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와 소녀시대는 웃었고, 김태희는 울었다. 2011년 12월 막을 내린 김태희의 일본 드라마 진출작 이 평균 시청률 9% 대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거뒀다. K-POP의 선전, 장근석의 붐으로 ‘두 번째 전성기’란 수식어를 얻은 지난해 한류로서는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게다가 은 소위 프라임 시간대라 불리는 밤 9시에 방영됐고, 김태희와 짝을 맺은 배우는 일본 톱스타라 할 수 있는 니시지마 히데토시였다. 일본 내 일부 언론에서는 “한류 진짜 존재하기는 하나”라는 타이틀의 기사를 실었고, 종합 게시판 사이트 투채널(2ch.net)을 중심으로는 한류를 비꼬는 글이 확산됐다. 분명 한류의 인기를 의심케 하는 성적이었다.
드라마 로 화려했던 장근석도 영화 으로 실패를 맛봤다. 1월 21일 일본에서 공개된 은 일본 최대 배급사인 도호 계열 극장에서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첫 주 박스오피스 6위에 머물렀다. 둘째 주 성적은 9위. 2월 현재까지 총 관객은 15만 명 정도다. 지난해 막걸리 CM, 로 한창 주가를 올린 장근석은 그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게다가 의 원작은 오가와 야요이의 인기 동명 만화다. 입증된 한류 스타의 신작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한류 톱스타의 출연이란 타이틀이 시청률을 올리지 못한다. 일견 성공 일색으로만 보이는 2012년 한류지만 실은 다소 찜찜한 실패도 안고 있다. 화려한 한류 스타들, 그들은 어디서, 왜 작아질까.
한류 콘텐츠 안에서만 빛나는 한류스타
돌이켜보면 김태희의 실패는 최지우의 실패와 연결된다. 2006년 다케노우치 유타카와 함께 출연한 최지우의 일본 드라마 주연작 는 성공하지 못했다. 평균 시청률 15%를 밑돌았고, 이렇다 할 화제를 남기지 못한 채 끝났다. 2004년 의 인기로 ‘지우 히메’란 별칭까지 얻은 그녀의 작품으로는 몹시 아쉬운 성적이었다. 류시원, 이정현, 박용하 등 카메오 혹은 조연으로 출연했던 다른 한류 스타들의 일본 드라마도 별다른 결과를 남기지 못한 채 종영했다. 박용하의 , 류시원의 등은 그저 일회성 화제였다. 화려한 날들의 한류였지만 그 인기가 일본 드라마에서는 통하지 못한 셈이다. 아쉽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한류 스타는 한류 콘텐츠 안에서만 빛난다. 2011년 일본 내 한류의 가장 큰 성과는 한 때 붐에 불과했던 한류 문화가 하나의 문화적 장르로 정착했다는 것이다. 지속적인 인기 콘텐츠의 생산과 K-POP의 성공적인 안착은 한류 시장의 안정적인 토대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 성과가 일본 TV에서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일본의 한 연예 평론가 사토 유마는 “한류는 쟈니즈, AKB48와 마찬가지다. 일부의 고정된 팬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콘서트 티켓, 관련 상품 판매 등은 열광정인 고정 팬들의 수요로 유지되지만 그들이 TV를 보진 않기에 시청률을 올려주진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류 드라마 인기는 DVD 시장에서 시작되고, TV 전파를 탄다 하더라도 지상파보다는 유료 위성 채널이 중심이다. TV는 그저 한류의 PR 역할을 한다. 사토 유마는 “방송국 쪽에서는 자회사가 한류 콘텐츠의 판권을 다수 확보하고 있으니 당연히 방송을 많이 내보낸다. 엄밀히 말하면 시청률을 위한 프로그램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해 7월 TBS에서 방송된 생활 정보 프로그램 은 장근석 특집을 다뤘음에도 3.9%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TV와 부가시장의 위치가 명확히 뒤바뀐 셈이다.
한류스타를 기용해 일본 드라마로 성공하려면
한류라는 이름으로 가능한 시장의 크기가 있다. 소녀시대가 일본 6개 도시 아레나 투어에서 동원한 14만 명이란 숫자, 장근석이 데뷔 싱글로 기록한 13만 장이라는 판매량. 이는 확실히 한류 스타의 이름만으로 이뤄낸 시장의 크기다. 하지만 한류가 한류의 영역을 벗어날 때 혹은 팬 문화, 부가시장의 영역을 벗어나 TV, 일본 문화의 내부로 들어설 때, 그 시장의 크기는 오리무중이 된다. 김태희의 은 애초 시장 계산이 틀린 작품이었다. 일본 안방극장에서, 이제 갓 이름을 알린 한국 여배우가 톱스타 행세를 하는 연기를 원하는 일본 대중은 없다. 은 한류 팬들의 마음을 지레짐작해 트렌디드라마로 반죽한 뒤, 일반 대중 앞에 풀어놓은 촌극에 가까웠다. 알맹이도, 번지수도 틀렸다. 장근석의 이 실패한 이유는 관객의 층을 한류 팬에서 영화 팬으로 확장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15만이란 숫자는 장근석의 팬으로 기대해볼 수 있는 최소한의 최소한이었다. 단지 일본 원작 만화에 한류의 바람을 얹어 만든 영화는 스타 팬미팅 용 영화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한류 스타를 기용해 일본 드라마를 제작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합작이 필요하다. 이는 실로 서로 다른 장르의 문화, 그리고 서로 다른 나라의 문화가 결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완성도 역시 여기서 비롯된다. 한류 스타들의 일본 드라마 시청률이 저조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드라마로 성공한 스타가 영화로 실패하는 것도 일견 예견된 일인지 모른다. 지난 10여 년간 일본에서 한류는 꽤 탄탄한 지반을 다져왔다. 하지만 일본 문화와의 융합에 관해서는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저 스타의 이름을 빌리는 드라마, 붐, 유행에 의존해 만든 작품은 예견된 실패작이다. 일본 드라마 안에서도 빛나는 한류 스타를 원한다면 이제는 문화의 ‘진출’이 아닌 ‘만남’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아직은 반쪽짜리 한류다.
글. 정재혁 자유기고가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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