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 홍대 주변에는 아홉 개의 음반점이 있었다. 홍대입구역에서 내리면 역 안에 음반점이 있었고, 역에서 올라가는 길에 하나, 놀이터 쪽에 하나, 미술학원이 있는 곳에 하나 하는 식이었다. 돈이 없는 리스너들은 후미진 곳에 있는 중고 음반점을 뒤졌고, 한국의 어디서도 사지 못하는 앨범들이 있다면 홍대 주변의 수입 음반점에 와서 주문할 수도 있었다. 햇수로 15년, 만으로 14년을 홍대에서 운영 중인 퍼플레코드는 그 중 하나였다. 퍼플레코드에서는 국내 음반 보다는 수입 음반을 주로 팔고, 인기 아이돌의 음악보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름도 생소할 해외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의 음반이 더욱 많이 팔렸다. 그래서 이곳을 운영하는 이건웅 사장이 음악산업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다른 방향성을 가진 제작사들, 특히 한 순간의 대박만을 노리거나 음악에 본질을 두지 않은 채 외모나 그 밖의 활동에만 주안점을 둔 곳의 음반을 들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14년이 지나는 사이 음반점은 네 개로 줄었다. 수입 음반점은 둘로 줄었고, 그 중 하나였던 레코드 포럼은 얼마 전 굿바이 세일을 했다. 레코드포럼이 있던 자리에는 프렌차이즈 레스토랑이 들어선다. 폐업 직전이던 레코드 포럼은 다행히 홍대의 다른 곳에서 영업을 재개하지만, 우리가 알던 홍대 거리의 풍경과, 그 곳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은 이미 사라졌다. 그래서 여전히 그 자리에서 그 음악을 틀고 있는 이건웅 사장에게 물었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이냐고.
“6월 쯤 부터는 매장의 반을 중고 LP로 채울 생각”
낮 시간에 보니까 왠지 낯설다. (웃음) 퍼플레코드는 밤에 찾아가는 일이 더 많은 곳인데.
이건웅: 전에는 밤 12시까지 영업을 했다. 음반 장사를 9시 정도까지 마무리하면 12시까지 앨범 주문서를 정리하거나 이런 저런 일을 했으니까. 전에 경기가 좋을 때는 술 마신 사람들이 기분이 좋아져서 앨범을 사고 그래서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500만 원어치를 판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밤에 앨범 사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11시 정도까지만 한다.
음반이 팔리지 않은 건 오래된 일이지만 이제는 마니아들도 음반을 잘 사지 않는다. 레코드 포럼도 극적으로 다른 곳에서 문을 열게 됐지만 가게를 접을 뻔하기도 했고.
이건웅: 음반 산업은 사양 산업이다. 경기가 좋아진다고 해도 판매량이 늘어나진 않는다. 전에는 홍대에서 활동하는 DJ들이 퍼플레코드에서 일렉트로니카 음반을 사거나 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에서 지금 바로 인기 있는 음악을 그곳의 사이트에서 바로 사서 1분 만에 클럽에서 틀 수 있다. 음반을 사는 마니아들도 마찬가지다. 몇 년 사이에 해외 사이트에서 직접 음반을 구매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굉장히 늘었다. 퍼플레코드는 수입음반을 다루니까 국내 마니아들이 아마존 같은 해외 사이트들을 직접 이용하면 가장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단골들의 절반을 아마존에 뺏긴 것 같다. 한국 음반이 가장 싼 곳이 한국 사이트이듯 미국 앨범은 미국 사이트가 가장 쌀 수밖에 없다. 그럼 어떻게 할 건가.
이건웅: 그래서 올해가 퍼플레코드의 대 변혁의 해다. (웃음) 예전에 비해 점점 CD 보유량을 줄일 거다. 아마 기존 보유량에서 반 이상 줄이게 될 것 같다. 큰 의미 없는 앨범들의 재고는 줄이고, 그렇게 해서 6월 쯤 부터는 매장의 반 정도를 비워서 가게 벽 한 쪽을 미국에서 수입한 중고 LP로 채울 생각이다. 홍대에 1998년에 들어왔는데, 14년 만에 변화를 하는 셈이다.
왜 LP인가.
