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남 서인하 a.k.a 김윤희의 남자
사랑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첫사랑을 떠나보낸 후 예전처럼 웃질 않고 좀 야윈 서인하(정진영)는 그래서인지 이혼한 전 부인에게 종종 미안하다고 한다. 다시는 사랑하지 않는 당신과 합칠 생각 없다는 뜻이다. 대신 횡단보도에서 30년 만에 마주친 첫사랑 김윤희(이미숙)를 대번에 알아본 그는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수염에 물기로 얼룩진 안경을 쓴 몰골로 길을 막아서서는 대뜸 “맞습니까?”라고 불심검문을 한다. 대답도 듣지 않고 “살아 있었군요”라며 3년 만에 만난 빚쟁이 같은 적중률을 과시하기까지 한다. 안부를 확인했으니 이제 각자의 삶을 살자는 김윤희를 한사코 찾아가서는 왈칵 안아버리질 않나, 자동차가 오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일러주면 될 것을 굳이 뛰어들어 병원에 입원을 하기도 한다. 전 부인의 말마따나 “착하고 따뜻했던 인하 형”은 세월이 흐르면서 좀 변했다.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다. 직접 만드는 샐러드에는 닭가슴살 한 조각 없이 양상추뿐이고, 어떤 커피를 좋아하는지 모른다고 종류별로 10여 잔을 사와 놓고도 미안한 기색은커녕 생색만 내는 건 순전히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는 거다. 그러니 집에 초대해서 손수 슬리퍼를 신겨 주거나, 잘 보이려고 수염을 깎았다고 어리광을 부려도 부담스러워 말고 사랑으로 이해하자. 사랑하는 아들이 부탁을 해도 “포기할 수 있었다면 옛날에 그렇게 했을 것”이라며 쿨하게 거절하는 도시의 교수님이니까 말이다. 오직 내 첫사랑에게만 따뜻한.

순정품 방귀남 a.k.a 차윤희의 남자
진짜 사랑은 미안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테리ㄱ…… 아니, 방귀남(유준상)은 존스 홉킨스 출신의 유능한 의사이지만 “힘쓰는 건 제가, 머리 쓰는 건 아내가” 하자고 집안일도 반으로 나누고, 처가에서 빌려간 돈으로 벌인 사업이 보기 좋게 실패해도 화를 내지 않는다. 논리력으로 무장한 우뇌 풀가동으로 감정이 아닌 이성의 힘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덕분이다. 관계 개선을 위해 서로 노력해야 한다고 자신의 아내 차윤희(김남주)를 타박하는 누이들에게 “원정경기 온 선수”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양보해 달라고 부탁을 하거나, 시할아버지의 제사 준비에 늦은 며느리에게 한마음으로 눈총을 주는 가족들을 향해 “할아버지는 제 와이프 얼굴도 모르잖아요?”라면서 직접 음식을 하며, 시어머니 병수발은 “무조건 며느리가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방말숙(오연서)에게 “딸은 서로 익숙하니까 더 편하겠지”라고 웃는 얼굴로 손을 내 저을 때도 좀처럼 그에게 반박을 하기가 어려운 것은 그래서다. 뿐만 아니라 논리에 더해 요령까지 있어서 “자기가 싫으면, 나도 싫어”, “어른들 설득하자, 내가 할게”, “나만 믿어” 주문 삼종 세트로 종종 차윤희 마음속의 작은 불만도 뿌리까지 도려내 버린다. 그러니 온 세상에 따뜻해도 걱정 할 것 없다. “자석!” 하고 외치면 와서 안기는 순정 마그네틱을 작동할 수 있는 건 오직 와이프뿐이니까 말이다.

글. 윤희성 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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