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스타일 밤 11시
새로운 시즌을 앞둔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대개 이전 시즌의 하이라이트 방송을 보여주는 것으로 홍보를 대신한다. 그런 점에서 KBS ‘패션 넘버 5’ 팀이 직접 만든 옷을 입고 런웨이를 걷고 실제 (이하 )의 심사위원들에게 평가까지 받는 는 자칫 밋밋할 수 있는 의 시작에 재기발랄함을 더할 수 있는 기획이었다. 그러나 ‘패션 개그를 하는 개그우먼들의 체험기’라는 아이디어만 붕 떠있을 뿐, 그것을 위트 있게 풀어내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제작진은 ‘파격적인 레트로 패션을 제안하라’는 미션만 던져준 채 가장 중요한 작업실에서의 상황극을 허안나, 장도연, 박나래에게 일임했지만, 완성된 옷을 가지고 개그를 해왔던 세 개그우먼은 원단을 고르고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신경전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다.

키와 나이를 지적하며 유치하게 싸우던 셋은 간호섭 교수의 혹평이 이어지자 갑자기 서로의 옷을 칭찬하더니 느닷없이 상대방의 소품을 망가뜨리며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캐릭터도, 명분도, 재미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콩트에는 오로지 런웨이에 오르기 직전까지 무엇이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압박감만이 존재했다. 아무도 이 상황에 몰입하지 못하니, 말도 안 되는 옷을 입고 패션을 논하는 뻔뻔한 지원자와 온갖 전문용어를 갖다 붙이며 옷을 평가하는 뻔뻔한 심사위원의 맞대결 구도도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두 개의 수세미로 가슴을 표현한 장도연의 옷에 대해 “자칫 잘못하면 경박스럽게 보일 수 있다”던 김석원 디자이너의 평가처럼, 는 서바이벌의 절박함을 경박하게 만들었다. 도저히 박수를 받을 수 없는 진부한 에피타이저였다.

글. 이가온 thir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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