이건웅: LP를 사는 사람은 둘 중 하나다. 하나는 어떤 뮤지션의 팬이라서 LP까지 소유하고 싶은 경우다. LP를 뮤지션의 머천다이즈로 받아들이는 거다. 두 번째는 LP를 통해 새로운 음악을 듣고 싶은 사람들이다. LP가 나오기 시작한 뒤에 수없이 많은 음반들이 발매됐다. 하지만 LP에서 테이프나 CD로 넘어가면서 재발매된 음반들은 1%도 채 안 된다. 나머지 99%에는 무척 좋은 음악인데 LP로만 나오고 사라진 경우가 많다. 지금 LP를 사 모으려는 사람들은 거의 다 이런 앨범들을 중고로 사려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위해 LP를 들여다 놓을 생각이다. 그리고 나도 요즘 음악 중에 들을만한 게 많지 않아서 음악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 들었는데, 중고 LP 속에서 좋은 음악을 찾으면서 음악에 대한 사랑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손님들에게 그 앨범들을 추천도 해줄 수 있을 것 같고.
전에는 퍼플레코드 문 앞 진열대에 앨범을 놓는 것만으로도 손님들에게 추천하는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에는 인터넷에서 미리 음악을 듣는다.
이건웅: 전에는 알려지지 않은 밴드를 사람들에게 알려줘서 좋아하게 하는 걸 내 의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손님들이 온라인상에서 미리 음악을 듣고 구입할걸 정하고 오기때문에 손님들이 추천해달라고 하기 전에는 추천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의 중고LP에서 좋은 음악을 골라내서 손님들에게 추천하는 건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려고 미국에서 퍼플레코드 일을 도와주는 사람을 통해서 좋은 중고 LP를 골라내도록 하고 있고. 어떤 업자들은 박스 단위로 LP를 사서 박스 안에 무슨 앨범이 들어있는지도 모르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는 한 장 한 장 확인하면서 정말 좋은 LP를 들여놓을 생각이다. LP는 듣는 방식이나 지불해야할 비용을 생각하면 젊은 세대보다는 기성세대가 많이 살 가능성이 높다. 음반을 사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점점 높아지는 건가.
이건웅: 요즘 학생들은 시험을 잘 치거나 하면 부모가 상으로 한 시간동안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더라. 내 아들이 고 3인데 아침 7시에 나가서 밤 12시에 들어온다. 전에는 학생들이 학교 끝나면 FM라디오 듣는 것 밖에는 할 게 없었는데, 지금은 학생들이 어른들보다 더 바쁘다. 한가롭게 음악을 들을 시간이 없다. 그리고 전에는 용돈을 모아 앨범을 샀는데, 한 10년 전부터 사람들이 매 달 정기적으로 휴대폰이나 인터넷에 몇 만원씩 비용을 지불한다. 하루에 몇 천원씩 커피를 마시고. 음반을 사서 들을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럼 아들은 퍼플 레코드에서 다루는 음반들을 산 적이 있나. (웃음)
이건웅: 우리 아들이지만 좀 자랑을 하자면 (웃음) 아들이 메탈리카와 에미넴을 좋아한다. 특히 메탈리카. 그런데 걔가 음반을 갖고 싶은데 아버지에게 말하면 음반을 그냥 선물로 줄까봐 내가 매장에 없는 시간에 자기 돈으로 앨범을 사갔더라. 메탈리카 앨범 10장하고 에미넴 앨범들. 그런데 그 이상 듣지는 못한다. 음악을 더 들을 시간이 없으니까. 내가 대학 다닐 때는 1,2학년 때 술만 먹어도 (웃음) 그 후에 정신만 차리면 학점도 나오고 버젓한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 뼈를 깎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직장에 다니기 힘들다. 지금 사람들은 정말 힘들게 살고 있다.
“요즘은 음악을 생활 속 소품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도 퍼플레코드에 음반을 사러 오는 사람들은 누군가.
이건웅: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전에는 도난 방지 바코드를 CD 케이스 윗면에 직접 붙일 때가 있었다. 그 때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했다. 어차피 음악을 들으려면 그걸 떼게 되고, 본드 자국이 조금 남는 게 무슨 상관이냐 했던 거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앨범들에 대해 반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해도 못했고 화도 났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내가 그런 사람들 때문에 먹고 사는 거였다. 음악을 들을 수만 있으면 됐지, 비닐포장이나 케이스상태가 뭐 중요한가하는 사람들은 CD를 안 산다. 퍼플레코드에 오는 사람들은 이미 사려는 음악을 충분히 들어봤고, 하드디스크에 다 있다. 그 중에 충분히 살만하다고 생각하는 음반을 사려고 온다. 정말 음반을 사랑하는 사람들인 거다. 그래서 요즘에는 모든 앨범에 새로 비닐을 씌워서 판다. 그게 음반판매업자의 올바른 길이다. 그만큼 예민한 사람들이기도 하고 음악에 관심이 많은데, 그들의 취향을 파악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겠다. 퍼플레코드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도 당신이 잘 모르는 것들을 듣기 위해 틀어놓는 것 아닌가.
