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오스트리아든, 21세기 대한민국이든 여자의 인생은 고달프기만 하다. 전통과 신문물이 혼재하던 1930년대 경성 여인들의 삶 역시 마찬가지다. 여고시절 똘똘했던 용주(신의정)는 떠밀리듯 양반 가문에 시집을 가게 되면서 퇴학처분을 받는다. 중인이라는 신분부터 하인에게 글을 가르친다는 것까지 모든 것이 시어머니의 구박으로 이어지고, “꼬마 난봉꾼” 남편의 어리광도 만만치 않다. 옥임(최미소) 역시 졸업과 함께 모단걸이 되어 자유를 꿈꾸지만, 류 씨(조휘)의 프로포즈를 거절하면서 “유난한 계집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유달리 다정했던 두 사람은 자신들의 처지가 벼랑 끝에 내몰린 후에야 서로를 향한 감정을 깨닫고, 남의 일에 이러쿵저러쿵 간섭하는 ‘콩칠팔 새삼륙’을 피해 스스로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이게 사는 건가


지난 6월 29일 개막한 뮤지컬 은 동성애라는 외피 속에 여성의 자아실현을 감춰둔 작품으로, 1930년 경성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은 극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표현된다. 1930년대는 상대적으로 신분의 격차도, 여성의 활동도 너그러워진 시대였지만 뿌리 깊게 존재하는 유교적 사상이 세상을 더욱 혼돈으로 빠뜨렸기 때문이다. 여전히 여러 명의 첩을 거느린 남자들에 비해 여자들은 자유연애를 권장 받으면서도 “아버님이 허락했다”는 남자의 문장 앞에서 선택지가 적었고, 짧은 치마와 단발머리는 “밥 먹듯 저지르는 칠거지악”이라 비난받기 일쑤였다. 용주와 옥임의 고단함은 입센이 탄생시킨 노라나 헤다 가블러 못지않다. 은 누군가의 딸이나 아내로만 살길 강요받고, 온전한 자아로서는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시대에 어렵사리 피어난 여린 꽃과 같다. 그래서 용주가 가출 전 시어머니의 머리를 잘라버린 복수는 통쾌한 한편, 애잔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은 여성으로서의 고단한 삶을 이야기하느라 ‘입구’ 역할을 한 용주와 옥임의 사랑에 힘을 싣지 못했다. 영등포역 기차선로에 몸을 던진 두 사람의 실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드라마틱하지만, 서로를 향해 던진 마음의 무늬가 또렷하지 않기에 “사랑한다”는 고백이 공기 중에 휘발되며 아쉬움을 남긴다. 극을 타고 흐르는 스윙, 재즈, 탱고 음악은 아코디언 선율의 복고적 사운드로 시대를 복기해내고, 상황을 나열하는 것이 아닌 리듬과 라임을 살려 묘사한 가사는 인물의 감정을 더욱 쉽게 느끼도록 도와준다. 다양한 장르와 풍성한 편곡, 대본 속에 숨은 더 많은 공간과 캐릭터는 보다 큰 극장에서의 재공연을 기대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공연은 8월 5일까지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

사진제공. 모비딕 프로덕션

글.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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