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친지와 친구들의 축복 속에 그림 같은 결혼식을 올린 민수(김동윤)와 효진(류현경), 하지만 신부에게는 오래 사귄 애인 서영(정애연)이 있고, 신랑은 게이 바에서 만난 석(송용진)에게 첫눈에 반한다. 위장 결혼으로 엮인 게이와 레즈비언 커플, 하지만 영화 (이하 )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는 이야기고 그들에겐 아직 한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이 남아 있다.
“광우병이 더 더럽냐, 동성애가 더 더럽냐”라는 종교인의 발언이 버젓이 TV 토론 프로그램에 등장하고 “동성애를 미화”한다는 이유로 종교단체들이 팝가수 레이디 가가의 내한공연을 반대하는 나라에서 이 용감하다 못해 무모한 설정을 영화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은 이는 김조광수 감독이다. 민주화 투쟁과 학생운동의 선봉에 섰던 청년기를 지나 1998년 창립한 청년필름에 몸담은 뒤 , 을 비롯해 지난해 까지 다양한 한국영화의 제작자와 프로듀서로 활동해 온 그는 2006년 커밍아웃 후 단편 로 직접 연출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첫 번째 장편 영화인 에 대해 “청소년들이 극장에 와서 볼 수 있는 퀴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사실 , , , 등 노래와 춤이 꼭 함께 등장하는 김조광수 감독의 영화를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그의 뮤지컬에 대한 애정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뮤지컬 영화를 좋아했어요. 배우들이 사실적인 연기를 하다가 노래하고 춤추는 판타지로 넘어가는 순간 나도 따라서 판타지 세계로 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아마도 동성애자로 사는 현실을 떠나고 싶었기 때문 아닐까 싶어요.” 하지만 최근 출간한 책 는 그가 많은 고민과 갈등 끝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게 된 과정이 쓰여 있다. 그래서 사랑하는 애인과의 결혼을 꿈꾸는 것은 물론 쿠바로 신혼여행을 떠나겠다는 계획이나 LGBT 센터를 건립하겠다는 목표까지 현재의 삶을 누구보다 충실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김조광수 감독이 ‘내가 사랑하는 뮤지컬 영화 OST’를 추천했다.
1. Meryl Streep ‘The Winner Takes It All’이 수록된
“음악은 타임 슬립 같은 기능을 하잖아요. 인상적인 음악을 다시 듣게 되었을 때 머릿속에서는 그 음악을 처음 들었던 그 시절로 확 이동하는 것처럼. 제가 청소년 시기일 때는 아바의 최전성기였어요. 그래서 OST를 들으면 영화의 스토리나 풍광보다도 제가 7, 80년대 짝사랑했던 남자애들 같은, 그 시절 추억이 떠올라요. (웃음) 정말 신나면서도 흡인력 있는 노래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곡은 ‘The Winner Takes It All’이에요. 2008년 발표된 영화에서 도나 역 메릴 스트립의 보컬과 참 잘 어울렸죠.”
2. Irwin Kostal의
“제가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처음 접하고 좋아하게 된 계기가 이었어요. 따뜻하면서도 재미있고, 아이들도 좋아할 수 있는 뮤지컬 영화잖아요. ‘Do-Re-Mi’나 ‘So Long, Farewell’처럼 단순하면서도 밝은 노래들이 주는 느낌이 좋았어요. 제일 좋아하는 곡은 영화 속 비 오고 천둥 치는 밤에 마리아(줄리 앤드루스)가 트랩가의 아이들을 모아놓고 불러주는 ‘My Favorite Things’에요. 이 노래를 너무 좋아해서 우리 회사 청년필름이 제작한 에 피아노 연주곡으로 넣기도 했어요.”
3. Ewan McGregor, Nicole Kidman ‘Come What May’가 수록된
“만약에 언젠가 뮤지컬 영화를 만든다면 같은 영화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사실 새로운 곡을 잘 만들어서 영화를 제작하기에는 여러모로 여건이 좋지 않은데, 같은 경우는 옛날 히트곡들을 모아서 만든 작품이잖아요. 그런 방식이 가능하다면 우리나라에서도 뮤지컬 영화가 좀 대중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역시 모든 노래가 좋지만 그중에서도 뮤지컬 가수 샤틴 역을 맡았던 니콜 키드먼과 시인 크리스티앙 역 이완 맥그리거가 듀오로 부른 ‘Come What May’를 가장 좋아해요. 두 배우에게 너무 잘 어울리거든요.”
4. John Travolta ‘Summer Nights’가 수록된
“는 로맨틱 뮤지컬의 최고봉이 아닐까 생각해요. 1950년대 미국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이고 70년대 말에 개봉한 영화인데도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매력은 여전한 것 같아요. 당시 청춘스타였던 존 트라볼타와 올리비아 뉴튼 존의 앙상블이 돋보이는 주옥같은 노래들 역시 지금도 광고에 쓰일 만큼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잖아요. 특히 요즘 같은 여름에 잘 어울리는 ‘Summer Nights’나 ‘You`re The One That I Want’를 듣고 있으면 흥이 절로 나고 로맨틱한 세계로 빠져드는 느낌이에요. 혹시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일단 들어 보세요. 전주만 들어도 ‘아!’하고 익숙하게 느끼실 거예요.”
5. The Wizard Of OZ의
“는 주디 갈랜드의 ‘Over the Rainbow’만으로도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뮤지컬의 고전이죠. ‘무지개 너머 저 어딘가에 얘기로만 들었던 아름다운 나라가 있고 그 곳은 마음으로 꿈꾸면 정말로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아름답고 희망적인 가사에 게이들이 흠뻑 빠져들었던 건 당연한 결과였을 거예요. 그리고 주디 갈랜드는 이후 게이들의 아이콘으로 오랫동안 추앙받기도 했어요. 사실 저 역시 ‘Over the Rainbow’를 잘 부르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음정이 워낙 높은 곡이다 보니 매번 실패하는 아픔이 있는 노래이기도 해요. (웃음)”
김조광수 감독은 최근 발매된 OST에서 귀여운 게이 티나 역 박정표가 부른 ‘종로의 기적’을 꼭 들어보라는 귀띔도 덧붙였다. “자고픈 남자는 많지만 손잡고픈 남잔 너뿐이야 / 술 마실 남자는 많지만 입 맞춰 노래하고픈 건 너뿐”이라니, 절로 미소가 떠오르는 노랫말이 아닐 수 없다. 또, 개봉 이후 하루도 쉬지 않고 무대 인사나 관객과의 대화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조광수 감독은 “앞으로도 지치지 않고 관객들을 만날 계획”이라고 말한다. 이 그동안 가 갖고 있던 한국 퀴어 영화 흥행기록인 4만 7천 명을 넘어선 것은 물론, 청소년들과 중장년층 등 관객들의 연령대가 다양해 퀴어 영화의 관객층을 넓히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는 면에서 뿌듯한 마음도 크다. 하지만 “더 많은 관객들과 함께 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그러려면 더 열심히 뛰어야겠죠”라고 다짐하는 그에게서 멈추거나 지쳐 쉬어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고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 한 이 사십 대의 사랑스런 남자는 영원한 청년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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