이건웅: 집중해서 듣는 건 아니지만 매장에서 하루에 한 10장씩 틀어놓는다. 나에게 생소한 음악들만 듣는다. 익숙한 뮤지션의 음악이나 이미 들은 앨범은 듣지 않는다. 그리고 퍼플레코드의 롱런 비결(웃음)이 하나 있는데, A급 단골이 너무 많다는 거다. 가게는 작지만 음악을 많이 듣는 A급 단골들이 워낙 많다 보니까 그들이 정보원 아닌 정보원 역할을 한다. 일렉트로니카의 팬이 좋다고 추천하는 일렉트로니카 앨범은 100%다. 그들이 어떻게 얘기하는지만 들어도 어떤 앨범이 많이 팔릴지 안 팔릴지 알게 된다.
요즘은 어떤 음반들이 잘 나가나.
이건웅: 전체적인 기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퍼플레코드에서는 일관되게 락은 포스트 락이나 실험적인 스타일의 인디 락 위주로, 힙합은 래퍼보다는 프로듀서 중심으로, 일렉트로니카도 트립합이나 앱스트랙트 힙합처럼 춤추기 애매한 음반 위주로 팔았다. 그게 변한 적은 없다. 다만 요즘은 사람들이 쉬운 음악을 좋아한다는 생각은 든다. 전에는 드라마틱한 음악들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흘려 들으면서 감정의 기복이 안 생기는 음악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일렉트로니카도 전에는 트랜스나 빅비트처럼 사람을 후끈 달아오르게 하던 음악들이 유행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일렉트로니카 팝을 좋아한다. 무언가 하면서 가볍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선호하는 거다. 내가 무슨 일을 하면서 음악 때문에 감정에 기복이 생기면 내 일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음악에 몰입하거나 감동을 받기 보다는 생활 속 소품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당신은 어떤 음악을 좋아하나.
이건웅: 목소리 있는 음악보다 연주 음악을 좋아한다. 음악을 처음 들을 때 어떤 장르든 기타리스트 음반만 들었다. 1994년에 서울역에서 처음 음반을 팔 때는 락 위주로, 너바나나 펄잼 같은 밴드의 음반들을 많이 팔았다. 그러다 우연찮게 홍대에 왔는데, 그 때 홍대는 일렉트로니카가 대세였다. 그런데 나는 일렉트로니카를 정말 몰랐다. 그 때부터 일렉트로니카를 알아야겠다 싶어서 무조건 그 쪽 음악을 들었다. 생존의 문제였으니까. 그런데 듣다보니 오히려 쉽게 빠졌다. 그 때 유행했던 트랜스나 빅비트 같은 일렉트로니카 계열의 장르들은 목소리보다 비트 중심으로 흘러갔으니까. 그리고 밝은 노래보다는 무거운 음악을 좋아하고, 작법도 남들과 다르게 하려는 음악들을 좋아한다. 정형화 된 틀 안에서 잘하는 것 보다는 미숙해도 새로운 게 좋다. 그런데 사람들의 취향은 점점 당신의 취향과 다르게 간다. 퍼플레코드가 있는 홍대 주변도 그렇고.
이건웅: 홍대에서 14년 동안 지내는 동안 이곳도 엄청 변했다. 긍정적인 쪽보다 부정적인 쪽으로. 지금은 영등포나 신촌하고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에는 허름하지만 독특하고 개성 있는 상점이 많았다. 이젠 패밀리 마트가 얼마나 많고, 스타벅스가 얼마나 많나. 예전 홍대 클럽에는 에이펙스트윈의 음악이 나왔지만 이제는 부비부비를 위한 음악만 남았다. 오랫동안 홍대에 있었던 상점들은 이제 다 물갈이 됐다. 우리가게 반경 300미터 안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건 음반 가게 하나와 중고책방, 그리고 은행 하나밖에 없다.
대체 왜 홍대에 그 많은 커피전문점이 들어올까.
