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의 주인공 진유진(정진운)은 무례하다. 입학 면접을 볼 때나, 신해성(강소라)의 부탁을 거절할 때나 그는 좀처럼 타인을 배려하거나 겸손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드라마는 그러한 진유진의 성격에 대해 그가 록밴드를 하는 뮤지션 지망생이라는 점 외에는 별다른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친구들이 열광하는 아이돌에 대해 “음악에는 열정도 관심도 없으면서 남들이 시키는 대로 똑같이 웃고 똑같은 목소리로 노래 부르고. 그거 징그럽다고 생각 안 해? 사람이 인형도 아니고”라고 필요 이상의 독설을 하거나 “사람답게 내가 하고 싶은 음악 하고 싶어요”라고 포부를 밝히는 진유진의 태도에는 밴드 음악 이외의 것들에 대한 무시와 편견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것은 진유진의 시선이 아니라 이 드라마가 밴드에 대해, 음악에 대해 갖고 있는 상식이다. 오만한 진유진에게 전직 록커이자 교장인 주정완(권해효)은 “내가 록은 좀 아는데, 그거 배고파”라고 말한다. 배고픔을 감수하기에 고고하고, 그런 근거로 배부른 아이돌 음악을 비난하는 것이 정당화 되는 것이 요컨대, 가 설정한 ‘록 스피릿’인 것이다.
드라마가 록밴드를 보는 시대착오적인 시선
같은 날 방송을 시작한 tvN 역시 비슷한 형편이다. 부유층 자제들이 다니는 정상 고등학교로 강제 전학하게 된 안구정화 밴드 멤버들은 하나같이 궁박하다. 품행은 불량하고 정서는 불안하다. 멤버들의 캐릭터는 내레이션을 통해 노골적으로 명명되지만, 각자의 근본적인 면면은 유사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이들은 록밴드라는 자신이 선택한 소속 때문에 변별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태생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게 된다. 정상고의 밴드부와 안구정화 밴드가 각각 피아노와 전자 기타로 음악 대결을 하는 모습은 그런 점에서 상징적이다. 비록 음악적 영감을 핑계로 여학생에게 추근거리고, 집단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다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안구정화 밴드는 선의를 가진 피해 집단이다. 이들은 가난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을 담보하지 않는 음악을 선택한 록밴드이기 때문이다.
록밴드의 수익구조에 대해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두 드라마가 록밴드라는 소재를 지극히 평면적이고 시대착오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들은 록밴드를 기성세대의 획일적인 기준을 탈피한 대안으로 활용하고 싶어 하지만, 록음악이 반사적으로 독립성을 상징하던 시절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 기존의 스타 시스템을 통해 성공을 거둔 아이돌 밴드가 국내외에서 출현 했으며, 현역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록밴드를 가욋활동으로 병행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활동 형태는 지극히 아이돌이지만 곡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물론 무대 밖의 패션에도 영향을 미치는 지드래곤의 경우는 밴드 활동 여부와 무관하게 록스타의 지위를 획득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드라마 바깥의 음악은 점점 장르의 구분이나 밴드라는 활동 형태의 규정에서 자유롭게 음악을 생산하고 향유하는데, 드라마 속의 록밴드만이 여전히 케케묵은 클리셰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청춘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물론 모든 드라마가 주인공의 직업 묘사에서 완벽한 리얼리티를 성취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영화 이나 SBS 처럼 향수를 자극하며 전성기 회복을 꿈꾸는 이야기가 아니라 십대 주인공을 통해 오늘의 청춘을 거론하는 작품이 현실 반영에 게을러서는 곤란하다. ‘록’ 이상의 구체적인 이해를 마련하지 못한 진유진과 안구정화 밴드의 음악은 그 자체로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투자와 세습이라는 자본주의의 규칙에 균열을 내기 위해 동원되는 낡은 신화로 소모될 뿐이다. 결국 록밴드란 어른들이 설정한 안티테제의 대조적인 무엇, 다른 직업으로 대체되어도 상관없는 액세서리 수준의 설정이다. 두 드라마 모두 주인공의 록밴드가 공연을 하다가 경찰에 의해 제지를 당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는 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드라마는 록밴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록밴드의 위험한 시끄러움이 필요할 뿐이었던 것이다.
지난해 방송된 KBS 는 록밴드에 생활의 실존감을 불어 넣었고, 방송중인 Mnet 는 거창하게 멋 부린 문장 없이도 록밴드를 하는 즐거움에 대해 설명한다. 의 첫 번째 시즌에서 송삼동(김수현)은 자신이 가진 수많은 약점들을 음악을 통해 극복하는 인물이었으며, 는 연애담에 집중하는 와중에도 라면가게라는 배경을 무의미하게 방치하지 않았다. 방송에서 록밴드의 실제에 접근하는 것도,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의 직업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실현 가능한 일들인 셈이다. 그러니 가죽 옷을 입고, 퉁명스럽고, 반항적이지만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런 태도를 보여줘야 하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진유진과 안구정화 밴드가 “남들이 시키는 대로 똑같이 웃고 똑같은 목소리로 노래 부르”는 지금의 상황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록밴드가 인형도 아니고, 닥치고 가기에는 청춘이 그리 호락호락 하지가 않다. 청춘 드라마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눈높이는 더더욱 그러하고 말이다.
글. 윤희성 nine@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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