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회 TV조선 토-일 저녁 7시 50분
고봉실(김해숙)씨는 평화로운 남해 마을에서 꽃밭을 가꾸며 살던 행복한 주부였다. 어느 날, 늘 커다란 버팀나무 같았던 남편이 엄청난 빚과 불륜의 증거만을 남기고 사고사하자 곱게 꾸며놓은 정원 같던 봉실의 삶도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그리고 가진 거라곤, 화초를 살리고 그 어떤 밥상도 뚝딱 차려내는 섬세한 ‘손맛’ 뿐이던 그녀는 정든 고향과는 너무도 다른 동네 이태원에서 그 유일한 특기인 손맛으로 새로운 일과 사랑의 성공기를 만들어간다. 요컨대 이 드라마는 줌마렐라 드라마의 50대 여성 버전이다. 50대 줌마렐라 드라마라고 특별히 명명하는 것은, 흔히 인생 제 2막을 열기 직전의 삶이 허상임을 깨닫는 미씨 줌마렐라 드라마 공식과 달리 기존의 전업주부 인생 또한 원숙한 시선으로 긍정하는 태도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당당한 워킹맘 장녀 윤영(이승민)과 신세대 대학생 막내딸 인영(루나)의 시선으로 볼 때, 아버지의 세계를 벗어난 엄마 봉실의 삶은 애초에 상상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엄마의 자리는 늘 익숙한 부엌이나 정원 어디였으므로. 하지만 온실 속 화초 같던 봉실은 딸들의 상상과 달리 낯선 이국적 동네 이태원에서도 금방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그 힘은 봉실이 그동안 엄마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쌓아온 가사노동의 기술과 그 연장선이었던 꽃밭 주인으로서의 경험에서 기인한 것이다. 봉실이 데이비드 김(천호진)에게 ‘집 밥’의 대가로 선불 500만 원을 요구하는 장면은 고봉실이 가진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통쾌함마저 불러일으킨다. 그리하여, 는 소설 가 재해석했던 ‘엄마라는 텅 빈 기호’의 의미를 줌마렐라 드라마의 상상력으로 구현한다.

글. 김선영(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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