이건웅: 사실 홍대에서 돈 버는 사람은 얼마 없다. 홍대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홍대에서 뭔가 하면 더 잘 될 거 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99%는 1년도 못 돼서 나간다. 그런데 월세는 계속 올라간다. 망해서 나가면 다른 누군가 계속 들어오니까. 10평짜리 커피숍 월세가 500이면 사실상 이익을 내는 게 불가능하다. 아마 작은 커피숍에서 300만원 이상 월세를 낼 수 있는 곳도 별로 없을 거다. 그런데 어떤 부동산업자들은 계속 장사가 잘 된다고 말하고, 건물주들은 세입자가 들어오니까 월세를 계속 올린다. 이미 홍대는 거품이 생기다 못해 폭발한지 오래인데 계속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퍼플레코드가 예전의 퍼플레코드일 수가 없다”
하긴 퍼플레코드가 아직 그 자리에 있는 것도 신기했다. 계속 월세가 오를 텐데 레코드점을 운영하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
이건웅: 우리는 10년 넘게 있다 보니 건물주가 월세를 많이 안 올리고 있다. 10년 동안 있었던 걸 인정 해주는 거다. 아직은 할 만하다. 퍼플레코드를 운영하려면 직원에게 주는 월급하고 아내에게 줘야할 생활비를 포함해서 손익 분기점을 넘겨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플러스라고 하기엔 어떨지 몰라도 손익분기점은 맞추고 있다. 손익분기점을 맞추면 계속 이걸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떤 날은 이익이 남고, 어떤 날은 부족한데 간당간당하다. 그래서 히든카드로 LP를 시작한 거고. 하지만 나는 이 일을 해야 한다. 업종변경을 할 수 없다. 다른 걸 해본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으니까. 할 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다. 그 점에서 당신과 함께 몇 년 째 일하는 직원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레코드 가게를 계속 떠나지 않는 직원이라는 건 보통 애정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 아닌가.
이건웅: 6,7년 전까지는 직원이 계속 바뀌었는데, 이 친구가 들어온 후 계속 함께 하고 있다. 자기가 운영하는 블로그 대문에 프로듀서 RJD2가 걸려 있어서 바로 채용했다. (웃음) 사실 월급을 많이 주지 못하는데도 음악을 좋아하고, 나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어서 계속 있는 거 같다. 그 친구나 나나 음악을 좋아하고, 술을 좋아한다. 그리고 힙합을 좋아하는데 나처럼 래퍼보다는 프로듀서 중심으로 좋아하고. 그래서 롱런할 수 있는 것 같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음악을 들으면서 레코드점을 운영하는 걸 꿈으로 삼은 걸로 알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40대를 넘겼다.
이건웅: 굿이지. 인생의 120%를 이룬 거다. 수많은 단골들이 음반을 사면서 그 꿈을 이뤄 준거다.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하다. (웃음)
그 단골들 중에는 퍼플레코드가 문을 열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음반을 사는 사람들도 있다. 이곳에서 앨범을 사다 뮤지션이 된 경우도 있고. 그들과 같이 나이 먹어간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
이건웅: 그런 사람들이 한 스무 명쯤 된다. 그것도 엄청난 숫자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별반 느낌이 없다. 한 달에 못해도 늘 한두 번씩 보면서 사니까. 그 사람들은 대부분 이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고, 결국 자기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공해서 CD값으로 한 달에 50만 원 정도는 쓸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별다른 감흥은 없다. (웃음)
홍대가 아니었다면 밤 12시에 온 손님과 얘기하면서 새 앨범을 소개하는 게 불가능할 거 같긴 하다. 다른 곳에서는 인기 있는 음반들을 주력으로 내세우지 않아도 되는 것도 힘들었을 거고.
이건웅: 그런데 이제는 그런 앨범들도 판다. 예를 들어 우리가 SM의 음반을 팔지 않는 걸로 오해하는 분들도 있는데, 이미 음반 데이터를 퍼플레코드의 웹사이트(www.purplerecord.com)에 올려놨고, 오프라인에서도 팔고 있다. 그런데 데이터를 올려놓으려다 기겁했다. 가수마다 음반이 너무 많다. 내 생각에는 정규 앨범, 라이브, 베스트 정도면 된다고 보는데 SM 소속 가수들은 심하면 앨범이 50장이 넘는 경우가 있으니까. 같은 앨범인데 종류가 엄청 다양하게 나오기도 했고. SM의 아이돌은 싫어하지 않지만 이런 SM의 방침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도 매출을 생각 안할 수 없는 입장이 돼서 다루기로 했다. 그런데 올려야할 음반들이 너무 많더라. 엄두가 안 난다. (웃음)
좋아하는 음악을 많은 사람들에게 팔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는 음반들만 점점 잘 팔리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것 같다.
이건웅: 예전에는 국내에 소개 안 된 음반들을 들여와서 이 음반의 장점을 사람들에게 최대한 부각시켜서 구매하게 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100% 안 팔린다고 생각한 음반도 수입했다. 가요나 팝, 재즈 앨범들이 잘 팔려서 그 이익금으로 안 팔리는 앨범들을 수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그럴 수 없다. 내게는 좋지만 추천하기 애매한 음악도 수입할 수 없다. 안 팔리는 걸 알면서 들여놓기엔 지금 그 재고 부담을 이겨낼 수 없다. 음악을 사랑해서 음반을 파는 일을 계속하겠지만, 이제는 방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함께하는 직원의 월급을 조금이라도 올려줘야 하고, 애들이 자라는데 아내에게 생활비도 더 줘야하니까. 지금까지 나는 같이 일하는 직원과 아내의 희생으로 장사를 할 수 있었던 거나 마찬가지다. 이제 그들에게 최소한의 보상이라도 해줘야할 때가 됐다. 그래서 2012년은 퍼플레코드에게 대 변혁의 해다. 이렇게 14년을 해왔는데, 이제는 더 이상 퍼플레코드가 예전의 퍼플레코드일 수가 없다.
