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요리만화인가, 개그만화인가. 정다정 작가의 웹툰 를 처음 접한 독자들은 한 번쯤 이런 의문을 품어보았을 것이다. 치킨과 떡국, 케이크와 오므라이스 등 종류를 불문하고 넘나들며 무언가를 ‘만든다’는 점에서는 요리에 관한 만화라 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 과정이 여느 개그만화 못지않게 웃긴다는 사실이다. 고수의 결혼 소식에 슬퍼하며 “이틀 굶은 암사자의 입 냄새가 나는” 고수풀을 넣어 매운탕과 셰이크를 만들고,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구워 직접 만든 판넬 남자친구와 식탁에 마주앉는다. 요리하는 내내 실수를 연발하는가 하면, 주방은 언제나 엉망진창이 돼 버린다. 도대체, 이 웃기는 만화의 정체는 뭘까.

“웹툰 담당자분이 ‘요리만화를 가장한 개그만화’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제 만화가 좀 재미있다고는 생각했지만, 개그 물인지는 정말 몰랐거든요. 그런데 진짜로 ‘개그’ 카테고리에 가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 순간 정말 충격이었어요. ‘내 만화가 개그만화라니! 이보시오 그게 무슨 말이요!’ 이런 심정? 그래서 그때부터 유머에 더 신경을 쓰게 됐어요.” 스스로 개그만화라 인정하긴 했지만, 요리를 대하는 정다정 작가의 태도는 누구보다 진지하다. 웹툰 연재를 시작하기 전, 블로그에 요리 사진을 올리고 자막을 넣는 순수한 취미활동에 매번 6시간 정도를 꼬박 투자할 수 있었던 것도 “요리를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은 여기에 를 보고 따라 할 독자들을 생각하는 책임감까지 추가됐다. 하나의 요리를 완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올린 레시피들을 쭉 공부하고, 공통으로 들어가는 재료와 과정을 추려서 구하기 어려운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대체하는 것은 기본이다. 중요한 건 비록 ‘야매’일지언정 요리 초심자들을 위한 길잡이는 되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다. “요리과정을 좀 더 세세하게 찍으려고 노력해요. 제가 요리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다른 분들이 실수하기 쉬운 부분을 스킵해 버리게 되니까 그런 부분이 조심스럽거든요.” 그래서 요리가 점점 늘어갈수록 걱정이라는 정다정 작가가, ‘마감과 함께하는 노동요들’을 추천해왔다.

1. LMFAO의
“LMFAO의 음악들이 굉장히 트렌디하잖아요. ‘Sexy And I Know It’도 ‘던 던 던 던’ 하는 비트가 살아있는 곡이예요. 이걸 들으면서 일을 하고 있으면, 혹시 자리를 뜨게 됐을 때 엄청나게 위험한 상황이 펼쳐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작업을 멈출 수가 없는 거죠. 진짜로 누군가가 제 엉덩짝에 채찍질을 막 가하고 있는 것 같아요. ‘빨리 마감하란 말이야!’ 이러면서. (웃음) 그리고 제목도 그렇지만, 가사 역시 되게 자신감 넘치거든요. ‘When I walk in the spot, this is what I see / Everybody stops and they staring at me’ 같은. 저도 이런 자세를 본받고 싶어요. 요리할 때 섹시….는 좀 아닌가? (웃음) 뭐, 섹시까지는 아니지만 ‘망쳐도 좋아’라는 느낌이랄까요.”
2. 샤이니의
“사실 이 노래에 비하면 ‘Sexy And I Know It’은 좀 여유가 있는 비트라고 할 수 있죠. 기본적으로 마감할 때는 몇 시간 동안 두 곡을 반복 재생하는데, 마감이 좀 더 임박할 때 듣는 노래는 ‘Lucifer’예요. ‘거부할 수 없는 너의 마력은 Lucifer’라든지 ‘나를 묶고 가둔다면 사랑도 묶인 채 미래도 묶인 채 커질 수 없는데’라는 가사의 비트를 들으면 좀 목탁 두드리는 소리 같은 느낌이 들어요. 어떻게 들으면 멜로디는 민요 같은 느낌이 있고요. 그 리듬에 맞춰서 작업을 계속하게 되는 거죠. 하아…. 정말 훌륭한 노동요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3. 옥상달빛의
“이 노래는 어느 날 TV에서 나오는 걸 듣고, 인터넷으로 물어물어 찾아 듣게 된 곡이에요. 경쾌하면서도 가벼운 피아노 반주와 두 여성 보컬의 나긋나긋한 음색이 잘 어울리는 노래죠. ‘오늘은 나 눈물을 참고 힘을 내야지 포기하기엔 아직은 나의 젊음이 찬란해’ 등 가사 또한 희망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해요. ‘Sexy And I Know It’이랑 ‘Lucifer’로 작업을 적당히 재촉하다가 잠시 쉬어갈 때 듣기 좋은 노래이기도 해요. 숨겨진 비화를 말씀드리면, 제가 방에서 이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없는 게 메리트라네~”하면서 크게 따라 부르고 있었더니 엄마가 방문을 벌컥 열고 “보험 광고 노래 좀 그만 불러라!”라고 하신 적이 있어요. 가사를 특정 보험 브랜드로 착각하신 거죠. (웃음)”

