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독일에서 출판된 철학 에세이 한병철의 를 시작하는 첫 문장이다. 면역의 발달로 더 이상 박테리아적인 질병에 위협받지 않는 현대의 질병을 저자는 피로감과 우울감으로 진단한다. 현대는 모든 것이 가능한 시대이며,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불가능이 가능하지 않다는 구호 앞에서 스스로를 착취하고 포기의 순간을 찾지 못한다. 풍요로움은 더 이상 안락함의 전제가 되지 못하며, 누구도 지배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휴식을 두려워하는 새로운 본능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SBS 은 그러한 현대인의 질병적 징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40을 넘긴 4명의 남자를 통해 이들의 성장서사를 보여주겠다는 드라마의 의도와 무관하게, 정작 작품이 설득하고 있는 것은 시대의 피로와 세대의 히스테리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 신사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체력이 달리는 중년

“그동안 미안했어요, 신사가 아니라서.” 김도진(장동건)은 자신의 짝사랑을 포기선언 하면서 서이수(김하늘)에게 비신사적인 태도를 사과했다. 그동안 문학에서 비신사적인 언행은 선천적으로 부여받은 일종의 낙인이었다. 그러나 김도진은 신사가 아니기를 스스로 선택한다. 차분한 말투, 충분한 예의 상식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사적으로 서이수를 배려하고 존중하기를 거부한다. 김도진의 시대에 신사란 학습과 자본의 도움으로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며, 그는 이를 위해서 얼마만큼의 에너지가 요구되는 지를 잘 안다. 그러나 김도진은 피로하다. 실패를 극복한 사업가이자 기억상실의 불안에 시달리는 환자인 그에게 연애란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하는 낯선 일이며, 수행의 방식을 바꾸는 것은 궁극적으로 거대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선물을 주고, 곁을 맴돌고, 심지어 “나랑 잘래요?”라고 끊임없이 상대방의 마음을 체크하지만 정작 진심의 실마리는 노트북의 폴더 안에 감춰두는 김도진의 태도는 소년의 수줍음이나 중년의 노련함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그가 일터에서 사람들을 다루는 방식이며, 그는 같은 방식으로 짝사랑의 성과를 얻지 못하는 자신을 견딜 수 없어 히스테리 상태에 빠진다. “나 좀 좋아해주면 안돼요?”라는 그의 말은 달콤하지 않은 것은, 이것이 용기를 낸 고백이 아니라 더이상 피로 상태를 유지하고 싶지 않은 남자의 부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김도진의 기억 상실증이 재발 했을 때, 의사는 그에게 “연애 역시 스트레스”라는 충고를 했다. 드라마는 마치 의사의 문장을 증명하듯 현대의 연애가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피로를 가중하는 가를 탐구한다. 학생들과 동료 교사를 통해 서이수를 계속해서 괴롭히는 그녀의 직장은 안정적인 수익을 주지만 그만큼 꾸준한 피로를 준다. 그런 그녀에게 임태산(김수로)을 향한 짝사랑은 발현되지 못한 욕망이 아니라 변칙이 없는 평화의 행위이기에 고통스럽지 않았다. 김도진을 향한 예상치 못한 욕망을 발견하고 통곡을 한 그녀는 역시 견디거나 설득하는 일터에서의 방식으로 그에게 다가간다. 그래서 연애는 서이수에게 해방이나 구원이 아닌 또 다른 스트레스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지 못할 정도로, 현재의 자신을 위해 단련해 온 자신의 방식을 연애에 그대로 적용시키기는 다른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적인 명성과 축적된 자본, 신사와 숙녀의 자질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같이 인물들이 관계와 연애에 서툰 것은 그들이 미성숙하거나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도무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힘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피로사회에도 유효한 연애불변의 법칙

말하자면, 은 의 첫 구절에서 질병을 연애로 대체한 이야기다.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연애가 있다. 엄청난 신분의 차이나 출생의 비밀을 극복하는 열정은 이미 지난 시대의 것이다. 호기심과 욕망은 자신이 소용 할 수 있는 에너지와 함께 저울에 올려진다. 나이와 과거 앞에서 최윤(김민종)은 주춤거리고, 박민숙(김정난)은 사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혼을 요구한다. 이들에게 사실상 사랑의 방해물은 두드러지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하나같이 자존심으로 포장된 자신의 에너지를 잃지 않으려는 방어책일 뿐이다. 그래서 이 보다 다양한 군상을 보여주지 못한다거나, 지나치게 물질만능의 태도를 보인다는 지적은 무의미하다. 유사한 환경을 공유하며, 그 안에서 성과를 확인 할 수 있는 자본에 기대는 것이야 말로 드라마가 표집해낸 현재적 인물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디어 서이수의 마음을 얻게 된 김도진의 태도는 놀랍지 않지만, 걱정스럽다. 그는 관계의 재건을 위해 서이수에게 똑같은 상처를 경험할 것을 요구한다. 여전히 그에게 감정은 성과를 계산하기 위한 단위이며, 일터에서 데이트를 해야 할 만큼 자신을 닦달하고 착취하는 그의 피로 본능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러나 는 피로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에너지 드링크가 만들어낸 무한한 가능성의 판타지가 아니라 탈진의 시간이라고 말한다. 서이수가 김도진의 얼굴을 먼저 바라본 것은 그가 미사여구를 늘어놓거나 비싼 선물을 안겨 줄 때가 아니라 피로에 지쳐 남의 집 거실 소파에서 잠든 그를 발견했을 때다. 김도진과 그의 친구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성장이 아니라, 피로로 점철된 저 디스토피아로 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확신이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 질병과 연애가 변한다 해도 불변의 명제는 있는 법이다.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법이다.

글. 윤희성 nine@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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