그럼에도 이 일을 하면서 포기할 수 없는 게 있다면.
이건웅: 취향이다. 내가 CD를 줄이고 LP를 하겠다고 했지만, 좋아하는 장르나 취향까지 양보하면 안 된다. 장사꾼이 모든 걸 양보한다 해도 취향까지 양보하지는 않는다. 그런 장사꾼은 없다.
글. 강명석 기자 two@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6월 쯤 부터는 매장의 반을 중고 LP로 채울 생각”
낮 시간에 보니까 왠지 낯설다. (웃음) 퍼플레코드는 밤에 찾아가는 일이 더 많은 곳인데.
이건웅: 전에는 밤 12시까지 영업을 했다. 음반 장사를 9시 정도까지 마무리하면 12시까지 앨범 주문서를 정리하거나 이런 저런 일을 했으니까. 전에 경기가 좋을 때는 술 마신 사람들이 기분이 좋아져서 앨범을 사고 그래서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500만 원어치를 판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밤에 앨범 사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11시 정도까지만 한다.
음반이 팔리지 않은 건 오래된 일이지만 이제는 마니아들도 음반을 잘 사지 않는다. 레코드 포럼도 극적으로 다른 곳에서 문을 열게 됐지만 가게를 접을 뻔하기도 했고.
이건웅: 음반 산업은 사양 산업이다. 경기가 좋아진다고 해도 판매량이 늘어나진 않는다. 전에는 홍대에서 활동하는 DJ들이 퍼플레코드에서 일렉트로니카 음반을 사거나 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에서 지금 바로 인기 있는 음악을 그곳의 사이트에서 바로 사서 1분 만에 클럽에서 틀 수 있다. 음반을 사는 마니아들도 마찬가지다. 몇 년 사이에 해외 사이트에서 직접 음반을 구매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굉장히 늘었다. 퍼플레코드는 수입음반을 다루니까 국내 마니아들이 아마존 같은 해외 사이트들을 직접 이용하면 가장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단골들의 절반을 아마존에 뺏긴 것 같다. 한국 음반이 가장 싼 곳이 한국 사이트이듯 미국 앨범은 미국 사이트가 가장 쌀 수밖에 없다. 그럼 어떻게 할 건가.
이건웅: 그래서 올해가 퍼플레코드의 대 변혁의 해다. (웃음) 예전에 비해 점점 CD 보유량을 줄일 거다. 아마 기존 보유량에서 반 이상 줄이게 될 것 같다. 큰 의미 없는 앨범들의 재고는 줄이고, 그렇게 해서 6월 쯤 부터는 매장의 반 정도를 비워서 가게 벽 한 쪽을 미국에서 수입한 중고 LP로 채울 생각이다. 홍대에 1998년에 들어왔는데, 14년 만에 변화를 하는 셈이다.
왜 LP인가.
이건웅: LP를 사는 사람은 둘 중 하나다. 하나는 어떤 뮤지션의 팬이라서 LP까지 소유하고 싶은 경우다. LP를 뮤지션의 머천다이즈로 받아들이는 거다. 두 번째는 LP를 통해 새로운 음악을 듣고 싶은 사람들이다. LP가 나오기 시작한 뒤에 수없이 많은 음반들이 발매됐다. 하지만 LP에서 테이프나 CD로 넘어가면서 재발매된 음반들은 1%도 채 안 된다. 나머지 99%에는 무척 좋은 음악인데 LP로만 나오고 사라진 경우가 많다. 지금 LP를 사 모으려는 사람들은 거의 다 이런 앨범들을 중고로 사려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위해 LP를 들여다 놓을 생각이다. 그리고 나도 요즘 음악 중에 들을만한 게 많지 않아서 음악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 들었는데, 중고 LP 속에서 좋은 음악을 찾으면서 음악에 대한 사랑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손님들에게 그 앨범들을 추천도 해줄 수 있을 것 같고.
전에는 퍼플레코드 문 앞 진열대에 앨범을 놓는 것만으로도 손님들에게 추천하는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에는 인터넷에서 미리 음악을 듣는다.