4. James Morrison의
“제임스 모리슨은 제가 외국 생활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된 사람이에요. 이렇게 말하니까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그건 아니고, 그냥 저 혼자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웃음) ‘You Give Me Something’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나에게 이런 존재예요’라고 말하면서 그에 대한 고마움 같은 감정들을 쓴 노래에요. 굉장히 달달한 분위기가 느껴져요. 그래서 마감할 때는 들으면 안 될 것 같고, 일이 끝난 후 비 오는 창가에 여유롭게 앉아서 들으면 좋을 것 같아요. 커피 한 잔을 들면서 잔잔하게 감상하는 거죠. 비록 연인은 없지만,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곡이기도 해요.”
5. Five For Fighting의
“‘100years’ 역시 외국 생활 중에 알게 된 곡이에요. 가사를 보면, 나이별로 하는 일들을 쭉 옮긴 건데 전체적으로는 청춘을 응원하는 내용이에요. 이렇게 여유롭게, 혹은 잉여스럽게 살아도 괜찮으니까 ‘주눅 들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 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아요. 멜로디도 피아노 반주라 굉장히 서정적이거든요. 이 곡을 들으면 울적할 때도 ‘이게 끝이 아니니까 힘을 내자’라는 느낌이 들어요. 마감 끝난 직후에 들으면 아, 이번 주도 해냈다는 생각이 들면서 굉장히 행복해져요. 혹시 어떤 일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이 노래를 꼭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별표 여덟 개! (웃음)”

조금씩 어긋나고 삐끗해야 더 큰 웃음을 줄 수 있는 것이 의 숙명. 하지만 정다정 작가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을 알면서도 꼭 도전해보고 싶은 요리가 있다. “파이를 굉장히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런데 베이킹은 야매로 해서는 제대로 될 수가 없거든요. 밀가루 몇 그램, 베이킹 소다 몇 그램 이런 식으로 정확하게 계량해야 빵이 만들어지는, 연금술 같은 거니까요. 그리고 저희 집에 오븐이 없잖아요. 오븐을 사지 않는 이유는, 사실 한국 가정 중에는 오븐 없는 곳이 되게 많아요. 그런 분들의 눈과 손이 돼서 언젠가는 밥솥으로 꼭 성공해 보이고 싶어요. 아직 방법은 찾지 못했지만.” 그러니 이제, 도대체 왜 오븐을 사지 않느냐고 정다정 작가에게 더는 묻지 말자. 우리는 그저 매주 토요일 그의 좌충우돌 요리 도전기를 맛있게 즐기기만 하면 될 일이다. 야매요리에도 나름의 소신은 있기 마련이니까.

글. 황효진 기자 seventeen@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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