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온스타일 (이하 )에서 아쉽게 탈락한 디자이너 김성현에게는 의외의 매력이 있다. 까칠하고 시크한 줄 알았던 김성현은 에서 깜짝 생일파티에 눈물을 글썽거릴 정도로 순수하고, 런웨이에 홀로 남은 탈락자의 머리를 쓰다듬어줄 만큼 따뜻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인터뷰에서도 김성현은 예상 가능한 범주를 벗어났다. 가령, 강한 인상 때문에 오해를 받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도 ‘예’ 혹은 ‘아니오’라는 전형적인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어떤 심리학자가 말하길 사람들이 거울을 볼 때 자신의 예쁜 부분만 본대요. 결국 자기도 자기가 어떻게 생긴 지 잘 모르는 건데, 남들이 생긴 걸로 판단하는 것 자체가 별로인 것 같아요.” 대화를 나눌수록 궁금해지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김성현을 어떤 단어나 이미지로 단정 짓기 힘들었다. 하긴, 스스로도 “저도 저에 대해 자세히 모르겠어요. 어떨 때는 되게 여린 것 같고, 어떨 때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독한 것 같다”고 말했으니 어쩌면 그게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니 김성현을 설명하는 7개의 키워드를 통해 그를 파악하겠다는 욕심은 일찌감치 버리는 게 좋다.
“우리는 다 다르게 살고 있잖아요. 그런데 특이한 헤어스타일을 하면 ‘쟤는 왜 저래’ 하면서 손가락질하고 심지어 욕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 헤어스타일을 더 오래 유지했던 건 오기 때문이었어요. 4년을 버텼다기보다는, 내가 비록 몰골은 이래도 당신들보다 더 도덕적인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스타일이 튀면 어디 가서 나쁜 짓을 못해요. 남들이 다 기억을 하니까. 그리고 이 머리는 자르기도 쉬워서 미용실도 안 갔어요. 염색도 직접 하고, 길다 싶으면 그냥 막 잘라버리고. 관리라기보다는 방치에 가까웠죠.”
“제가 평생 만든 옷보다 에서 만든 옷이 더 많았어요. 그만큼 에 나갈 준비가 안됐었어요. 그런데 더 바보 같았던 건, 오디션을 보고 방송에 출연하기 전까지 2~3주 정도의 준비기간이 있는데 그 때 좋은 옷이나 디자인을 많이 봤어야 했는데 그냥 평소처럼 막 영화 보러 다녔어요. 사람이 위기에 몰리면 자기 잠재력이 발휘된다고 하잖아요. 전 제가 그럴 거라고 충분히 믿고 있었는데 저한테 속은 거죠. 에서 제가 잘하는 건 딱 하나였어요. 재봉틀 고치는 거. (웃음) 원래 현실도피를 잘하는 사람이라 이전의 삶은 제가 언제 행복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말 재미없고 아무런 자극도 없었어요. 그런데 촬영을 하면서 옷 만드는 거 빼고 다 좋았어요. 누군가를 이겨야 된다는 마인드는 아무도 안 가졌을 것 같아요. 서바이벌을 떠나서 숙소에서 같이 먹고 자니까 진짜 가족같이 친했거든요. 제가 막 머리 쓰다듬어 주면서 ‘난 너 좋아, 너랑 친해’라고 말하는 성격은 아닌데, 정말 보기 안쓰러운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러면 제 옷은 이 정도로 내보내도 되겠다 싶어서 훅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 옷 도와줬어요. 알고 보면 내가 제일 못나고 제일 안쓰러운 것도 모르고. 하하.”
“작업 끝나고 숙소에 돌아가면 바로 안자고 야식을 시켜 먹었어요. 하루는 치킨, 하루는 족발, 하루는 닭볶음탕, 이런 식으로. 처음엔 다 같이 먹다가 나중엔 안 먹는 사람도 생겼는데, 저는 진~짜 매일 야식 먹었어요. (웃음) 제가 치킨 좋아하는 거 아니까 제 생일 땐 PD 누나들이 치킨을 맛별로 15마리나 시켜주셨어요. 나중에 촬영 다 끝나고 PD님이 이전 시즌보다 식비가 3배나 더 나왔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버지가 가끔씩 집에 오셔서 용돈을 주시긴 했는데 그것도 불규칙했어요. 돈이 없으니까 먹고 싶거나 사고 싶은 건 고사하고, 학교 갈 차비도 없었어요. 그나마 중학교 때는 걸어서 30분 정도 걸렸지만 고등학교는 진짜 더럽게 멀었거든요. (웃음) 그래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예식장에서 뷔페 세팅하는 일을 했어요. 그 땐 최저임금이랄 것도 없이 시급 2천 원 정도 받았던 것 같아요. 학생이니까 매일 일할 수는 없고, 월, 화, 수요일엔 공부하고 목, 금, 토, 일요일에는 일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 때보다 힘들었던 적은 없었어요.”