이건웅: 전에는 알려지지 않은 밴드를 사람들에게 알려줘서 좋아하게 하는 걸 내 의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손님들이 온라인상에서 미리 음악을 듣고 구입할걸 정하고 오기때문에 손님들이 추천해달라고 하기 전에는 추천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의 중고LP에서 좋은 음악을 골라내서 손님들에게 추천하는 건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려고 미국에서 퍼플레코드 일을 도와주는 사람을 통해서 좋은 중고 LP를 골라내도록 하고 있고. 어떤 업자들은 박스 단위로 LP를 사서 박스 안에 무슨 앨범이 들어있는지도 모르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는 한 장 한 장 확인하면서 정말 좋은 LP를 들여놓을 생각이다. LP는 듣는 방식이나 지불해야할 비용을 생각하면 젊은 세대보다는 기성세대가 많이 살 가능성이 높다. 음반을 사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점점 높아지는 건가.
이건웅: 요즘 학생들은 시험을 잘 치거나 하면 부모가 상으로 한 시간동안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더라. 내 아들이 고 3인데 아침 7시에 나가서 밤 12시에 들어온다. 전에는 학생들이 학교 끝나면 FM라디오 듣는 것 밖에는 할 게 없었는데, 지금은 학생들이 어른들보다 더 바쁘다. 한가롭게 음악을 들을 시간이 없다. 그리고 전에는 용돈을 모아 앨범을 샀는데, 한 10년 전부터 사람들이 매 달 정기적으로 휴대폰이나 인터넷에 몇 만원씩 비용을 지불한다. 하루에 몇 천원씩 커피를 마시고. 음반을 사서 들을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럼 아들은 퍼플 레코드에서 다루는 음반들을 산 적이 있나. (웃음)
이건웅: 우리 아들이지만 좀 자랑을 하자면 (웃음) 아들이 메탈리카와 에미넴을 좋아한다. 특히 메탈리카. 그런데 걔가 음반을 갖고 싶은데 아버지에게 말하면 음반을 그냥 선물로 줄까봐 내가 매장에 없는 시간에 자기 돈으로 앨범을 사갔더라. 메탈리카 앨범 10장하고 에미넴 앨범들. 그런데 그 이상 듣지는 못한다. 음악을 더 들을 시간이 없으니까. 내가 대학 다닐 때는 1,2학년 때 술만 먹어도 (웃음) 그 후에 정신만 차리면 학점도 나오고 버젓한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 뼈를 깎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직장에 다니기 힘들다. 지금 사람들은 정말 힘들게 살고 있다.
“요즘은 음악을 생활 속 소품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도 퍼플레코드에 음반을 사러 오는 사람들은 누군가.
이건웅: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전에는 도난 방지 바코드를 CD 케이스 윗면에 직접 붙일 때가 있었다. 그 때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했다. 어차피 음악을 들으려면 그걸 떼게 되고, 본드 자국이 조금 남는 게 무슨 상관이냐 했던 거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앨범들에 대해 반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해도 못했고 화도 났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내가 그런 사람들 때문에 먹고 사는 거였다. 음악을 들을 수만 있으면 됐지, 비닐포장이나 케이스상태가 뭐 중요한가하는 사람들은 CD를 안 산다. 퍼플레코드에 오는 사람들은 이미 사려는 음악을 충분히 들어봤고, 하드디스크에 다 있다. 그 중에 충분히 살만하다고 생각하는 음반을 사려고 온다. 정말 음반을 사랑하는 사람들인 거다. 그래서 요즘에는 모든 앨범에 새로 비닐을 씌워서 판다. 그게 음반판매업자의 올바른 길이다. 그만큼 예민한 사람들이기도 하고 음악에 관심이 많은데, 그들의 취향을 파악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겠다. 퍼플레코드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도 당신이 잘 모르는 것들을 듣기 위해 틀어놓는 것 아닌가.
이건웅: 집중해서 듣는 건 아니지만 매장에서 하루에 한 10장씩 틀어놓는다. 나에게 생소한 음악들만 듣는다. 익숙한 뮤지션의 음악이나 이미 들은 앨범은 듣지 않는다. 그리고 퍼플레코드의 롱런 비결(웃음)이 하나 있는데, A급 단골이 너무 많다는 거다. 가게는 작지만 음악을 많이 듣는 A급 단골들이 워낙 많다 보니까 그들이 정보원 아닌 정보원 역할을 한다. 일렉트로니카의 팬이 좋다고 추천하는 일렉트로니카 앨범은 100%다. 그들이 어떻게 얘기하는지만 들어도 어떤 앨범이 많이 팔릴지 안 팔릴지 알게 된다.
요즘은 어떤 음반들이 잘 나가나.
