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정기용
a. 건축가. 1945년생. 2011년 3월 11일 대장암으로 타계.
b. 한국 현대건축 2세대의 대표적 건축가. 미술대학 응용미술과와 대학원 공예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에서 건축 공부. 1996년부터 2008년까지 전북 무주에서 면사무소, 버스정류장, 납골당 등 30여 개의 공공 건축 프로젝트 진행. 순천, 제주, 김해 등 전국 6개 도시에서 어린이 도서관인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 진행.
c. 지난 3월 8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의 주인공. 의 정재은 감독이 만든 는 정기용과 함께 돌아 본 무주 프로젝트 현장과 2011년 일민 미술관에서 열린 건축전 ‘감응: 정기용 건축’의 진행 과정을 담은 작품.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늘과 바람과 나무에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 누구보다 이 땅을 절절히 사랑했던 사람.
연관어:
a. 정기용의 저서. 2008년 발간. 총 5권으로 기획된 정기용의 저작/작품집 중 세 번째 책. 제목의 ‘감응’(感應)은 그의 건축 철학을 요악한 것으로 땅이 가진 잠재력과 그 땅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루어낸 작용과 반작용이 감성적으로 일어나는 데서 건축의 형상이 싹트게 되는 과정을 의미.
b. 정기용의 건축 철학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무주 프로젝트에 대한 저서. “건축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삶을 조직하고 사회를 다루는 분야”라고 믿으며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했던 고집불통 낭만주의자의 한계와 성취에 대한 솔직한 기록.
장돌뱅이 같은 건축가가 있었다. 성대결절로 마이크에 의존하면서도 끊임없이 말하기를 좋아한 건축가가 있었다. 옳지 않다 생각되면 불같이 화를 내고 옳다고 믿으면 남 말은 들은 척도 않고 고집을 부리는 건축가가 있었다. 故 정기용 선생. 무엇보다 그는 “집을 짓는 사람이 아니라 한 시대를 걱정” 하고 “공간으로 모순을 지적”한 사람이자 “진보나 낭만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인”이라 믿은 이였다. 무주 안성면 주민자치센터의 설계를 맡은 정기용이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은 주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였다. 사랑방? 독서실? 휴게실? 돌아온 대답은 “면사무소는 뭐 하러 짓는가? 목욕탕이나 지어주지”였다. 안성면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는 평생 노동으로 늙고 병든 몸을 편히 녹일 수 있는 공간이 가장 필요했다. 그가 만든 목욕탕이 있는 주민센터는 주민들이 함께 공동체를 지속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또한 그는 “군수만 비와 햇볕을 피해 앉고 우리는 땡볕에 서” 있던 주민들에게 등나무가 자연스레 그늘을 드리우는 공설운동장을 만들어 되돌려주었다. 공공 건축은 페티시즘을 자극하는 그럴듯한 외형이 아니라 이를 이용할 주체인 주민이 가장 필요로 하는 욕망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것이 정기용이 믿고 실천했던 원칙이었다.
첩첩산중의 작은 도시 무주에서 정기용은 반딧불이가 있고 별이 얼굴 위로 쏟아져 내리고 너울너울 춤추는 구릉이 포근하게 감싸는 땅을 만났다. 그래서 그곳에 지어질 건축은 무엇보다 땅과 맞서지 않아야 했다. 그는 필연적으로 인공적이고 자연을 훼손할 수밖에 없는 건축의 한계를 인정했다. 동시에 건축을 통해 산업화 과정에서 수탈당했고 탈산업화사회에서 소외당한 농촌 공동체의 콤플렉스를 치유하고 농촌 주민들을 자기부정에서 회복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가 지은 작은 천문대와 소박한 버스 정류장은 그곳을 찾고 머무는 사람들에게 그 땅에 사는 이유와 자부심을 되돌려주었다. 정기용에게 건축은 가장 높거나 가장 화려한 것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와 다음 세대에 빚진, 제한된 시대와 가치를 반영하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했다. 그는 자주 “문제도 이 땅에 있고 그 해법도 이 땅에 있습니다. 그걸 귀담아 들을 자세만 있으면 되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제주 4.3 평화 공원 설계 경기에 참가했던 그는 가장 무서운 폭력이 국가의 폭력이라고 했다. ‘감응’은 그 폭력에 대응하는 방법이었다. 지금 강정마을과 구럼비 바위에 새겨지고 있는 폭력의 역사를 멈추는 방법 또한 여기에 있다. 건축의 철학을 묻지 않고 그곳이 삶의 터전인 주민의 욕망에 귀 닫고 오직 토건의 경제성과 안보의 현실논리만 내세우는 이 나라는 죽어가면서도 끝까지 건축의 공공성과 민주화를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이 건축가의 목소리를 뼈아프게 되새겨야 한다.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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