“고등학교 때 인문계, 자연계로 나눠놓고 자기 꿈을 찾아가는 게 진짜 꿈을 찾는 건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선생님들이 ‘넌 수학을 잘하니까 자연과학대나 수학교육과를 가라’고 하셔서 그게 제 꿈인가 보다 생각했죠. 제가 정말 좋아하는 걸 못 찾으니까 나중엔 그게 제 꿈인 척도 했어요. 그런데 제가 멋 부리는 걸 좋아했어요. 경주에 살았는데 옷은 항상 부산 남포동까지 가서 사고, 입어봤는데 아니다 싶으면 수선비 아끼려고 직접 손바느질해서 다 줄였어요. 라인이고 뭐고 그냥 막 잡아놓고 바느질하니까 나중엔 다 뜯어지긴 했지만. (웃음) 그렇게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진짜! 농담 아니고요. 안성탕면에 칼슘이 첨가돼 있거든요. 어렸을 때 아버지가 “뭐 사갖고 갈까”라고 물어보시면 “일단 치킨을 사고 마트 가서 장 좀 봐오세요”라고 말했어요. 그러면 만날 안성탕면을 사오시는 거예요. 너무 질려서 제발 다른 라면 좀 사오라고 말하면 아버지가 하시는 얘기가 “안성탕면에 칼슘이 첨가돼 있어서 아버지 입장에서는 이걸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하셨어요. 안성탕면 덕분에 키가 꾸준히 컸고, 예전에 쇼핑몰 모델을 한 적도 있어요. 지금은 절대 라면을 안 먹어요.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 김밥, 라면, 냉동 떡갈비에요. 진짜 토할 정도로 먹어가지고.
자취 11년차인데 집에서 제일 많이 해먹는 음식은 한식, 그 중에서도 닭볶음탕이에요. 예전엔 손질 안 해놓은 닭을 사서 요리했는데 요즘엔 또 손질을 다 해주시더라고요. 핏물을 뺄 때 진짜 이해가 안 가는 게, 닭을 우유에 담가놓으면 비린내가 없어진대요. 그냥 쌀뜨물로 하면 되는데, 왜 우유를 거기다가 넣어요? 우유가 아깝잖아요. 어떤 분은 저지방 우유를 넣는다는데, 진짜 아까워요!”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건 감각인 것 같아요. 추상적인 말 같지만, 제가 말하는 감각에는 안목도 포함돼 있어요. 옷을 봤을 때 이게 좋은 디자인인지 싸 보이는 디자인인지, 원단을 볼 때도 이 원단과 어떤 걸 믹스매치하면 좋은지, 사람들이 많이 입고 다니는 기성복이 왜 잘 팔리는지 아는 것, 이런 게 다 안목이거든요. 디자이너로서 로망이 있다면 어떤 여자가 제 옷을 샀는데, 그걸 평소에 입는 것도 좋지만 정말 특별한 날에 입는 거예요. 결혼식을 제외한 가장 특별한 날 가장 입고 싶은 옷이 됐으면 좋겠어요.”
글. 이가온 thirteen@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장경진 three@
“우리는 다 다르게 살고 있잖아요. 그런데 특이한 헤어스타일을 하면 ‘쟤는 왜 저래’ 하면서 손가락질하고 심지어 욕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 헤어스타일을 더 오래 유지했던 건 오기 때문이었어요. 4년을 버텼다기보다는, 내가 비록 몰골은 이래도 당신들보다 더 도덕적인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스타일이 튀면 어디 가서 나쁜 짓을 못해요. 남들이 다 기억을 하니까. 그리고 이 머리는 자르기도 쉬워서 미용실도 안 갔어요. 염색도 직접 하고, 길다 싶으면 그냥 막 잘라버리고. 관리라기보다는 방치에 가까웠죠.”
“제가 평생 만든 옷보다 에서 만든 옷이 더 많았어요. 그만큼 에 나갈 준비가 안됐었어요. 그런데 더 바보 같았던 건, 오디션을 보고 방송에 출연하기 전까지 2~3주 정도의 준비기간이 있는데 그 때 좋은 옷이나 디자인을 많이 봤어야 했는데 그냥 평소처럼 막 영화 보러 다녔어요. 사람이 위기에 몰리면 자기 잠재력이 발휘된다고 하잖아요. 전 제가 그럴 거라고 충분히 믿고 있었는데 저한테 속은 거죠. 에서 제가 잘하는 건 딱 하나였어요. 재봉틀 고치는 거. (웃음) 원래 현실도피를 잘하는 사람이라 이전의 삶은 제가 언제 행복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말 재미없고 아무런 자극도 없었어요. 그런데 촬영을 하면서 옷 만드는 거 빼고 다 좋았어요. 누군가를 이겨야 된다는 마인드는 아무도 안 가졌을 것 같아요. 서바이벌을 떠나서 숙소에서 같이 먹고 자니까 진짜 가족같이 친했거든요. 제가 막 머리 쓰다듬어 주면서 ‘난 너 좋아, 너랑 친해’라고 말하는 성격은 아닌데, 정말 보기 안쓰러운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러면 제 옷은 이 정도로 내보내도 되겠다 싶어서 훅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 옷 도와줬어요. 알고 보면 내가 제일 못나고 제일 안쓰러운 것도 모르고. 하하.”