이건웅: 전체적인 기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퍼플레코드에서는 일관되게 락은 포스트 락이나 실험적인 스타일의 인디 락 위주로, 힙합은 래퍼보다는 프로듀서 중심으로, 일렉트로니카도 트립합이나 앱스트랙트 힙합처럼 춤추기 애매한 음반 위주로 팔았다. 그게 변한 적은 없다. 다만 요즘은 사람들이 쉬운 음악을 좋아한다는 생각은 든다. 전에는 드라마틱한 음악들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흘려 들으면서 감정의 기복이 안 생기는 음악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일렉트로니카도 전에는 트랜스나 빅비트처럼 사람을 후끈 달아오르게 하던 음악들이 유행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일렉트로니카 팝을 좋아한다. 무언가 하면서 가볍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선호하는 거다. 내가 무슨 일을 하면서 음악 때문에 감정에 기복이 생기면 내 일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음악에 몰입하거나 감동을 받기 보다는 생활 속 소품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당신은 어떤 음악을 좋아하나.
이건웅: 목소리 있는 음악보다 연주 음악을 좋아한다. 음악을 처음 들을 때 어떤 장르든 기타리스트 음반만 들었다. 1994년에 서울역에서 처음 음반을 팔 때는 락 위주로, 너바나나 펄잼 같은 밴드의 음반들을 많이 팔았다. 그러다 우연찮게 홍대에 왔는데, 그 때 홍대는 일렉트로니카가 대세였다. 그런데 나는 일렉트로니카를 정말 몰랐다. 그 때부터 일렉트로니카를 알아야겠다 싶어서 무조건 그 쪽 음악을 들었다. 생존의 문제였으니까. 그런데 듣다보니 오히려 쉽게 빠졌다. 그 때 유행했던 트랜스나 빅비트 같은 일렉트로니카 계열의 장르들은 목소리보다 비트 중심으로 흘러갔으니까. 그리고 밝은 노래보다는 무거운 음악을 좋아하고, 작법도 남들과 다르게 하려는 음악들을 좋아한다. 정형화 된 틀 안에서 잘하는 것 보다는 미숙해도 새로운 게 좋다. 그런데 사람들의 취향은 점점 당신의 취향과 다르게 간다. 퍼플레코드가 있는 홍대 주변도 그렇고.
이건웅: 홍대에서 14년 동안 지내는 동안 이곳도 엄청 변했다. 긍정적인 쪽보다 부정적인 쪽으로. 지금은 영등포나 신촌하고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에는 허름하지만 독특하고 개성 있는 상점이 많았다. 이젠 패밀리 마트가 얼마나 많고, 스타벅스가 얼마나 많나. 예전 홍대 클럽에는 에이펙스트윈의 음악이 나왔지만 이제는 부비부비를 위한 음악만 남았다. 오랫동안 홍대에 있었던 상점들은 이제 다 물갈이 됐다. 우리가게 반경 300미터 안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건 음반 가게 하나와 중고책방, 그리고 은행 하나밖에 없다.
대체 왜 홍대에 그 많은 커피전문점이 들어올까.
이건웅: 사실 홍대에서 돈 버는 사람은 얼마 없다. 홍대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홍대에서 뭔가 하면 더 잘 될 거 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99%는 1년도 못 돼서 나간다. 그런데 월세는 계속 올라간다. 망해서 나가면 다른 누군가 계속 들어오니까. 10평짜리 커피숍 월세가 500이면 사실상 이익을 내는 게 불가능하다. 아마 작은 커피숍에서 300만원 이상 월세를 낼 수 있는 곳도 별로 없을 거다. 그런데 어떤 부동산업자들은 계속 장사가 잘 된다고 말하고, 건물주들은 세입자가 들어오니까 월세를 계속 올린다. 이미 홍대는 거품이 생기다 못해 폭발한지 오래인데 계속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퍼플레코드가 예전의 퍼플레코드일 수가 없다”
하긴 퍼플레코드가 아직 그 자리에 있는 것도 신기했다. 계속 월세가 오를 텐데 레코드점을 운영하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
이건웅: 우리는 10년 넘게 있다 보니 건물주가 월세를 많이 안 올리고 있다. 10년 동안 있었던 걸 인정 해주는 거다. 아직은 할 만하다. 퍼플레코드를 운영하려면 직원에게 주는 월급하고 아내에게 줘야할 생활비를 포함해서 손익 분기점을 넘겨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플러스라고 하기엔 어떨지 몰라도 손익분기점은 맞추고 있다. 손익분기점을 맞추면 계속 이걸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떤 날은 이익이 남고, 어떤 날은 부족한데 간당간당하다. 그래서 히든카드로 LP를 시작한 거고. 하지만 나는 이 일을 해야 한다. 업종변경을 할 수 없다. 다른 걸 해본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으니까. 할 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다. 그 점에서 당신과 함께 몇 년 째 일하는 직원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레코드 가게를 계속 떠나지 않는 직원이라는 건 보통 애정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 아닌가.
