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촬영 스케줄 있으세요?” “없는데요, 지금 저한테 데이트 신청 하시는 거에요?” 편안한 인터뷰를 위해 가볍게 던진 말이었고, 간단하게 예, 아니오로만 대답해도 되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장서원은 이렇게 받아쳤다. 그것도 능글맞은 미소를 머금고 여유롭게 뒷짐을 진 자세로. 이 배우, 예사 신인이 아니다.

유치원 학예회부터 군 MC까지

그는 현재 SBS 에서 스턴트우먼 길라임(하지원)의 선배 황정환 역으로 출연하고 있다. 거친 몸싸움이 벌어지는 액션스쿨에서 실실 웃으며 “(휴대폰 번호) 6159가 ‘돈 잘 법니다’, 걔 맞지?”와 같은 대사를 툭툭 내뱉는 정환은 길지 않은 분량에도 기억에 남는 캐릭터다. 하지만 ‘데이트 신청’과 같은 농담은 캐릭터의 영향보다도 “학예회 무대를 혼자 휘젓고 다녔던” 유치원 시절부터 몸에 밴 순발력으로부터 나온다. 배우 경력은 이제 갓 2년을 넘겼지만, 학창시절 내내 오락부장을 역임한 데 이어 한국예술종합학교 코미디 클럽 ‘걔들’ 창립 멤버에다 해군 홍보단 MC까지 거쳐 온 그의 남다른 장난기는 20년차 베테랑 수준이다. 군대 시절 선임병 흉내를 내며 웃다가 들킨 긴급상황을 “방귀를 뀌어서 웃었습니다”라고 넘겼던 그답게 정환 역을 위해 참고한 인물도 “예능 프로그램에서 기발한 애드리브를 뱉어내는 이수근”이다. 그러니 끊임없이 웃음을 터뜨리며 일생을 이어온 개그사(史)를 털어놓던 그로부터 영화 에서 변심한 애인 영수(오창석)를 서글프게 바라보던 운철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가라앉은 영화를 한 게 처음이니까 부자연스러운 게 많았어요. 눈물연기도 두려웠고.”

“짧게 웃기는 것보다 꾸준히 재밌는 연기를 하고 싶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주어진 대사에 충실해야 하는 신인이지만 “몸이 좀 풀리면 애드리브도 한 번 넣어보고 싶다”는 배짱만은 예사롭지 않은 그가 “짧게 웃기는 것보다 꾸준히 재밌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이유는 분명하다. 순간의 폭발을 향하는 전자 대신 자연스런 에너지를 추구하는 후자를 위해 장서원은 “일부러 개인기를 해야 하는”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사양하면서도 “감 떨어지지 않기 위해” 같은 계통에서 일하는 친구들과 모여 3주 단위로 작품 연습을 한다. 최근에는 “촬영장에서 재밌는 기운을 나눠주기 위해” 동료 배우 성대모사도 준비하고 있다. “제 최측근 배우의 성대모사를 비밀리에 연습하고 있어요. 아, 하지원 씨는 절대 아닙니다! 하하하하.”

물론 연기자로서의 긴 여정에 이제 첫발을 내딛은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코믹한 역할이냐 진지한 역할이냐가 아니라 얼마나 ‘감’이 살아있느냐다. 그러니 이제부터 의 ‘주원앓이’ 시청자들은 시야를 한 뼘 넓혀 정환 선배를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겠다. 인터뷰가 끝나고 사진촬영을 할 때 어색하게 카메라에 끌려 다니던 그가 답답한 머플러와 코트를 벗자 자신감 있게 셔츠 소매를 걷고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편안하게 놀기 시작한 것처럼, 그가 긴장감을 벗어버리는 순간 어디선가 숨 죽이고 있던 ‘감’이 툭 튀어나올지 모른다.

글. 이가온 thirteen@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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