“작업 끝나고 숙소에 돌아가면 바로 안자고 야식을 시켜 먹었어요. 하루는 치킨, 하루는 족발, 하루는 닭볶음탕, 이런 식으로. 처음엔 다 같이 먹다가 나중엔 안 먹는 사람도 생겼는데, 저는 진~짜 매일 야식 먹었어요. (웃음) 제가 치킨 좋아하는 거 아니까 제 생일 땐 PD 누나들이 치킨을 맛별로 15마리나 시켜주셨어요. 나중에 촬영 다 끝나고 PD님이 이전 시즌보다 식비가 3배나 더 나왔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버지가 가끔씩 집에 오셔서 용돈을 주시긴 했는데 그것도 불규칙했어요. 돈이 없으니까 먹고 싶거나 사고 싶은 건 고사하고, 학교 갈 차비도 없었어요. 그나마 중학교 때는 걸어서 30분 정도 걸렸지만 고등학교는 진짜 더럽게 멀었거든요. (웃음) 그래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예식장에서 뷔페 세팅하는 일을 했어요. 그 땐 최저임금이랄 것도 없이 시급 2천 원 정도 받았던 것 같아요. 학생이니까 매일 일할 수는 없고, 월, 화, 수요일엔 공부하고 목, 금, 토, 일요일에는 일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 때보다 힘들었던 적은 없었어요.”
“고등학교 때 인문계, 자연계로 나눠놓고 자기 꿈을 찾아가는 게 진짜 꿈을 찾는 건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선생님들이 ‘넌 수학을 잘하니까 자연과학대나 수학교육과를 가라’고 하셔서 그게 제 꿈인가 보다 생각했죠. 제가 정말 좋아하는 걸 못 찾으니까 나중엔 그게 제 꿈인 척도 했어요. 그런데 제가 멋 부리는 걸 좋아했어요. 경주에 살았는데 옷은 항상 부산 남포동까지 가서 사고, 입어봤는데 아니다 싶으면 수선비 아끼려고 직접 손바느질해서 다 줄였어요. 라인이고 뭐고 그냥 막 잡아놓고 바느질하니까 나중엔 다 뜯어지긴 했지만. (웃음) 그렇게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진짜! 농담 아니고요. 안성탕면에 칼슘이 첨가돼 있거든요. 어렸을 때 아버지가 “뭐 사갖고 갈까”라고 물어보시면 “일단 치킨을 사고 마트 가서 장 좀 봐오세요”라고 말했어요. 그러면 만날 안성탕면을 사오시는 거예요. 너무 질려서 제발 다른 라면 좀 사오라고 말하면 아버지가 하시는 얘기가 “안성탕면에 칼슘이 첨가돼 있어서 아버지 입장에서는 이걸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하셨어요. 안성탕면 덕분에 키가 꾸준히 컸고, 예전에 쇼핑몰 모델을 한 적도 있어요. 지금은 절대 라면을 안 먹어요.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 김밥, 라면, 냉동 떡갈비에요. 진짜 토할 정도로 먹어가지고.
자취 11년차인데 집에서 제일 많이 해먹는 음식은 한식, 그 중에서도 닭볶음탕이에요. 예전엔 손질 안 해놓은 닭을 사서 요리했는데 요즘엔 또 손질을 다 해주시더라고요. 핏물을 뺄 때 진짜 이해가 안 가는 게, 닭을 우유에 담가놓으면 비린내가 없어진대요. 그냥 쌀뜨물로 하면 되는데, 왜 우유를 거기다가 넣어요? 우유가 아깝잖아요. 어떤 분은 저지방 우유를 넣는다는데, 진짜 아까워요!”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건 감각인 것 같아요. 추상적인 말 같지만, 제가 말하는 감각에는 안목도 포함돼 있어요. 옷을 봤을 때 이게 좋은 디자인인지 싸 보이는 디자인인지, 원단을 볼 때도 이 원단과 어떤 걸 믹스매치하면 좋은지, 사람들이 많이 입고 다니는 기성복이 왜 잘 팔리는지 아는 것, 이런 게 다 안목이거든요. 디자이너로서 로망이 있다면 어떤 여자가 제 옷을 샀는데, 그걸 평소에 입는 것도 좋지만 정말 특별한 날에 입는 거예요. 결혼식을 제외한 가장 특별한 날 가장 입고 싶은 옷이 됐으면 좋겠어요.”
글. 이가온 thirteen@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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