이건웅: 6,7년 전까지는 직원이 계속 바뀌었는데, 이 친구가 들어온 후 계속 함께 하고 있다. 자기가 운영하는 블로그 대문에 프로듀서 RJD2가 걸려 있어서 바로 채용했다. (웃음) 사실 월급을 많이 주지 못하는데도 음악을 좋아하고, 나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어서 계속 있는 거 같다. 그 친구나 나나 음악을 좋아하고, 술을 좋아한다. 그리고 힙합을 좋아하는데 나처럼 래퍼보다는 프로듀서 중심으로 좋아하고. 그래서 롱런할 수 있는 것 같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음악을 들으면서 레코드점을 운영하는 걸 꿈으로 삼은 걸로 알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40대를 넘겼다.
이건웅: 굿이지. 인생의 120%를 이룬 거다. 수많은 단골들이 음반을 사면서 그 꿈을 이뤄 준거다.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하다. (웃음)
그 단골들 중에는 퍼플레코드가 문을 열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음반을 사는 사람들도 있다. 이곳에서 앨범을 사다 뮤지션이 된 경우도 있고. 그들과 같이 나이 먹어간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
이건웅: 그런 사람들이 한 스무 명쯤 된다. 그것도 엄청난 숫자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별반 느낌이 없다. 한 달에 못해도 늘 한두 번씩 보면서 사니까. 그 사람들은 대부분 이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고, 결국 자기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공해서 CD값으로 한 달에 50만 원 정도는 쓸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별다른 감흥은 없다. (웃음)
홍대가 아니었다면 밤 12시에 온 손님과 얘기하면서 새 앨범을 소개하는 게 불가능할 거 같긴 하다. 다른 곳에서는 인기 있는 음반들을 주력으로 내세우지 않아도 되는 것도 힘들었을 거고.
이건웅: 그런데 이제는 그런 앨범들도 판다. 예를 들어 우리가 SM의 음반을 팔지 않는 걸로 오해하는 분들도 있는데, 이미 음반 데이터를 퍼플레코드의 웹사이트(www.purplerecord.com)에 올려놨고, 오프라인에서도 팔고 있다. 그런데 데이터를 올려놓으려다 기겁했다. 가수마다 음반이 너무 많다. 내 생각에는 정규 앨범, 라이브, 베스트 정도면 된다고 보는데 SM 소속 가수들은 심하면 앨범이 50장이 넘는 경우가 있으니까. 같은 앨범인데 종류가 엄청 다양하게 나오기도 했고. SM의 아이돌은 싫어하지 않지만 이런 SM의 방침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도 매출을 생각 안할 수 없는 입장이 돼서 다루기로 했다. 그런데 올려야할 음반들이 너무 많더라. 엄두가 안 난다. (웃음)
좋아하는 음악을 많은 사람들에게 팔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는 음반들만 점점 잘 팔리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것 같다.
이건웅: 예전에는 국내에 소개 안 된 음반들을 들여와서 이 음반의 장점을 사람들에게 최대한 부각시켜서 구매하게 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100% 안 팔린다고 생각한 음반도 수입했다. 가요나 팝, 재즈 앨범들이 잘 팔려서 그 이익금으로 안 팔리는 앨범들을 수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그럴 수 없다. 내게는 좋지만 추천하기 애매한 음악도 수입할 수 없다. 안 팔리는 걸 알면서 들여놓기엔 지금 그 재고 부담을 이겨낼 수 없다. 음악을 사랑해서 음반을 파는 일을 계속하겠지만, 이제는 방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함께하는 직원의 월급을 조금이라도 올려줘야 하고, 애들이 자라는데 아내에게 생활비도 더 줘야하니까. 지금까지 나는 같이 일하는 직원과 아내의 희생으로 장사를 할 수 있었던 거나 마찬가지다. 이제 그들에게 최소한의 보상이라도 해줘야할 때가 됐다. 그래서 2012년은 퍼플레코드에게 대 변혁의 해다. 이렇게 14년을 해왔는데, 이제는 더 이상 퍼플레코드가 예전의 퍼플레코드일 수가 없다.
그럼에도 이 일을 하면서 포기할 수 없는 게 있다면.
이건웅: 취향이다. 내가 CD를 줄이고 LP를 하겠다고 했지만, 좋아하는 장르나 취향까지 양보하면 안 된다. 장사꾼이 모든 걸 양보한다 해도 취향까지 양보하지는 않는다. 그런 장사꾼은 없다.
글. 강명석 기자 two@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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