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처음 찍었던 영화는 였어요. 그땐 연기한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캐릭터의 감정에 집중을 많이 했어요. 김민숙 감독님도 이 인물이 어떤 마음인지에 대해서 한 컷당 딱 하나씩만 얘기해주셨어요. 제가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 있는 연기를 할 수 있을 때가 아니었으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좀 당돌했던 것 같은데, 저는 막연하게 친구들과 함께하는 졸업 과제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미장센 단편영화제에서 연기상을 받았을 땐 되게 무서웠어요. ‘이거 어떻게 되는 거지? 나 연기 되게 못 하는데 왜 이런 상을 주지? 큰일 나는 거 아냐?’ 이런 생각들이 들었어요. 집에 와서 상을 보여주면서 “엄마, 나 한 것도 없는데 상을 받았어. 어떡하지?” 이러니까 엄마는 “그러게 말이다. 무용은 그렇게 오래 해도 상 하나 받기 어려운데, 네가 뭐했다고 이런 선물을 주시니?”라고 하시고.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기니까 겁을 먼저 냈던 것 같아요.”
“상을 탄 후 매니지먼트를 소개받은 적이 있어요. 미팅하고 있는데 그쪽 분들이 저를 두고 나이가 많다, 얼굴은 동안인 것 같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시더니 무용이랑 병행할 거냐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럴 거라고 했더니 “그럼 안되지”라고 하셔서 ‘아, 나는 상업영화랑 맞지 않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별로 예쁘지도 않고 나이도 많고 무용도 같이 하려고 하는 사람이니까. 그 후로 무용이랑 연기를 병행하다 보니 시간 분배가 어려워져서 서른 살까지만 연기를 하자고 마음먹었어요. 그런데 지금 소속사의 대표님을 만나면서 그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촬영을 끝내고 무용 공연을 한 작품 했었는데, 대표님이 보시고 “예리는 연기랑 춤을 오래오래 같이 했으면 좋겠어”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제 나름대로 배우로서 가는 길이 따로 있는 것 같으니 그냥 차근차근해야겠다고 생각해요. 남들이 어떻게 한다고 해서 그걸 따라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무용을 할 때는 무대에서 100 이상을 보여주길 바라요. 딱 한 번뿐이고, 시간이 길지도 않으니까요. 영화는 스토리가 분명하게 있고 시간도 길어서 연기로 100을 다 보여주면 보는 사람들이 너무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요. 영화적으로 봤을 때도 재미가 없고요.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대사가 있으니까 연기적으로는 마이너스 상태가 되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야 다른 요소들이 더해져서 100이 될 수 있을 테니까. 가장 중요한 건 카메라 앵글 안에서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거예요. 무용에서 몸을 움직일 땐 ‘표현’의 수단이었지만, 앵글에서는 어떤 ‘상태’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거든요. 그러려면 뭔가를 과하게 표현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게 더 좋은 방법일 수도 있어요. 한편으로는 그래서 내 연기가 얄팍하지는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더 풍부하게 표현을 해야 하는 것들도 그 정도까지는 분석할 줄 모르기 때문에 놓치고 가는 부분이 있지 않나, 하는 걱정이 드는 거죠.”
글. 황효진 기자 seventeen@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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