들은 침착하고 긍정적으로 현실의 고난을 해결해 나간다. 그리고 그들은 부동산이, 주식이, 명품이 없으면 불행한 인생이라고 주입하는 세상의 잣대에서 비켜나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과 만족을 성취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확인 되는 것은 가난한 남편, 순진한 아내라 할지라도 타인의 응원을 받을 수 있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남들을 격려 할 수 있다는 지극히 클래식한 미담이다. 결국 이들의 작품이 독자들에게 ‘결혼 장려 만화’라고 불리는 것은 이들이 결혼의 좋은 점만을 나열하기 때문이 아니라 “결혼해도 괜찮다”고 안심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주기 때문인 것이다.
함께 지켜나가는 ‘생활의 방법’
그래서 사랑은, 오히려 결혼 웹툰의 지배적인 정서가 아니다. 같은 직장에서 만난 마조와 새디는 서로의 일을 이해하며 다시 함께 일터를 꾸렸고, 함께 만화를 그리며 서로의 슬럼프를 도와준 네온비와 카라멜은 동료로서 상대방을 존중한다. 학창시절 처음 만난 난다와 한군은 각자의 습관과 취향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으며, 함께 미국이라는 낯선 땅으로 이주한 딩스와 뚱스는 서로를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남편과 아내는 애정을 맹세한 대상인 동시에, 현실의 난관을 함께 해쳐나가는 동지다. 이들의 만화가 결혼 유무와 연령대를 뛰어넘어 사랑을 받는 것은 그래서다. 험난한 현실에서 가장 험악한 것이 결혼이요 출산이라고 가르치는 세상에서 결혼 웹툰들은 계산된 시뮬레이션이 아닌 진짜 생활의 방법을 기록한다. 그리고 그 생활을 함께 지켜나가는 사람의 존재로 현실의 험상궂은 모서리들이 조금은 둥글고 부드럽게 무뎌졌다고 말한다. 너무 오래되어 이제는 믿는 사람이 남아 있지 않는 그 진실이야말로 독자들이 계속해서 보고 싶은 장면이다.
글. 윤희성 nine@
편집. 이지혜 sev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