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이 없으면 정의롭지라도 않든가. 오늘도 자존심을 냉장고에 넣고 나오는 것을 깜빡한 피터(앤드류 가필드)는 약자를 괴롭히는 강자에게 항거하다 내동댕이쳐진다. 어느 것도 특별하지 않은 피터의 고등학교 생활에서 유일하게 특별한 것은 그웬(엠마 스톤)과의 관계 뿐. 그렇게 평범하게 끝날 줄 알았던 십대 시절의 끝자락이 부모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와 겹쳐지면서 인생을 바꿔놓는다.
안 들어가길 잘했네
스파이더맨이 리부트를 시작했다. 샘 레이미 감독이 생명을 불어넣고, 2편에서 성공적인 히어로물로 안착했으나 3편에 이르러 팬들을 망연자실하게 만든 시리즈는 으로 새 시대를 열고자 한다. 이미 탄생부터 정체성의 혼란까지 다 보여준 스파이더맨을 처음부터 다시 창조해내는 동시에 자신의 색깔 또한 입혀야 하는 마크 웹 감독은 ‘어느 날 갑자기 거미에 물리면서 슈퍼 히어로가 된 소년’이라는 틀 안에서 고군분투한다.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를 재구성하는데 쓰인 효율적인 장치는 유머다. 감독의 전작 에서 성공적으로 구현된 바 있는 유머는 영화 전반에 마크 웹의 꼬리표를 달아놓는다. 전형적인 히어로물의 설정을 유쾌하게 비틀고, 그웬과의 연애에서는 청춘물의 반짝이는 순간을 담아내면서 은 프랜차이즈 시리즈인 동시에 마크 웹의 영화가 된다.
무엇보다 모범적이기만 했던 스파이더맨 캐릭터가 매력적인 소년으로 재탄생한 것이 반갑다. 슈퍼 파워를 얻기 전에도 피터는 좋아하는 여자의 마음을 얻을 정도로 귀엽고 우연히 얻은 능력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과학적 지식 또한 갖췄다. 이전 시리즈에서 스파이더맨이 직접 쏘아대던 거미줄은 피터가 개발한 거미줄 발사기 ‘웹슈터’를 통해 발사되는 것으로 정정되었고, 자경단원으로서의 활동에서도 머리를 쓴다. 그 결과 마블의 히어로들 중에서 능력치나 매력치에 있어서 상위권이라고 하기에 무리가 있었던 스파이더맨은 사랑스러움과 업그레이된 파워로 무장한다. 그러나 3D를 도입한 것 치고는 심심한 액션은 블록버스터를 기대하는 관객들에게는 실망스러울 듯. 이전 시리즈에서 이미 구현된 정도에 머무는 스파이더맨의 활공 신이나 악당 리자드와의 결투는 히어로물의 스펙터클을 위한 것이라기에는 아기자기한 수준이다. 28일 개봉.
글.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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